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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ias Feb 01. 2024

내 얘기는 아닌데...

마음의 방어기제 1. Red

우리는 다른 사람 얘기하기를 참 좋아합니다.

그러나.... 사실 내 얘기하기를 더 좋아하지요.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로 시작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사실은 본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왜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타인의 이야기로 드러내는 것일까요?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는 잘난 척한다고 할까 봐 걱정이 되고, 양심에 좀 걸리는 이야기는 욕먹을까 봐 걱정이 되어서일까요? 쉽게 말해 눈치가 보여서이지 않을까요?       

그럼 말하지 않으면 될 테인데 왜 굳이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말하고 싶어서이지요.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한 것입니다. 자신의 일이든, 타인의 일이든 모두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말을 통해 경험을, 경험에 대한 느낌을 공유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니까요.      

“내 이야기는 아닌데...”로 시작하는 이유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던져놓고 자신이 원하는 반응들이 나오면 “사실은 그게 바로 나야...”로 고백하면 되고,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면 계속 남의 얘기가 되면 그만입니다. 내 마음의 안전을 위해서 이보다 쉬운 전략이 어디 있을까요.      

자신을 방어하여 마음의 안전을 얻고자 하는 전략들이 있습니다. 이 전략들을 심리학에서는 방어기제라고 합니다. 방어기제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일종의 본능이기 때문에 방어기제가 나타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며,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방어기제는 우리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어느 하나 나쁜 것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떠한 방어기제를 쓰는지 알고 현재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방어기제를 조절하거나 추가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방어기제라도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강도와 빈도로 사용할 수 있다면 성숙한 방어기제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다양한 방어기제들 중에 하나만을 사용하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방어기제를 사용한다면 방어기제는 오히려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는 악당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간관계란, 사람과 사람과의 인격적인 관계로 심리적, 정서적 관계를 말합니다. 일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인간관계가 힘들면 참기 어렵다고들 말합니다. 직장뿐 아니라 가정이나 학교에서도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부분은 인간관계일 것입니다.

저 사람이 도대체 내게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이해할 수가 없으니 불안해집니다.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행동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의 행동을 이끄는 것이 바로 방어기제들입니다. 방어기제에 대한 이해가 생기면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행동성향들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전에는 이해되지 못했던 말도 안 되는 행동들이 말 되는 행동으로 인식되고 납득이 되니까 마음이 편안해질 것입니다.


이제부터 내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다양한 방어기제들을 살펴보고 내가 주로 사용하는 방어기제를 찾아봅시다. 그리고 방어기제의 주인이 되어봅시다.


1. Red.

Red는 일찍 독립했다. 중학교 2학년 때 가출하여 그 후로는 집에 들어간 적이 없다.       

나는 돈 많고 명 짧은 영감탱이랑 결혼할 거야.   

저런 예쁜 2층집에는 누가 살까? 상냥하고 예쁜 엄마가 귀여운 아이하고 살겠지?

나도 가끔은 평범하게 결혼해서 애 낳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해...

그럼 그렇게 살면 되잖아

내가? 이미 늦었어. 난, 평범하게 살 수 없어. 봐봐. 당신은 어른이잖아? 그런데도 나랑 당신이랑 누가 더 나이가 들어 보여? 내가 훨씬 늙어 보일 걸. 화장 지우면 마귀할망구 같다고. 화장독이 올라서. 난 이미 많은 일을 겪었어. 더러운 세상 었다고. 당신이 남자라면 나 같은 여자랑 결혼하고 싶겠어? 당연하지. 나도 내가 재수 없는 걸. 나도 뭐 남자 같은 것 별 관심 없어. 그냥 돈만 많이 주면 땡이지.

돈 많이 생기면 뭐 하려고

뭐 하긴, 성형수술하고 쫙 빠진 몸매에 떵떵거리고 살지.

어린애가 못하는 소리가 없다

어리긴! 내가? 당신이 어리지. 순진해 빠져 가지고는. 내가 인생 선배야.

집에는 언제 들어가려고?

집? 내가 들어갈 집이 있나.

부모님이 걱정하고 계실 텐데. 

웃기네... 걱정은 무슨 걱정. 속이 시원하겠지. 내가 안 보이니까. 창피한 딸내미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겠지.      

Red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웬일이야, 먼저 연락을 주고. 오늘은 무슨 일로 만나자고 한 거야?

남자친구 소개해 주려고.

드디어 돈 많고 명 짧은 영감님 만난 거야?

그랬으면 좋은데... 아직 아니야. 당신이 한 번 봐줘.      

  

우리는 삼겹살집에 들어가 남자를 기다렸다.

