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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ias Feb 29. 2024

네 탓이야

방어기제 : Dark red - 투사  

Dark red는 자수성가한 대표적인 케이스로 남매의 첫째다.

믿을 건 자신의 몸뚱이와 나름 똑똑하다 여겨지는 머리, 그리고 제일 중요한 집요함. 실업고등학교를 나와 취업하여 돈을 벌어 서울소재 대학 공대에 들어갔다. 별별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고 알아주는 회사에 취업했다. 얼굴도 말발도 처지는 편이 아니니 입사하자마자 소개팅이 들어왔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였던 그였건만 소개팅 몇 번에 자만해졌다. 몇몇 여성의 호감을 시원하게 거절하고, 귀염성 있는 얼굴에 자그마한 체구의 교사와 사랑에 빠졌다. 단칸방에서부터 시작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방 세 칸짜리 빌라를 사고 다음엔 아파트를 샀다. 어깨에 힘이 자연스레 들어가고 세상이 자신에게 호의적이라고 느껴졌다. 시골의 때도 다 벗겨지고 서울내기의 깔끔함이 배었다고 생각했다. 어디를 가도 환대받고 인기 있는 사람인 자신이 멋지게 느껴졌다. 


이렇게 잘 나가던 Dark red에게 골칫덩이가 하나 생겼으니, 바로 천방지축 첫째 딸이었다. 천성이 까칠하고 예민하더니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하는 짓이 완전 문제아였다. 자정이 되어서까지 싸돌아다니고 화장까지 하더니, 내다 버릴 찢어진 옷 같은 것만 입고 다녔다. 어느 사이 중학교 남자애들과 어울리더니 중2가 되어서는 아예 집을 나가버렸다. '누굴 닮아 저럴까? 나는 아닌데 와이프를 닮은 게 틀림없다. 와이프 성깔도 보통이 아니지 않은가? 연애할 땐 몰랐는데 욕심이 많고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분을 못 참는 여자 아닌가. 와이프 반 애들이 불쌍하다. 성질이 불 같아서 말 안 듣는 꼬맹이들 보면 어찌 참나 모르겠네. 하긴 지 딸 하나 간수 못하는데 소리치고 야단친들 애들이 말을 듣겠나. 그러니 갑상선항진증이라나? 뭐 그런 병에 걸리기나 하고. 내가 속이 터진다. 결혼을 잘못했어. 그때 수더분하고 말 잘 듣는 여자를 선택했어야 했는데.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와이프가 엄청 매력적으로 보였잖아.'

'딸이 가출했는데 걱정도 안 되냐고? 나를 이렇게 실패자로 만들어놓은 자식을 뭐가 이쁘다고 걱정하나? 찾으러 안 가냐고? 안 가지. 지 발로 나간 애를 내가 왜 찾으러 가. 죽든 살든 지가 한 짓이니 책임을 져야지. 중2면 이팔청춘이여. 다 컸네. 15살이면 독립운동을 할 나이지. 내가 그 나이 때는 새벽에 신문도 돌리고, 우유도 돌리면서 공부도 잘했다고. 그 딴 자식 걱정하는 게  시간낭비야. 될 놈은 떡잎부터 알아본다 했어. 이미 글렀어. 그 자식은. 그나저나 나는 이렇다 쳐도 광수는 지 사촌동생이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도 안 되나? 신체건강한 놈이 사촌 여동생 걱정도 안 하고 나쁜 놈이네.'


그의 핀잔을 받은 고등학생 광수는 자신의 아빠와 함께 사촌동생을 찾아다닌다. 정작 본인은 꿈쩍도 하지 않고 욕만 퍼붓는다. 하나뿐인 친척오빠가 동생에게 관심이 없다, 싹수없다는 식으로. 집을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하는 딸은 결국 돈으로 보낸 대학교마저 포기하고 말았다. Dark red는 회사에서 나오는 대학등록금도 써보지 못하게 하는 딸이 미워죽겠다. 누가 딸에 대해 물어보기라고 하면 화를 버럭 내면서 "난 자식이 없어!"해 버린다. 자신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낸 딸이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


 Dark red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자신의 바람과는 다르게 된 주변 상황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갑상선항진증으로 살이 왕창 쪘다 빠졌다를 반복하더니, 학교마저 때려치워버린 와이프. 그 와이프의 성격을 그대로 빼다 박아 차라리 없었으면 좋을 인간구실 못하는 딸자식. 하나뿐인 사촌동생을 잘 이끌지 못하고 나 몰라라 자신만 챙기면서 사는 광수. 모두 원망스럽고 서운하다. '난 잘났는데 주변이 받쳐주지 못해 크질 못하는구나' 란 생각에 억울하기만 한다. 


 Dark red의 방어기제는 투사다. 투사(projection)개인의 태도나 특성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원인을 돌리거나, 또는 자신의 감정, 태도를 다른 사람에게 전이시키는 심리현상을 말한다. Dark red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의 원인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타인의 탓을 하고 있다. 잘못된 일이 내 책임이 아닌 남의 책임이라고 지각하면서 마음의 갈등이나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먼저 찾아보는 주체성이 약하기 때문일 수 있다. 내 행동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남이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깔려있다. 본인은 아니라 하지만 타인이 내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타인의 행동과 비판에 민감해면서 관심이 초점이 내게서 타인으로 향해있게 된다. 그러니 자연스레 '남 탓하기'를 계속하게 되는데, 이는 일시적으론 마음이 편안해지겠지만 장기적 측면에서는 자기반성과 자각을 통한 자기 성장이 어려워 부정적인 영향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Dark red의 경우도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점점 거리를 두며 멀어져 갔다. Dark red는 타인이 자신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억울하고 피해의식마저 생겼다. 

그는 현재 외톨이다. 

Dark red처럼 충분히 지각 있는 사람이 어찌하여 사건의 원인을 외부의 탓으로만 돌릴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어린 시절의 환경의 영향에서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 궁핍한 가정의  Dark red는 어릴 적 실수하거나 실패했을 경우, 부모님으로부터 정서적인 지지와 용기를 받기보다는 지속적인 질책과 꾸지람을 들으며 자라났다. 이런 피드백은 Dark red에게 '나는 쓸모없는 아이다'라는 부정적인 자아상과 '실수하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실패하는 사람은 무능력한 사람이다'라는 비합리적인 신념을 가지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쓸모 있고 유능한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에 잘못된 일의 원인은 '내가 아니라 네 탓!'인 것이다. 


 Dark red의 딸은 어쩌면 아버지의 그림자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딸은 꼭 유능해서가 아니라, 내세울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저 당신의 딸이라는 존재로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Dark red의 내면에 있는 실패 해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딸이 대신 드러내면서 말이다. 지금이라도 Dark red가 애써 외면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와 대면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습관적으로 써 왔던 방어기제, 투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 이미 눈치채신 분도 있겠지만  Dark red는 Red(내 얘기는 아닌데... 의 주인공)의 아빠다.      






  



  



















































































































































































































































Projektion / Projection. 자신의 원초아의 위협적인 충동이 타인에게 있다고 가정하는 것. 주로 과민, 분노, 공격성, 편견, 질투 등 부정적인 모습들로부터 야기되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그러한 것들이 타인에게 있다는 식으로 투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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