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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ias Mar 01. 2024

아빠와의 이별은 안녕(8)

그녀는 내 몸에 구멍을 남기고

그녀가 사라졌다. 아무도 그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인 것처럼. 아무 일 없이 세상이 돌아간다. 나만 그녀를 기억하는 것 같다. 일주일이 되어간다. 그녀 없는 세상이. 그녀와 함께 걷던 골목길, 우리가 반대쪽에서 걸어오다 서로 마주쳤던 그 지점. 두 발이 서로 붙던 그 자리에 서 있다. 휘처럼 서늘한 바람이 내 몸을 통과한다. 그녀처럼 아련한 바람이 가슴에 닿는다. 바람이 앉은자리에 구멍이 생겼다. 그 공간으로 그녀가 지나간다. 휘도 지나간다. 그녀가 웃으며 저기 간다. 날 뒤로 한 채, 바람처럼 사라진다. 난 울고 있는데 그녀는 웃는다. 눈물이 구멍으로 흐르니 점점 구멍이 커져간다. 공허해서 견딜 수가 없다. 나도 사라지는 걸까.


구멍이 생기고 나서 그녀를 본다.

여긴 다른 세상이다. 꿈의 세계. 그녀가 저기 있다. 난 꿈이 내가 실제로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세상임을 안다. 오늘은 내가 원해서 온 건가, 그녀가 불러서 온 걸까. 그녀는 날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녀의 얼굴이 계속 변한다. 눈빛은 그대로인데 얼굴도 몸도 계속 변한다. 남자도, 여자도, 아이도, 노인도 모두 그녀다. 형태는 변해도 그녀는 그녀여서 난 그저 반갑다. 다가가서 부서져라 안고 싶다. 오랫동안 살고 죽고 했구나. 나의 사랑이. 많이 힘들었구나. 누군가를 사랑해도 혼자 기억하니 고통이고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존재가 이 세상을 떠나지 못하니 얼마나 외로울까. 당신은 어떤 존재일까?



그녀가 꿈에 나타난 지  칠일째, 내 몸의 구멍이 너무 커져 몸이 휘청거린다. 구멍엔 금빛 가루가 떠다니는데 그토록 아름다운 반짝임이 이토록 슬플 수 있다는 사실이 무섭다. 난 많이 아프고 공허하다.  그동안은 내가 영화를 보듯 그녀를 보았었는데, 오늘은 다르다. 그녀가 병실 침대에 앉아 날 본다. 그녀의 시선에 기뻐서 난 웃는데 이번엔 그녀가 운다. 울지 마요. 당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요. 내가 어떡해야 당신을 도울 수 있지요? 봐요, 이미 나도 변했어요. 몸에 구멍이 이렇게나 크게 생겼어요.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느껴요. 너무 아파 아름답기조차 한 슬픔이나 고통이 너무 많아요. 감정들이 이 구멍에 닿으면 금빛 가루로 변해요.


이 구멍이 점점 커지면 바람이 되는 거죠? 어디든 갈 수 있게,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게. 영원히 죽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거죠? 세상의 이야기들을 느끼며. 당신도 바람인가요? 말 좀 해봐요. 웃지만 말고. 만질 수도 없잖아요. 이렇게 또렷이 보이는데도. 날 데려가줘요. 당신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다른 세계로 넘어왔다. 흔히 현실이라 불리는 세계. 지금의 내게는 무의미한 세계. 몸 한가운데의 구멍 때문에 움직일 때마다 몸이 분리되는 것 같다. 다행히 보건선생님과 친해 보건실에 오후에는 누워있다가 종례시간이 다 되어서야 교실로 돌아갔다. 날 쏘아보는 담임선생님의 시선을 힘겹게 무시한다. 건들지 마세요. 지금은. 제발.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오늘부터 한 시간씩 자습하고 하교한다. 중간고사에서 우리가 1등이었다. 2등과 차이가 얼마 나지 않으니 최선을 다해 우리가 진정한 일등임을 보여줘야 한다.  남지 못하는 사람은 개인적으로 말하고, 지금부터 자습 시작!"


담임선생님이 내 앞에서 움직이질 않는다. 아직 펼치지도 않은 국어책이 담임선생님의 손에 의해 움직인다. 사르륵... 사르륵... 국어책이 던져진다. 모서리에 머리가 맞는다."너 이리 나와,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수업시간에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이 따위 잡생각이나 하고 있어! 뭐? 내 사랑? 아주 도배를 해놨네. 그래, 이 여자 없어져서 죽기라도 할 거야? 웃기고 자빠졌네. 동네 개가 웃겠다. 하하하. 너 미친 거 아냐? 그 선생 행방불명되었어. 원래도 이상해서 없어진 게 이상하지도 않다. 정신 차려!"  뭐가 분에 못 이기는지 담임선생님은 계속 국어책으로 내 머리를 때린다. 이렇게 맞고 있다간 또 쓰러질 것 같다. 금빛 가루가 뭐라 하는데? 시간이 없다고? 서두르지 않으면 보지 못한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대로 교실을 나와버렸다. 구멍이 목 바로 아래까지 커진 것 같다. 바람이 날 밀다시피 한다. 나도 사라지는 걸까.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가 날 기다리고 있다

"평소보다 늦었네. 너랑 친한 국어선생님한테 전화 왔었어. 그 선생님 어디 아팠었니? 내일 아침 중요한 수술에 들어가는데 결과를 알 수 없다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데, 뭔 소린지... 아무튼 오늘 안에 꼭 와 달라는 거야. 여기 병원하고 입원실 적어놨어. 하두 이상한 선생이라 너랑 친한 게 마음에 걸렸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전해주지 말까 하다가.... 진짜 심각한 상황인 것 같아서. 어서 가봐"


드디어 그녀에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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