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견관 참관 사이에서

거짓 광대놀이

by 최국환

6) 참견과 참관의 사이에서


유치장에서 구치소로 향하는 길이 심란하게 놓여 있었다. 예전 기억들이 보도블록의 짜 맞춤처럼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창가에 뿌옇게 낀 가을서리만 이 그 기억을 지우려 하는지 좀처럼 옅어지지가 않았다.

“장태수 씨! 합의는 이미 어려워졌고 어찌 됐건 병원 측에서 힘을 쓸 테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될 수 있으면 병원 측에 불리한 말은 피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서둘러 온 듯 한 법무담당이 에둘러 병원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그럼 어찌하면 됩니까?”

“그리고 판결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어느 정도 감을 잡은 나로서는 가능한 한 실형만은 면해보겠다는 의지를 실어 적극적인 자세보단 그저 꼬리를 내리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최소 삼 년 이하 징역이나 삼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입니다. 장 선생만 잘하시면 뒷감당은 병원에서 해결할 테니 염려 마십시오.”

요양원의 명성을 지키고자 하는 그네들의 신념이 곳곳에서 묻어나고 있었다. 또한 내게 있어서도 그야말로 솔깃한 제안이었다. 애초 강 씨 노인의 아들이 요구한 금액은 이보다 몇 곱절이 넘었다. 내게 남은 것이라곤 삼 개월간 받은 급여의 일부와 허름한 옥탑방의 세간이 전부였기에 그 어떤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한 때 잘 나가던 중소기업을 운영했던 내가, 10여 명의 종업원을 두고 그들의 생계를 책임졌던 그런 내가 이런 처지에 놓이다니, 문득 삼 년 전 일들이 구치소를 향하는 길가에 떨어진 낙엽처럼 폐부를 훑고 지나갔다.

회사를 말아먹기 2개월 전 거래처와의 접대자리, 납품을 무사히 마친 내게 적지 않은 어음이 전해졌고 차후를 기약하자며 내민 거래처 여사장의 술자리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다. 내겐 또 다른 기회가 될 거라는 생각에 순순히 받아들였다.

술자리가 익어갔다. 평소 술이 약한 탓인지 정신 줄을 놓았던 다음날 아침에 펼쳐진 그림은 실로 가관이었다. 집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모텔로 여겨지는 그곳, 구석에 자리한 목욕탕 샤워기는 힘차게 물을 뱉고 있었다. 누군가 동침한 것이 분명했다. 한참이 지난 후 가운을 두른 여인의 형체가 실루엣으로 다가왔다. 묘한 웃음을 띤 40대 후반의 거래처 여사장은 나의 실수를 용서라도 하겠다는 요량인지 살갑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장사장님 다시 봐야겠어, 그저 샌님인 줄 알았는데 밤새 홀딱 반했어.”

이어지는 야릇한 웃음소리에 중간쯤 걸려있던 어제 먹은 술이 일순간에 머리끝까지 달려 나왔다.

‘이게 아닌데’, '내가 원했던 건 이게 아닌데 ‘ 그저 회사의 실적을 높이고 창대한 미래를 위해 마련했던 자리가 이리되었다니 현실은 후회를 보담 기엔 이미 저만치 한참이나 흘러간 뒤였다.

평소 적극적이지 않은 성격 탓에 모든 일에 나서기보다는 한 발 물러서서 상황을 바라보고 참견하기보다는 그저 지켜보는 쪽을 택했던 나였다. 회사를 차린 것도 아내의 발 빠른 사리판단이 발판이 되었다. 무선통신의 발전가능성을 미리 짐작한 아내 덕에 회사는 10년의 세월 동안 무사히 잘도 버틸 수 있었다.

그날 밤의 씻을 수 없는 실수도 어찌 보면 내가 아닌 거래처 여사장의 각본에 의해 철저하게 짜인 의도로 치러진 일이 아닌가.

그런 일이 있고 얼마 후, 거래처 여사장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들어왔다. 납품 물량을 늘려주는 대가로 수출계약에 필요한 상호지급보증을 요구하고 나섰던 것이다.

“장 사장님 서로 잘 되자고 하는 일이니, 우리가 남도 아니고 잘 부탁해요.”

그녀의 제안 속에는 지난밤의 실수를 담보로 한 협박이 한마디로 표현되어 있었다. 서둘러 서류가 전해지고 얼마 후, 그녀의 잘 나가던 회사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철저하게 공중분해가 되었다. 고의부도를 일으키고 회사의 모든 재산을 챙긴 그녀의 행방은 그 후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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