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광대놀이

판사 이헌상

by 최국환

9) 판사 '이 헌상'



‘이 현상’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고교 시절 내내 같은 반 친구였던 그는 K대 법대에 입학한 이후 사법고시까지 일사천리로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소문을 전해 들은 터였다. 그런 그가 나의 죄를 심판하는 이 자리에 그것도 심판관이 되어 내 앞에 있지 않은가?


두 다리가 모두 불편하여 항상 맨 앞줄 오른쪽을 차지했고 그것도 화장실과 가장 가까운 1반의 맨 앞줄이 그의 정해진 자리였다. 어릴 적부터 심한 소아마비를 몸에 달고 살았기에 비록 학교인근에 집이 있었지만 2Km 남짓의 등하교 길을 엄마와 함께 매일같이 택시를 이용해야 했다. 우연하게 1학년 같은 반에 배정된 내게 생물을 담당하시던 담임선생님은 기가 막힌 제안을 하고 나섰다. 남편 없이 홀로 살림을 꾸려가는 그의 모친을 위한 제안이었을 것이다.


“태수야 당분간 네가 현상 이를 도와줘야겠다. 학교 마치면 집에까지 데려다 주거라. 대신 오후 종례는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

“네?...... 네에.”


담임의 느닷없는 억지제안에 어정쩡한 대답으로 응수를 했지만 어디 말이 데려다주는 것이지 거의 몸을 가누지 못하는 녀석을, 그것도 2Km의 거리를 어찌하라는 것인지……. 그래도 그간 지긋지긋했던 종례도 빠지고 담임의 잔소리도 피하고……. 그저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작정했다.


먼 거리에서 버스로 통학하는 내 사정을 고려한 배려 덕에 등굣길은 면제되었지만 왜 하필 나였을까?

키 순서로 정해지는 번호가 끝번이었다는 이유로, 그저 힘깨나 쓸 것 같은 덩치를 가졌다는 이유로, 매사에 거부하지 않는 지고지순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이유로?


처음 며칠은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심한 마비로 인해 현상이의 두 발에는 의족이 채워져 있었고 목발을 짚고도 몇 발자국을 옮기는 것도 힘들어하니 그저 업고 가야만 했다. 작은 체구였지만 그래도 50킬로가 넘는 움직이는 사람을 등에 업고 2Km를 간다는 것, 그야말로 막노동이 따로 없었다.


“태수야 고맙다.”

“태수학생 수고했어. 나중에 크면 복 많이 받을 거야. 기도 많이 할게.”

현상 이와 그의 모친의 격려와 감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여름에는 비 오듯 땀을 쏟아야 했고 추운 겨울에는 곱은 두 선이 마비될 지경이었지만 그나마 버틸 수 있는 여력은 주위 친구들의 아낌없는(?) 배려 덕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만 해도 ‘왕따’가 심했던 시기였다. 평소 소심한 성격에 말수도 적은 내겐 친구가 별로 따르지 않았다. 힘든 하굣길에 그나마 두 사람의 가방을 책임져 준 단짝 용민 이를 제외하곤 다들 나를 멀리 했었다. 그러던 것이 ‘이 현상’에 대한 나의 희생을 곱게 봐서인지 내게 말을 붙이는 녀석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고 반에서 힘 좀 쓴다는 소위 ‘짱’이란 녀석들도 어떤 시비도 걸지 않았으며 무슨 일이든지 열외가 이어졌다. 그야말로 힘은 들었지만 소중한 그 무엇을 얻은 기분이었다.


일 년이 지나고 삼 년 내내 같은 1반, 같은 번호, 똑같은 일이 내게 주어졌다. 물론 이 현상이의 하굣길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일이었다.

학년을 처음 여는 운동장 아침조회에서 일 년에 한 번 수여하는 학교전체 선행상을 받았다. 생전 처음 받은 상이었기에 달랑 괘종시계 하나가 상품으로 전해진 것에도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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