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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ias Feb 02. 2024

아빠와의 이별은 안녕

그녀 이후, 사랑은 없다

아빠와 이별하는 조금은 특별한 방식, 책이 나오고 지인들로부터 들은 말은 의외였다. 아빠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딸 같다. 아빠와의 추억이 많아서 좋겠다. 결론은 ‘부럽다’였다. 그만큼 엄마와의 관계가 친밀한 사람은 많지만 아빠와 친밀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또 다른 의견은 나를 몰랐다면 이 글이 소설인 줄 알았거나 거짓으로 꾸며서 쓴 에세이로 여겼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삶 자체가 소설보다 더하면 더했지 밋밋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자주 헤맨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허구인지. 허구 역시 내 안에서 나왔다면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엇으로 정할 것인가. 꼭 정해야 되나? 나는 이 삶에서 아빠와 육체적으로 이별했지만 아직도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아빠는 여전히 내 꿈의 단골손님이며 눈을 뜨고 있어도 아빠의 눈을 마주하고 있다. 내게 현존하는 아빠는 현실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쓰려한다. 아빠와 연결되어 있는 나의 감정과 스토리를 소설로 쓰고자 한다. 나는 다시 만나고자 한다. 불쑥불쑥 나타나는 아빠의 존재가 그리움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경험이라고. 글을 쓰는 동안 아빠와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것이다.


아빠, 아빠는 부탁했어요. 혹시라도 내가 못하면 네가 대신  써 주렴. 제목은 김지점장이야. 그래서 나는 쓰고자 했다. 김지점장의 이야기를. 은행원들의 이야기를 모아 내가 모르는 아빠의 낮생활을, 공적 생활을 이해하고자 했다. 어려웠다. 하여 첫 책은 그저 아빠에 대한 기억을 부여잡고  썼다. 아빠를 하늘로 보내고 난 슬픔을 품어 삶의 씨앗으로 다시 살고자 했다. 그런데... 허하다. 난 아빠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다. 아빠가 내게 말해주고 싶은 이야기만큼. 내게 수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해 준 아빠에게 이젠 제가 그리는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아빠가 나의 첫사랑인 만큼 소녀의  첫사랑으로 시작합니다.


1. 그녀 이후, 사랑은 없다


그녀가 사라졌다.

서울시에 있는 모든 중학교를 뒤졌다. 교육청에 문의해 봐도 그녀가 없다.

열흘 전부터 그녀가 꿈에 나온다. 나를 기다리고 있다. 분명히. 그런데 나는 그녀를 찾아갈 수 없다. 그녀는 사라지고 나서야 왜 나를 부르는 것일까.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 그녀를 찾아야겠다.


그녀 이후의 모든 사랑에는, 죄책감이 붙는다. 어느 누구도 그녀만큼 사랑할 수 없기에.

그녀는 나의 모든 세상.      

그녀는 내가 중 2 때 나타났다.   

그녀의 첫 출근이자 첫 만남.  

부스스한 옅은 갈색 머리, 유난히 숱이 적어 한 올 한 올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

허리를 꼭 졸라맨 롱스커트. 때로는 표범무늬 살색 블라우스. 갈대를 닮았다.

그녀는 인기가 아주 많았다. 수업시간에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러주었다. 비음이 깔린 허스키 하면서도 어디가 쨍한 목소리는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흔한 수업 같은 수업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매번 책을 읽고 토론한다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발표하는 것이 수업이었다. 그럼에도 우리 반의 국어 평균 점수가 90점을 넘자, 학교 측은 부정으로 시험을 치렀다고 의심하여 재평가를 실시했는데 결과는 동일했다. 학생들이 그녀의 사랑과 인정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의 결과였으리라.      


그녀가 처음 내 준 숙제는 봄이 흐트러지는 시절,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독후감이었고 마지막 숙제가 겨울 방학 전, 생 텍쥐베리의 [어린 왕자] 독후감이었다. 헤세는 괜스레 멋있고 맘에 들었지만 생 텍쥐베리의 어린 왕자는 왠지 유치한 느낌이 들어 어떻게 독후감을 썼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어린 왕자를 통해 다가왔다. 돌려받은 독후감 원고지에  빨간색으로 물음이 우리의 시작이었다.  

“나는 너를 기다려왔단다. 나의 어린 왕자가 되어주지 않겠니?”

기쁨에 벅찬 나는 당신의 어린 왕자가 당연히 되어줄 것이라는 장문의 답장을 보냈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고 그녀의 답장을 받지 못한 나는 안절부절, 우울한 12월, 1월을 보냈다. ‘우리 집 주소를 몰라서 그럴 거야. 개학이 될 때까지 참자. 개학이 되면 곧 만날 수 있으니까...’ 위로하던 기나긴 시간들.


2월 7일. 개학날. 그녀가 불렀다.

“왜 아무런 답이 없니?”

“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잖아. 혹시...”

“무슨 말씀이세요. 제 편지에 답장 안 하신 건 선생님...”

“무슨 말이야, 바로 답장했는데. 방학 날, 연수에게 줬는데... 전해달라고”

“아...! 선생님. 아무래도 연수가 깜빡했나 보네요”

“어이구... 그랬구나. 이상하다. 연수가 겨울 방학 때 내게 편지를 얼마나 많이 보냈는지 몰라. 기다리던 네게는 오지 않아 연수 편지를 받을 때마다 이 편지가 네 편지면 얼마나 좋을까 서운하기만 했지. 그러다 서운함이 불안으로 걱정으로 변하는 거야. 네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휴~이제야 안심이 되네. 혹시라도 내가 너에게 실수를 했나. 부담을 주었나. 방학 내내 힘들었네. 시간만 버렸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시간. 이제부터라도 많이 봐야지”    


연수.  무지 예쁘고 똑똑한 아이.

연수가 그랬구나. 왜 그랬을까?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아이. 부잣집 딸 같은 이미지의 하얀 얼굴에 새침한 그 아이. 실제로도 부잣집 딸에다가 야리야리한 몸매에 못하는 것 없는 그 아이. 학교에서는 별로 친한 것 같지 않지만 사실 우리는 1년 내내 편지를 통해 마음을 나눴던 사이다. 그 아이가 나를 속였다. 나를 싫어하지 않을 텐데... 아니 오히려 부담이 갈 정도로 먼저 다가와 호감을 고백하던 아이가 아니었던가?

연수의 그녀와 나에 대한 방해 공작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녀와 나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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