약속시간 정각에 나타난 남자, 더운 여름날이었기에 온몸에 용 문신이 드러났다. 가게의 손님들은 먹는 둥 마는 둥 슬며시 일어나 모두 나가버리고 손님이라곤 우리 셋뿐. 남자는 나와 동갑내기였는데, 주류 관련 일을 한다고 했다. Red의 남자는 자주 바뀌었는데 대부분 비슷했다. 주로 밤에 일을 하면서 조직과 줄이 닿아 있고. 겉으로 보기엔 험악하지만 순수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남자들이었다.

아! Red도 딱 한 번 S대 남학생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Red가 만난 남자 중 최악이라고 했다. 가출은 했어도 어찌어찌하여 고등학교를 대충 졸업하고 부모의 경제적 후원으로 무용학과에 들어갔다. 무용과인지라 미팅이 끊이지 않고 날마다 들어왔단다. 초등학교 수준의 학업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Red는 우아해하는 무용과 애들과 친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똑똑한 대학생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은 로망은 있었다. 미팅에 나가게 되었고 버젓한 대학생 남자친구가 생겼다. 문제는 그와의 만남이 한 시간이 열 시간은 되는 듯 지겹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거니와 우아한 척하기가 토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세 번째 만남에서 드디어 “야! 더 이상 못해먹겠다. 재수 없어, 너. 나~너 같은 애 딱 질색이야. 에이~퉤” 하면서 쿨~하게 헤어지고 바로 이어 학교도 때려치웠다.

그 후 노래방이나 술집에서 일하면서 남자를 사귀며 아직도 살고 있다. 도박에 빠져 엄청난 빚을 지고 도망쳐 다닌 적도 있다. Red의 오피스텔에는 애인에게 받은 명품가방과 신발이 나뒹군다.  

                       

Red에게 물었다.      

가장 오래된 기억이 뭐야?

음... 마당에 있는 커다란 뚜껑이 있는 대야에 물을 받아놓곤 했는데... 세수도 하고 발도 씻고. 어느 날 뚜껑을 여는데 쥐 몇 마리가 둥둥 떠 있는 거야. 퉁퉁 불어서 커다래진.

끔찍하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뭘 어떻게 해. 악을 쓰며 울었지. 아침 내내 울어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어.

집에 아무도 없었어?

아니. 할망구가 있었는데 귀가 멀었는지 나오지도 않더라. 자빠져 자고 있었나 보지.  

.... 그다음으로 생각나는 오래된 기억은?

아빠가 날 집어던진 것. 해수욕장에 놀러 갔는데 좁은 텐트에서 운다고 시끄럽다고 밖으로 집어던졌어. 모래에 꽂혔어. 또 한 번은 겨울에 운다고 창문을 열고 집어던졌는데 다행히 눈을 쌓아놓은 곳으로 던져져 눈 속에 꽂혔어. 그런 사람이야. 아빠라는 작자가.

많이 다치지는 않았어?

몰라. 그런 건 생각 안 나고 그냥 머리가 눈 속에 모래 속에 처박혔다는 느낌만 있네. 열나 기분 나빠. 쓰레기 같았지.  

그래도 아빠와 좋았던 적은 없었어?

일절 없어. 내가 태어날 때 아빠는 외국에 있었으니까. 돈 벌러. 내가 세 살인가 네 살인가 아빠라고 갑자기 나타나서는 나를 안아주는데 기분이 더러웠어. 그냥 모르는 남자였어. 몸이 닿을 때마다 소름이 돋았어.

아빠는 네가 그런 느낌을 받는다는 걸 아셔? 

미쳤어? 그런 말을 하게. 몸이 닿을 때마다 소름이 끼쳤지만 참았지. 아빠는 딸에게 그러는 거니까. 에이. 남자와 몸이 닿으면 다 그런가 보다 했어. 기분 더럽게 이상한 것.

그래도 아빠가 가족을 위해서 외국에 나가 일한 건데, 딸하고의 만남이 너무 늦어버렸네.  

지랄. 누가 지더러 고생하라 했어? 자기는 내 나이 때는 어쩌고 저쩌고. 네 나이에 유관순은 나라를 구했는데 너는 뭐냐. 이따위라니까. 자기가 고생했으니 딸도 똑같이 고생해야 된다는 거야 뭐야. 그깟 돈이 뭐 길래, 뭐 하나 사달라고 하면 질질 시간 끌기나 하고. 당연히 사줘야 할 것도 애교 부리며 구걸해서 받아내고. 더러워서... 같은 집에 살 수 없었어.

그래서 집을 나간 거야?

당연. 내가 사는 이유는 그 인간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야. 최고의 나쁜 딸이 되어서 그 징글징글, 번뜩이는 눈에서 피눈물이 나오게 하고 싶어. 날 위해 눈물을 흘릴 그런 인간도 아니겠지만. 창피하긴 할 거 아냐? 남들 눈치는 더럽게 많이 보니까. 안 그래?          

아빠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너 자신을 괴롭힐 필요가 있어?

