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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ias Jan 31. 2024

코바늘 뜨기가 내 취미가 된 이유

확실한 성과

나 어른님은 상담실에 오실 때마다 욕심을 냅니다. 코바늘인형을 가져가려는. 아이들이면 모르겠는데 반백살이 훨씬 넘은 어른이 인형에 목을 매니 웃기지요. 하지만 인형 만들기에 정성이 한두 푼 들어가는 게 아니어서 웬만하면 주지 않습니다. 예전에 나 어른님이 하도 간절하길래 (눈물을 머금고) 토토로 인형을 드렸는데 오실 때마다 달라하시니 적잖이 화가 났어요. 그래서 눈을 부릅뜨며, "이런 행위는 갈취입니다. 경고예요. 자꾸만 그러시면 신고할 거예요!" 강하게 말하는대도 끄떡도 하지 않고 인형을 집어 들고 실랑이를 벌이신답니다. 나는 정말로 화가 나는데, 나 어른님은 내 화를 끝까지 끌어올리고는 마지막에 인형을 툭! 던지고는 웃으십니다. '웃을 일이 아닌데, 내 피! 땀! 눈물! 이 들어간 예쁜 내 아이들인데... 저렇게 쉽게 가져가려고? 내가 진짜 화난 게 보이지 않을까? 알면서도 나 어른님은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무엇 때문에 되풀이하는 것이지?'

나 어른님이 요번에 욕심낸 인형, 특히 가운데 민트!

코바늘 인형을 뜨게 된 지 벌써 10년이 되어갑니다. 처음 시작해서 손에 익을 때까지 연습이 필요했기에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어요. 남편은 주말에도 하루종일 코바늘만 하고 있으니까 그러려면 도서관 가서 뜨고 오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어요. 그래서 새벽에 몰래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 편안히 뜨기도 했네요. ㅎㅎ 그런 열정이 년 전부터는 어깨도 아프고 눈도 쑤셔서 어쩔 수 없이 줄어들어 요즘은 가끔씩만 뜬답니다. 문제는 한번 시작하면 너무 좋아서 멈추기가 힘들다는 것인데요.  무엇이 그리 좋은 것일까요?

마블시리즈 여성캐릭터를 만든 이후 지쳐서...그 후 일년에 몇 개 못만들게 됨

오늘도 한분이 덕담을 해주셨다. "선생님, 상담으로 좋아지는 case가 지난번 ***씨로 생각됩니다. 덕분에 지금은 잘 지내고 있는데 상담하시면서 고생하신 표시가 안 나서 아쉽습니다"라고. 나는 속으로 대답했지요. '상담일이 그렇지요, 표시가 나지 않아요. 빠른 시간 내에 좋아진 case도 다시 나빠질 수도 있고, 찜찜하게 마친 상담이 의외로 좋은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고요. 내담자의 상태가 다양한 심리검사나 대화를 통해 양적으로, 질적으로 향상되었다고 해도 확실하지 않아요. 어쩌면 정확한 성과면에서는 불확실성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몰라요. 저는 늘 잘하고 있는 건지, 나의 방향성이 적당한지 확인하며 때로는 불안해합니다. 그래도 100명 중의 한 분이라도 위험한 순간에 함께 하게 되어 위기를 넘긴 경우, 가장 힘들 때 옆에 있어 주는 것 만으로 그분께 힘이 되어 주는 시간, 우울의 늪에 빠져 회사고 뭐고 다 때려치운다고 했던 분이 아빠가 되어 행복하다고 할 때,  나의 일로 인해서 많이 기쁘답니다'


회사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원합니다. 1년에 몇 명의 내담자가 상담을 받았는지, 교육의 효과는 어떤지, 상담의 증가하고 있는지?(증가하는 게 좋은 방향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자신의 성장을 위해 상담이 느는 것은 좋은 방향이겠지만요^^) 등등. 가시적인 효과는 얼만든지 만들어낼 수 있지만, 진짜일까? 란 의심을 떨칠 수는 없습니다. 보이는 통계가 한 분 한 분의 성장 스토리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바로 여기서 제 취미의 목적을 알게 되었답니다.

작년에 만든 몇 개 안된 인형들 중...펭귄이들

뜨면 뜨는 대로 나오는 거예요. 많이 뜨면 많이 뜨는 데로 형체가 분명해지고, 기술이 늘면 늘수록 예쁘게 나오고, 다 완성하고 나면 뿌듯함이 뿜뿜! 내 노력의 결과가 '확실한 성과'로 이어지기에 코바늘 뜨기가 질리지 않는 취미인 거지요. 문득, 상보성의 원리가 떠오르네요. 내 마음속에도 노동(?)에 대한 보상의 욕구가 대립적 구도로 존재하고 있어요.  불확실한 성과지만 고통도 아름답게 느끼게 해 주고 아주 드물게는 하늘빛처럼 고귀한 감사함을 주는 상담일과, 확실한 성과여서 노동시간에 맞춰 즉각적인 보상을 주는 취미. 두 가지 영역 다 소중합니다. 일과 취미가 서로 보완하고 상호작용하면서 내 마음의 균형을 맞추고 있네요.


나 어른님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점잖고 바른 소리만 하는 어른에게도 내면에는 아이의 모습이 살아있네요. 상보성의 원리를 나 어른님도 쓰시고 있나봅니다.  안전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시고요. 아이가 엄마에게 장난감을 사달라고 하는 것처럼(장난감을 사주는 게 자신을 사랑하는 증거라 생각하며) 인형 받기를 통해 자신에 대한 관심을 확인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하긴, 나 어른님만이 아니었네요. 코바늘 인형 만들기 초창기 때 열쇠고리 인형을 한동안 만들었는데요, 신념이 꼿꼿한 더 어른님께 상담을 마치며 작은 미니인형을 선물해 드렸는데, 그 인형을 자동차 백미러에 아직도 달고 다니신다고 합니다. 7년이 훨씬 지났는대도요^^

나 어른님께 조금 심하게 하지 않았나 찔리기 시작하네요. 그러나 더 이상은 안 되지요! 진짜 인형을 원하는 게 아니라(사실 진짜 원하시는 것처럼 느껴짐ㅋㅋ) 그냥 그런 떼씀이 그리운 것이라 합리화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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