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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ias Sep 04. 2024

좋은 이별

상담종결

박과장님!

건강 잘 챙기시며 지내시지요?

상담종결이 얼렁뚱땅 넘어한 듯하여 늦게나마 연락드립니다.

상담신청 시스템이 App으로 바뀌면서 이리되어버렸네요 ㅜㅜ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며 연락을 미루었어요.

에너지가 올라와 이런저런 활동을 하더라도 젊은 시절의 환희는 없을 수 있겠지만,

현재에 맞는 잔잔한 즐거움으로 하루하루 지내시길 바라요.

언제라도 대화가 필요할 땐 환영입니다.^^


아이고... 상담사님,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얼렁뚱땅 넘어가 버렸어요.

그동안이라는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뭐라 은혜에 보은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늘 기운을 북돋아주시고

힘든 일을 다 들어주시고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향우에도 대화가 필요할 때 또 노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상담종결을 이별이라 표현해도 될까?

그런데 나는 늘 종결을 이별이라 느껴서 아쉽고 자주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박과장님은 손에 꼽을 정도로 장기간 만난 내담자다.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만나 오면서 박과장님 마음도 충분히 강해졌기에  

올해 봄부터는 상담을 마무리해야지 하면서

살짝살짝 "이제 그만 홀로서기하셔야지요~"말을 흘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박과장님은 대답을 회피하시면서 딴청을 피우시곤 했다.  


상담신청 시스템이 App으로 바뀌고 2개월 정도의 시험기간에는

"App으로 하면 왠지 찜찜한데... 그냥 오면 안 돼요?" 하시면서 끝까지 버티셨다.

"이젠 정말로 App으로 신청하셔야 돼요, 진짜로요" 하는 내 말에 보냈던 박과장님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 눈빛이 상담장면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찰캌'임을 알았다.


교육을 조금 늦게 끝내서 상담실에 10분 정도 늦게 온 적이 있었다.

박과장님 상담시간이었기에(장기 내담자여서 상담실이 익숙하니) 차 드시면서 편안히 기다리시겠지 하며 상담실 문을 열었는데! 박과장님이 문 바로 앞에 서 계셔서 부딪칠 뻔한 것이다.

"아니, 앉아계시지 이렇게 서 계셨어요? 처음 와본 곳도 아닌데..."

"그러게요. 상담사님과 같이 있을 때는 여기가 이렇게 넓은지 몰랐어요. 포근하니 아담하게 느꼈었는데... 시간도 엄청 빠르게 가구요. 그런데 오늘 상담사님 안 계시고 혼자 있으니 5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고 상담실이 엄청 큰 거예요. 커다란 공간에 혼자 앉아있는 기분이 확 드니까 안절부절못하게 되고.. 그러다 언제 오시나 문 앞에 서 있게 된 거예요. 주인 기다리는 강아지처럼...ㅎㅎㅎ"

"함께 있던 공간에 혼자 계시니까 그랬을까요? 이곳에선 늘 둘이었으니까요..."

"그런가 봐요, 왠지 외로움이 확 오더라고요"

이제는 내가 그렇다.

박과장님이 2주에 한 번은 오시곤 했는데 와야 할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허전하다. 외로움은 아니지만 떠난 사람이 남긴 공간과 시간이 내게 아직 붙어있다. 상담자와 내담자로서 공식적인 장소와 시간을 공유했음에도 가족의 느낌이 있다. 떠나보내야 될 때를 알지만 떠나보내지 못하고 망설였음을 인정한다. 서로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상담을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라 종결할 때가 되어 종결하는 것이 좋은 일이다. 이리 좋은 일이 내겐 이별로 느껴지고 잔인하다까지 느껴져서 종결을 미룰 때가 있다.   


참 희한하게도 이럴 때 시스템의 변화가 종결을 자연스럽게 시켜준 것이다. 나는 박과장님의 성격에 App을 사용할 사람이 아니지... 생각하며 종결을 다짐하고, 박과장님 역시 App은 정이 없고 비밀을 보장 못한다(물론 박과장님의 생각이세요!)는 단호한 믿음으로 신청하지 않고 내 연락을 기다리셨을 것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한때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 이형기 시인님의 [낙화] 한 부분이다.

분명 이별할 때를 알고 있지만

이별에는 그 나름의 타이밍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단칼에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도 아름답지만,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조금 기다려보면 서운하지 않게 이별할 타이밍이 온다.

이별의 시점이 너무 야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이별이라도 이별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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