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놀이
그런 그에게 말 못 할 빚이 있었다. 말없이 혼자 덮으려 했고 가슴으로 눌러 가시려고 했지만 가끔 눈에 들어오는 목발을 보면 그 눌렀던 아픔이 떠오르는 피치 못할 기억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 체육시간의 평균대는 나의 독차지였다. 남들과 달랐던 평형감각에 세반고리관이 지극히 발달되었을 거라는 선생님의 극진한 칭찬까지 들을 정도였다. 어릴 적부터 무언가 세우고 노는 것을 좋아했기에 그 어떤 물건이 손에 들어와도 기어이 세우려 했고 세우 거야 마는 성격이었다. 어찌 보면 10살 즈음, 서커스에서 보았던 광대의 신비에 가까운 접시 돌리기 환상이 나를 그리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찌 되었건 고등학교 시절에도 그런 나의 특이한 취미는 계속 이어졌다. 가끔 쉬는 시간이면 학급 청소용 빗자루나 대걸레 봉이 손을 시작으로 차츰 콧등에 세워졌고 마지막은 발등에서 마무리 짓곤 했다. 보이는 모든 것이 내겐 평형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장난감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교실 뒤 청소함 옆에 놓여있던 이 현상의 분신과도 다름없는 목발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평생을 그와 함께 한 분신인 목발이 나의 장난의 도구로 발등에 세워지고 있었다. 아니 그보단 그의 자존이 무너지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답일 것이다. 그런 빚쟁이가 지금 죄를 심판받아야 하는 위치에 서있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거짓 광대의 심판정이 열리고 있었다.
자리가 정돈되고 재판시작을 알리는 안내 말이 이어지자 곱게 자리한 그가 뿔테 안경 너머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시야가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오래된 기억에 그간 나의 훌륭했던 평형감각이 줄 끊긴 연처럼 멀리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나를 알아봤을까? 내가 예전에 자신의 자존을 무참하게 무너트린 그 ‘장태수’라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이 자리에 들어왔을까? 하긴 동명이인이 얼마나 많았던가. 어린 시절 인명부 전화번호부에서 찾았던 장태수라는 인물이 얼마나 많았는가. 100번을 세고 200번째가 넘자 그만 포기하고만 이름 다니던가. 사전에 알았다면 이 자리에 나왔을까?…….
오래전, 그는 내게 말했었다. 뿔테안경 너머의 눈빛으로 정확히 말하고 있었다.
‘태수야 그것만은 그 자리에 놓아달라고, 내 목발만은 광대의 그것으로 세우지 말라고, 그건 내 분신이라고.’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너를 돕는 나의 수고에 비하면 이런 것쯤은 감당해야 한다는 나의 눈빛을, 주변 친구들의 열렬한 박수로 세워진 나의 광대놀이 같은 몸짓을, 하여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일궈낸 유일한 나의 적극적인 행동임을 일찌감치 감지했을 런지도 몰랐다.
그런 현상이가 변하기 시작했다. 평소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주변 친구 녀석들과 잘 어울려 놀던 그가 어느 순간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엔 몰랐지만 졸업 후 K대 법대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다. 그의 행동의 변화는 나로 하여금 시작되었고 내가 했던 철없었던 행동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그에게 안겼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혹은 나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한 복수의 시작을 공부로 보여줬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저 나의 하찮은 장난으로 시작한 일이 한 사람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나 자신에게 마저 마음의 빚으로 달려 이 자리까지 이어진 것이다. 내 눈앞에 보이는 이 자리의 현실이 결코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