첫 재판
첫 재판이 시작되었다. 가을을 마감하려는 성급한 계절의 변화가 느껴졌다. 다소 쌀쌀한 날씨가 피부로 전해졌지만 평소와 달리 법정으로 향하는 길에 수북이 쌓인 낙엽들은 그다지 어수선해 보이지는 않았다. 마치 홀로 길을 떠나는 나그네의 동무라도 되어줄 요량인지 포근하기까지 했다. 호송버스가 법원으로 들어서자 마치 간판이라도 되듯 큰 돌 위에 새겨진 명문이 눈에 들어온다.
‘자유’ ‘평등’ ‘정의’,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내용이 오늘따라 무거운 무게로 가슴을 조여 오고 있다.
내가 자유, 평등, 정의를 배반했었던가?
그래서 이곳으로 불려 온 것인가?
무슨 잘못으로 여기까지 끌려왔는가?
여태껏 세상에 순응하며 고분고분 살지 않았는가?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내가 마음에 품은 순간의 자유는 여기까지였고, 이내 한 번 다녀간 적 없던 형사재판정 안으로 몸과 마음이 가둬졌다. 미결수인 관계로 법적으론 죄인이 아니었지만 현재 착용하고 있는 복장과 마음은 그렇지가 않았다. 우선 신발부터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예전 사업부도가 가져온 기억 속의 가난이 고스란히 신겨져 있었다. 흰색의 고무신, 몇몇 숫자가 가슴에 멍에로 새겨진 하늘색의 미결수 복장, 그리고 법정의 가라앉은 무거운 공기들 속에서 그 시절의 기억하기 싫은 흔적들이 어눌한 광대의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자리가 정돈되고 마치 톱니바퀴처럼 법정을 움직이는 구성원들도 각기 제 자리를 찾았다. 일순 정적이 흘렀고 옆으로 나있는 판사전용 출입문이 열리며 잠시의 고요를 깨뜨리고 있었다.
의외의 장면이 연출되었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자그마한 덩치의 재판장이 문을 통해 들어서고 있었다. 고개를 떨궜지만 그나마 남은 호기심을 재판장석에 집중한 나의 눈까풀이 순간 이상하리만큼 떨리고 있었다.
설마 이럴 수가. 숙였던 고개를 고쳐 잡았다. 아니 그보단 우선 마음부터 제 자리를 찾기에 바빴을 런지도 몰랐다. 그 자리에 ‘이 현상’이 있었다.
그간 나는 세상을 살며 마음의 빚이 얼마 되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나의 부정이 초래한 사업실패로 피치 못해 헤어진 아내와 자식이 그랬고, 부도로 인해 흩어진 직원들에게도 같은 몫의 빚이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외에 것들은 마음에 담지 않고 살기로 했었다. 한 순간의 실수로 돌아가신 강 씨 어르신에게 대한 빚마저도 이리 험하게 죗값을 치르고 있고 병원에서 합의해 준 적지 않은 금액으로 꺼져가는 둘째 아들의 생계마저 당분간 이어주질 않았던가. 그런 생각으로 이 자리에 선 내겐 지금 이 순간 여태껏 청산하지 못한, 그래서 마음속 깊이 숨겨 혼자서만 보살피던 상처가 봇물처럼 터지고 있었다. 목발을 위로한 체 내게 달려드는 그 무엇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