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logue 002
우리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2가지의 작업노트를 준비한다.
하나는 실제로 들고 다니면서 끄적거리는 수첩, 또 하나는 작업노트라는 프레젠테이션 파일로 아이디어를 수집한다. 거기에는 미완성의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글이나 단어, 개념, 스케치, 디테일 등 두서없는 것들, 건축으로 구축되기 이전의 것들이다. 요리로 비유하자면 손질되기 이전의 것, 흙이 잔뜩 묻은 감자나 당근과 같은 상태의 것들이다. 당근이라는 재료 하나로도 요리하는 사람에 따라 미묘한 차이의 맛과 질감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건축 본연의 거칠고 투박한 아이디어를 어떤 방식으로 전개해 나갈지 고민한다.
아내 "이번 생일에 오래 쓸 수 있는 좋은 펜 하나 살까?"
남편 "나는 그런 좋은 펜은 왠지 좀 부담스러워- 편하고 만만한 모나미가 좋아."
남편은 그런 생각을 작은 수첩에 모나미 볼펜으로 기록하는 것을 즐긴다. 부담스럽지 않고 익숙한 것, 그래서 편하게 생각을 꺼내볼 수 있도록 하는 도구를 좋아한다. 너무 좋은 도구는 잘 써야 할 것 같고 번듯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있다고 했다.
나는 덧칠할 수 있는 색연필이나 연필을 좋아한다. 종이의 재질에 따라서 질감이 나타나서 좋고, 진하기의 정도나 굵기나 톤으로 조절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게 좋다. 처음의 두텁고 거친 느낌의 작업들로 시작한 생각이 자연스러운 수정과 보완을 거쳐 매끈하고 얇고 디테일한 선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즐긴다.
도구란 길 도(道) 자에 갖출 구(具) 자를 쓰는 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준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가장 필요한 것을 갖추는 것이 올바른 도구의 사용법일 것이다. 자신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한 방식과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일상 속에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신선한 생각과 단서를 잘 수집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수집한 신선한 재료를 손질하는 과정이 우리 작업의 기록이며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