본드 하면 생각 안 나니까 괴롭지 않지. 술에도 완전히 취하면 그대로 뻗어버리니까 괴롭지 않지. 아무 생각 없으니까 좋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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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가 주로 쓰던 방어기제는 행동화입니다.

행동화는 자신의 행동의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채 즉각적인 욕구 충족에만 관심이 있는 행동을 말합니다. 어린아이처럼 참지를 못하고 바로 화를 내거나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이지요. 분노발작을 하거나, 음주, 도박, 폭식, 가출, 비행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또 자신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여러 이성 와 관계를 맺거나 도박에 빠지는 등 아무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행동합니다.

Red는 본드나 술에 취하면 괴롭지 않다고 했습니다. Red는 도대체 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일까요? Red의 진정한 욕구는 무엇일까요? Red의 말 그대로 아빠에게 복수하는 것일까요? 아빠에게 어떤 복수를 한다는 것일까요?       

행동화는 자신의 내면의 아픔이나 갈등에 따르는 정서를 의식하지 않기 위해서 무의식적인 충동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외로움이나 슬픔의 위장된 공격적 표현인 셈입니다. 행동화의 진짜 목적은 외로움이나 슬픔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 생각 없이 충동적이고 파괴적으로 행동하는 동안에는 내면의 정서를 느끼지 않아도 되니까요.  

행동화가 자신을 화가 나게 한 대상에게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Red 역시 아빠나 엄마보다는 화를 자신과 불특정의 다수에게 행했습니다. Red가 자신의 신체뿐 아니라 양심마저 망가뜨리면서까지 한 행동들이 실은 “나 좀 바라봐 줘”,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 몸짓이 아니었을까요?      

Red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직면하고 적당한 방법으로 표현하는데 실패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행동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욕구가 좌절되는 상황을 인내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자기 통제력이 부족하다 보니 대인관계에 문제가 많이 발생하곤 합니다.       

Red는 태어날 때부터 남달리 예민했습니다.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얼굴이 파랗게 되어 기절할 지경이 되어서야 그치곤 했으니(하루를 꼬박 넘긴 적도 많았다), Red를 돌보는 사람이었던 할머니는 늘 파김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Red의 엄마는 학교선생님이었고 아빠는 엔지니어로 외국에 오랫동안 나가있었습니다. Red를 돌보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Red의 성격을 받아줄 육아도우미는 없었고 결국 Red의 엄마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일마저 그만둔 엄마는 Red에게 많은 기대를 하였지만, 욕심이 많고 다혈질인 엄마와 R은 사사건건 부딪히게 되었지요.      

어린 Red는 자신의 욕구표현에 반응하지 않는 할머니(첫 애착대상)를 비롯한 초기의 애착대상들로부터 좌절감과 무기력감을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 관심을 끄는 방법은 더 강한 떼를 쓰거나 분노발작을 하는 것이 최선이었지요. 갈수록 거칠고 까칠한 아이와 강한 성격을 지닌 부모와의 상호작용은 Red가 행동화란 방어기제의 화신이 되게끔 작용했을 것입니다.      

Red는 지금 엄마가 되었습니다. Red의 딸은 엄마가 아닌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고요. Red는 자신이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자신의 부모가 손녀를 키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당연히 손녀를 키워주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딸에게 그토록 엄격했던 아버지가 손녀에게는 한없이 약해져서는 해 달라는 것 다해주고 응석도 다 받아줍니다. 손녀의 기저귀도 할아버지가 갈아준답니다. Red는 아버지와 꽤나 친해졌답니다. 어머니와도. 하지만 여전히 Red의 행동화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원가족이 아니더라도 그녀와 진정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녀의 행동이 변할 수 있을까요? 아니 마음속에서는 어느새 부모님과 마음을 나누었는지도 모릅니다. 단지, 행동패턴을 바뀌는 데 시간이 좀 더 필요하거나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Red의 삶을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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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가족이란? 출가하거나 입양되기 이전의 원래 가족.     

* 행동화란: 쉽게 말해서 분노를 통제하지 못해서 오는 행동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욕구좌절 상황이나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자기 통제력이 부족해서 나온 결과입니다. 또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계획성이 적고 바로 눈앞의 욕구에 충실한 어린아이 같이 미성숙한 면이 강하고 정서적으로도 불안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행동화를 아예 쓰지 않는다면 너무 감정을 억압하고 표현을 전혀 안 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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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동화 자가 테스트- 4개 이상 해당되면 행동화 기제 너무 많이 쓰고 있어요. ㅠ.ㅠ >  

홧김에 일을 저지르곤 한다.  

내 맘대로 안 되면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낸다.

분노를 참지 못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행동을 저지른 적이 있다.

화가 나면 물건을 던지거나 깨뜨린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참을 수가 없다.  

가출한 적이 있다.

화가 나서 주변 사람들을 때린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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