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입병

그대가 와서 바빠요

by dolias

여기저기 입병이 돌아다닌다. 그럼에도,

마음이 계속 바쁘고 손도 바쁘다.

검색을 계속한다.

** 맛집, 부모님 모시고 가면 좋은 곳, 생신날 가면 좋은 곳, 양은 적지만 기분이 좋은 곳...


"엄마, 뭐 먹고 싶어?"

"없어"

"엄마, 뭐 필요한 것 없어?"

"없어, 지난번 사줬잖아"

"그래도 내일이 생일인데..."


나도 이랬다.

누군가 필요한 것 없냐고 하면, 없다 하고

마음만 받겠다 하고.

상대는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

몇 날 며칠이나 잠을 설치며 고민해도

좋아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마음 졸이며

상대의 표정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아슬아슬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엄마의 말씀에

심지어는 미역국도 끓이지 말라 하시니

딸과 둘이 보내는 첫 생신을 아~무겠도 하지 않고 있자니 너무나 불안해졌다.

집에 먹을 것도 많고 나가서 먹어봤자 거의 남기는데 그냥 집에서 먹는 게 낫다는 말씀에

알았다고 하고서는...

어느새 음식점을 검색하고 있다.

자정을 훌쩍 넘겨 세 군데 정도 봐두고 아침에 직접 전화를 걸어 예약하고자 한다.


"내 생일은 늘 날씨가 좋아"

"정말 좋은 계절에 태어났네, 엄마는"

나오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을까.

다 남겨도 좋으니까 먹고 싶은 것만 골라서 조금 먹으면 되지 하면서,

음식점 예약을 해 놨으니 나가자 했다.

오호라~!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채비를 마치셨다.


비록 직접 차려드린 생신상은 아니지만

엄마는 맛있게 드셨다. 나도 오랜만에 많이, 맛있게 먹었다.

오래된 한옥의 예쁜 마당과 시원한 바람, 정겨운 새소리.

행복했다.

이런 마음이구나...


먹음에 대한 욕구가 별로 없는 나로서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대충 먹으면 되는 걸 뭐 음식점 찾느라고 고민을 하고 검색을 하고 난리를 치지?

누구랑 먹는가가 중요하지, 좋은 사람과 먹으면 무엇을 먹어도 좋은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은 상대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

내게 욕구가 없다는 것을 빌미로 상대의 바람을 살피지 못하고 가볍게 지나친 적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정성껏 예약된 장소에서 기껏 한다는 말이

"뭐 이런델 예약했어요, 많이 먹지도 않는 걸. 대충 먹어도 된다니까..."

이따위 말을 하다니...


엄마가 많이 드시지 못해서 반 이상을 남겨도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그동안 먹음에도 경제적 효율성을 너무 따진 건 아닌가 싶었다.

들여다보니 먹는 것, 노는 것에 적어도 80% 이상 만족스럽지 않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적이 많았다.

너무 비효율적이라면서...

사실 50% 이상의 효과만 된다면 그 행동은 효율적이지 않을까. ㅎㅎ


입병이 널리 퍼져 있어서 말을 할 때마다 아프고 잠을 설쳐 눈을 뜨기가 힘들어도

엄마가 맛있게 드시는 모습에,

혀로 하얀 입병을 핥아보니 따가운 느낌마저 사랑스러웠다.

꽃몽우리 같은 입병이 활짝 피어나도록 멈추고 싶지 않은 건,

사랑하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고 싶은 생각, 이런저런 계획,

그리고 실행에 옮길 때의 설렘.


엄마가 와서 바쁘다. 머리도, 손발도.

사랑은 몹시 피곤한 존재이지만

기꺼이 힘듦을 환영한다.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아져서

더 성가시고 입병도 왕창 생겼으면 좋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게도 그리운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