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학교 로버트 윔슬리 교수 연구팀은 65명의 대학생들에게 비디오게임으로 입체미로를 통과하는 연습을 하게 했다. 다음 날 대학생들이 연습 내용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는지 테스트했다. 연구팀은 첫날 학습에 3가지 서로 다른 조건을 적용했다.
1. 연구팀이 제시하는 과제에 성공할 때마다 합당한 보수를 제공한다.
2. 일정한 금액의 보수를 먼저 지급하고, 이후 과제에 실패할 때마다 보수를 줄인다.
3. 성공 보수 없음.
결과는 어땠을까요?
예상대로 1번 그룹이 가장 우수한 성적을 얻음.
흥미로운 점은 3번 그룹이 2번 그룹보다 좋은 성적을 얻었다는 것.
보수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보수가 책정된 조건이 더 나은 게 아닌가란 생각을 하기가 쉽다. 하지만 이 실험에서는 보수가 존재한다고 해서 무조건 '강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이유는 과제에 실패할 때마다 삭감하는 돈, 즉 '벌금'에 있다. 애초 받기로 되어 있는 보수가 '감점' 형식으로 차감된 후 받게 되는 '잔액'이 오히려 약화로 작용한 것이다.
-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63가지 심리실험(뇌과학 편), 이케가야 유지 지음 - 에서 인용
이케가야 유지 교수는 10년 이상 영어를 공부하고도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만 만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사람이 많은 이유가 위 실험 결과의 맥락에서 보면 명확히 이해된다고 하였다. 시험은 이미 100점이라는 보수이다. 그런데 문법이나 철자가 틀리면 점수가 깎이는 방식이 실험의 2번 그룹의 조건과 일치한다. 이렇게 '감점'을 사용하는 영어 교육은 '의사소통은 즐겁다'는 언어의 긍정적 효과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나하나 꼬치꼬치 따져 점수를 깎는 영어 교육 방식은 특히 회화 능력을 기르는 과정에서 절실히 필요한 자발성을 키워주기는커녕 짓밟아버리다고 주장한다.
이 내용을 읽으며 회화에 유난히 취약했던 내 영어 울렁증이 떠올랐다. 문법을 계속 따지다 보니 듣기가 안되어 고등학교 때는 듣기 평가에서 점수를 다 까먹었다. 토플 시험도 Listening, Speaking 은 거의 포기상태로 임하고(운에 맡기는 수준) 나머지 섹션 만점 맞기로 통과했다. ㅎㅎ 그런데 문제는 입사하여 보는 어학시험이 Speaking이었다는 것.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간신히 Speaking 지옥에서 빠져나왔다 했는데... Speaking만 남게 된 것이다.
영어 말하기 울렁증에 진저리가 난 나는 취미 삼아 일본어를 시작했다. Speaking면에서는 일본어가 영어보다 아무렴 낫지 않을까 해서였다. 처음엔 SJPT 시험을 봤다. 원하는 등급이 나오지 않았다. 일본어 선생님도 참 이상하다 하셨다.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에... 몇 번의 실패에 지쳐 갈 무렵 오픽에도 일본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어떤 식으로 나오는 줄도 모르고 그냥 쳐봤다. 또 망했다 싶었다. 문제당 시간이 모자라서 말하다 끊기고 마지막 2문제는 헤롱거렸기에.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무지하게 결과가 좋았다.
찾았구나, 내게 맞는 Speaking Test!
SJPT 시험은 실수할 때마다 점수가 깎이는 '감점' 형식이고, OPIc 은 점수를 더하는 형식으로 문법이 좀 틀려도 발화량이 많고 자연스러우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실력이 아주 우수한 사람이라면 어떤 시험이든 상관이 없겠지만 나처럼 어중간한 사람에겐 서툴고 실수하더라도 점수가 깎이지 않기에, 안심하고 마음껏 말할 수 있는 방식이 효과적인 것이다. 로버트 윔슬리 교수의 실험 결과를 입증하는 산 증인에 내가 해당되기도 한다. 나는 문법을 신경 쓰다 내가 틀린 것을 느끼고 점수가 깎일 것을 아는 순간 동기가 확 떨어진다. 말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 정확성에 지나치게 신경 쓰다가 충분히 쉬운 답인데도 아예 답을 못하기도 한다. 아예 틀린 지를 모른다면 몰라도 말이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자유롭게 말해야 하는 OPIc이 부담스럽다며 정확하게 암기하면 점수를 올릴 수 있다고 토익 speaking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