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lias Feb 28. 2024

피아노 치기

이번에도 그만 둘 뻔했다!

작년 11월부터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피아노를 처음 배운 건 초등학교 1학년이 끝나갈 때쯤이었다. 선생님은 많이 엄격하신 편이셔서 그날의 목적을 반드시 이루어야 끝내주셨다. 진도도 빨리 나가고 대회에서도 상을 많이 받게 해 주니 동네에서 인기가 가장 좋은 학원이었다. 귀가 얇은(^^) 엄마도, 아니면 학원선생님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한 게 학원에 등록하게 된 정확한 이유였을 것이다. 워낙에 내성적이었던 나는 일단 집을 나서서 모르는 아이들이 많은 학원에 가는 게 부담스러웠다. 학교야 필수코스지만 피아노 학원은 필수가 아닌데 굳이 마음에 부담을 안고 다녀야 하는 게 늘 불만이었다. 다행히 피아노는 적성에 맞는 편이라 참을 수 있었다.


원장선생님은 투명한 긴 자를 들고 다니셨는데, 틀리면 자로 손가락을 딱 치셨다. 세로로 선 자와 손가락 뼈가 제대로 만나면 장난 아니게 아팠다. 그 만남이 무서워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피아노를 쳤다. 한 번은 사촌 동생이 놀러 와 피아노학원에 따라왔다. 사촌동생은 어린 나이임에도 성격이 강해서 좀 무서웠다. 한번 울면 목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사흘 밤낮을 울어대는 지독한 동생이었다. 반면 나는 순둥이어서 사촌동생에게 다 맞춰주는 편이니 동생은 나를 좋아하며 잘 따랐다. 그날도 원장선생님은 자를 들고 돌아다니시며 지도를 하셨고 사촌을 데리고 온 나는 동생이 신경 쓰여서 피아노에 집중하지 못했다. 탁! 자가 내 손등을 내리쳤다. 탁! 탁! 으악!!!!!!


사촌동생이 동생답게 사고를 쳤다. 원장선생님의 엉덩이를 힘껏, 꽉 물어버린 것이다.

"우린 언니를 물어? 나쁜 선생님!"

원장선생님은 그 자리에 쓰러지셨고, 나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고, 동생은 당당했다.

그 후로 난 원장선생님이 날 미워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학원에 점점 가기 싫어졌다. 어떡하면 안 다닐 수 있을지 고민을 해봐도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내게 기회가 왔다. 3학년이 되어 신체검사를 했는데 시력이 엄청 안 좋아진 것이다. 안경도 쓰게 되었다.


"엄마, 나 눈이 이상해... 악보가 잘 안 보이고 막 흔들려. 그래서 잘 보려고 하면 머리가 아파..."

연필을 종이에 진하게 문질러 그 가루를 손에 묻혀 눈 밑에 발랐다. 다크서클이 아주 심하게 내려온 사람을 지나쳐 연극분장을 한 사람처럼. 그 어린 마음에 눈 밑이 시꺼멓게 되면 아파 보일 것 같아서, 피아노 때문에 내가 아파간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엄마께서 "어이구, 눈밑이 아주 시커멓네... 피아노 쳐서 눈이 그렇게 된 거야?"

"응... 머리도 어지럽고... 아무래도 피아노학원 다니면 안 될 것 같지?"

내 마음을 빤히 알고 있던 엄마는 웃으시며 "그래, 이러다 큰일 나겠다. 엄마가 선생님께 전화해서 말할게. 눈이 나빠져서 그만두겠다고" 하셨다.


성공이다. 나는 이렇게 피아노와 이별했다. 아니 피아노 학원과 이별했다. 피아노 치기는 즐거운 일이었으니까. 학원만 안 갔을 뿐 집에서 피아노 치는 시간은 오히려 늘었다. 내가 치고 싶은 곡만 골라서 치니까 더 신났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나는 되지도 않는 실력으로 피아노를 치면서, 나름 피아니스트가 되어 감정에 취해 몸까지 흔들며 피아노를 즐겼다. 문제는 실력이 업그레이드되지 않고 늘 같은 자리에 맴돌다가 점점 쇠퇴했다는 것이다. 빠른 템포이거나 까다로운 곡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감미롭고 느린 곡만 가끔씩 치게 되었다.


