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
반복되네. 우리의 대화가.
"당신은 왜 자꾸만 지난 얘기만 하지? 뭐가 중요하다고. 지금이 중요하지. 과거에 집착하는 거 아냐?"
내가 답답해 보이나? 현재 내 삶에 충실하지 않고 과거에 연연한 사람으로 보이는 건가?
"내게는 과거가 아니거든요. 지금 연결되고 있잖아요. 당신은 과거의 사람들이 없나요?"
대답하지 않는다.
"과거가 있으니까 지금의 내가 있지. 바로 이 순간도 내일이면 과거가 되는데요, 오늘이 쌓여서 과거도 되고 미래도 되는데... 제 과거 얘기가 듣기 싫으세요?"
생각해 보니 당신의 과거 얘기는 이미 다 들었다. 진짜 과거 얘기로서 말이다.
나는 시간을 거슬러 갈수록 행복해진다. 아마도 나쁜 기억은 대부분 사라지고 좋은 기억만 남아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오래되어 내 마음대로 지어낸 기억들이 많아서일 수도 있다. 순전히 내 기억 속에서 마음껏 순수했던 유년기 시절의 인연을 아직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뿌듯한지. 휙휙 변하는 이 시대에 오랜 기간 동안 끊기지 않는 끈들을 잡고 있는 것이 얼마나 설레고 기쁜 일인지 나는 뽐내고 싶은지도 모른다.
현재가 불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나? 만약 돌아갔다면 어떻게 살고 싶나?라는 질문은 흔하다.
나의 답은 늘 같다.
지금이 가장 좋다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간다고 해도 딱히 바뀔 것 같지 않다고.
If 그 당시 내가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더 나은 내가 되었을 텐데 라는 생각은 오해다.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어리석고 답답할 수 있지만 그 상황마다 내 자리에서 한 선택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당시 맺은 인연들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삐걱거리다가 맞물리면서 이어지고 있는 지금이 좋다. 우리가 같이 멈춰있지 않고 변화하는 모습들을 나누는 것이 좋다.
그런데 당신은 왜, 만날 때마다 과거 얘기를 한다고 지적하는 것일까?
난 이미 당신의 역사를 안다. 누군가에게 모두 털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뱉은 말들. 돌아보고 싶지 않은 어두운 그 시간.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하는 사람이 나라고 말하는 사람. 그런 사람 앞에서 과거의 얘기를 하는 것이 서운한 것일까? 당신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기에 과거는 필수였는데, 과거를 알지 못했다면 나는 당신을 만나지 않았을 텐데. 당신은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과거의 나와 당신은 많이 다르다. 심플하게 말한다면 나는 편하고 당신은 고됬다. 그런데 편했던 나는 점점 고되지고 고되던 당신은 점점 편해졌다. 고되게 되는 나는 과거를 그리워하고 현재가 최고인 당신은 과거는 잊고 싶다. 이런 맥락일까. 이 맥락은 객관적인 입장에서다.
갑자기!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단계가 떠오르다니. 내 도식이 우습다.
유아기 기본적 신뢰와 자율성을 획득한 나와 불신과 수치심을 획득한 당신과의 차이일까? ㅎㅎ
나는 당신이 불신과 수치심만을 획득했다고 절대 보지 않기 때문에 이 해석에는 반대를 던진다. 당신은 동의할지 몰라도. 유아기의 전리품만으로 우리가 살아온 건 아니니까. 물론 영향을 많이 받기는 하지만 당신은 고여있는 물이 아니니까. 당신은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당당하고 인생을 개척해 온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소년의 당신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거는 우리가 걸어온 길이다. 그 길을 없앤다면 내 바로 뒤는 늘 절벽이다. 과거를 무시한다면 뒤돌아보는 순간 추락한다. 내가 걸어온 길을 마음의 지도에 잘 새기고 예쁘게 연결해서 원하지 않던 행동이 되풀이되지 않게, 좋게 변할 수 있는 관계의 길을 새로 내고, 서로를 절망으로 이끄는 관계의 길은 정리를 하며 오늘을 살면 좋지 않을까. 당신도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처럼 행복하게 얘기하면 좋겠다.
너무 많이는 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