그러던 내가 작년 다시 피아노 학원엔 제 발로 가게 된 것이다. 원장선생님께서 테스트를 해 보시고는 "음... 혼자서 치셔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하셔서, "아니에요, 선생님. 저 게을러서 안 돼요. 이번엔 실력 좀 업그레이드해보고 싶어요. 빡세게 해 주세요~"라고 부탁드렸다. 미쳤다. 이젠 손이 굳어서 진짜 손가락이 안 돌아가는데. 어쩌다가 이런 막말을 했던가... 입이 방정이다 후회도 하면서 나의 피아노 치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원장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신 곡은 첨부터 어려웠다.

"이런 곡을 제가 감히 칠 수 있을까요?"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 쉬운 건 혼자 치시고 이건 저와 함께 ㅎㅎ"

선생님은 믿고 연습을 하니.. 어라, 된다. 진짜 엄두도 안 났던 곡을 칠 수 있게 되었다. 첫 곡을 성공하자 그다음엔 더 어려운 곡에 도전했다. 손가락이 쑤시고 팔이 아파도 신기해서 계속 치게 되었다. 노력한 만큼 실력이 느는 게 보이니 더 열심히 쳤다. 그러다 지쳐버린 것이다. 곡은 점점 어려워지고 연습할 시간은 부족하고... 늘지 않는 정체의 기간이 온 것이다. 학원이 가기 싫어지고 몸 컨디션도 안 좋아 한 번 빠지고 나니 더 가기 싫어졌다.


'그래, 어느 정도 실력도 늘었겠다. 이제 혼자서도 연습하면 되지 않을까? 회사 다니면서 성실하게 피아노연습한다는 게 말이 쉽지~너무 무리했어. 오늘 원장선생님께 말씀드려야겠다. 회사일이 바빠서 잠시 쉬고 한다고.. 열정적인 선생님께 미안하지만 할 수 없잖아...' 하면서 마음을 굳히고 있는데, 원장선생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요즘 많이 힘드시지요? 몸도 아프시고... 직장 다니면서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곡들을 해내시다니. 제가 부끄럽다니까요. 열정이 대단하세요. 그런데 이렇게 하시다가는 부담되어 오래 못해요. 어른들의 취미생활은 천천히, 즐겁게 하셔야 되거든요. 힘들면 빠지시고 일주일 쉬다가 다시 오고... 그냥 편하게 하세요~"

와우, 이런 타이밍이!


돌이켜보니 나는 아주 필수적인 것 빼놓고는(학교생활같이) 다른 활동, 일명 취미라 일컬어지는 아니 특기? 꾸준히 노력해야 도달할 수 있는 활동들은 중간에 다 포기하곤 했다. 1달을 못 다닌 학원들이 수두룩하다. 욕심은 많아서 이것저것 배우고 싶은데 실제로 해보니 힘들어서...ㅜㅜ 게다가 나의 엄마는 내가 싫다 하면 바로 "응. 그래~"하는 분이라 뭐 하나 제대로 배운 게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어린애가 뭘 알아, 다 힘들면 그만하고 싶지, 그럴 때 엄마가 좀 꼬셔서~살살 달래서 계속 배우게 했으면 좋았을 걸~ 나는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엄마같이 하진 말아야지"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우리 엄마와 똑같다. 아이들이 하기 싫다면 바로 "그래, 그럼 하지 마~"한다. 물론 여기엔 합당한 이유가 있지만 이 얘긴 나중에~


원장선생님의 기가 막힌 타이밍에! 깜짝 놀랐다. 하마터면 또 피아노를 그만둘 뻔했다. 다시 시작할 때 최소 1년은 꾸준히 해보자! 였지 않는가. 그런데 3개월 만에 흔들려 익숙한 행동패턴에 빨려 들어갔다. 그 순간 내게 일침을 놔준 원장선생님께 너무나 감사한다. 쇼팽으로 시작해서 베토벤, 바흐, 슈베르트의 예쁜 곡들을 만나고 있다. 혼자서는 꿈꾸지 못했던 아름답고 멋진 곡들. 더 만나보자. 중간중간, 너무 못 쳐서 짜증이 솟구쳐 오르더라도 일 년은 버텨보기로 한다. ^^  

   






작가의 이전글 아빠와의 이별은 안녕(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