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라이크 Jan 05. 2022

내 일상이 세계가 되어도 괜찮을까?

2022년이 되고, 서른 살이 되었다. 요즘 사람들이 진심인 MBTI에 따르면 ENFP인 나는 P답게 계획을 안 세우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한 해, 한 달, 하루를 시작할 때 다이어리를 가장 먼저 꺼내는 아이였다. 그래서 모두가 내게 "네가 P라고? 당연히 J인 줄 알았어."라고 말한다. 

나도 내가 J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J인척 노력하는 P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매년 나는 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1년 뒤의 나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좋아하는 작가님의 YEAR PLANNER를 프린트해서 연간 계획을 세우곤 했다. 


20살에는 20대가 시작되어서 너무나 신났고, 25살에는 졸업 후 인생이 조금 두려웠고 26살 프리랜서로 살기 시작하면서 해가 시작될 때마다 올해는 어떤 일을 할까. 고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사업 3년 차가 지나니, 어느 정도 반복되는 루틴이 생기고 웬만한 자극에는 놀라지 않는 약간 두꺼운 심장을 갖게 되었다.(그렇다고 힘든 일이 안 힘든 건 아니지만) 그래서인지 이 루틴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관성이 생겨버렸다. 지금처럼만 안주하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이 내게 계속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그 바람이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안다. 

프리랜서는 내가 노력하는 만큼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만든 루틴은 26살, 27살, 28살의 내가 매일 밤 울고 고민하고 힘들게 얻어낸 결과였다. 

그런데 30살이 되었으니 이 안정감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이렇게만 살면 좋겠다고?

남들은 9시에 출근해서 6시까지 매일 일을 하는 삶을 사는데, 나는 출근하지 않는 아침을 맞이하고 느긋하게 씻은 뒤 미팅이나 수업 한 개를 클리어하면 오늘의 일과를 끝내는 그런 삶이 정말 괜찮은 걸까?

내 일상이 내 세계가 되어도 되는 걸까? 이런 고민을 새해부터 5일 동안 열심히 해보았다. 


맨땅의 헤딩으로 전공도 아닌 분야로 사업을 시작할 때, 돈이 없어도 괜찮아.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행복할 수 있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거야. 다짐하며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몇 번이나 돌려봤다. 이렇게 잠시 쉬어도 된다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나만의 숲을 찾을 거라고 장담했지만, 독립을 하고 차를 사고 밥을 먹는 일에 얼마나 큰 무게가 있는지. 말 그대로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 책임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처럼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려고 나섰고, 며칠 밤을 새우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정말로 기름이 모두 바닥나 빨간등이 들어오고 말았다. 그렇게 달릴 때는 힘들어도 보람도 차고 즐거웠다고 느꼈는데, 이젠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빠질 때가 많다. 이런 일상을 내가 잘 살아가고 있다고 말해도 되나? 잘 살지 않아도 된다고 각종 에세이를 보면서 다짐해도. 나는 아직 내 삶이 주인공이길 바라고 있다. 그 역할이 내게 너무 무거워서 가끔은 시나리오에 잠깐 등장하는 단역이 되고 싶다고 바라다가도, 정작 그렇게 되면 너무나 슬퍼할 내가 보여서. 


어떤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지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 무대는 나의 20대와 함께 막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아마 30살의 나는 또다시 다른 무대를 찾아 떠나겠지.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아직은 잘 모르겠다. 무대를 내려와서의 허탈감을 온전히 다 수용할 만큼 내가 이 무대를 즐기고 있는지. 이 세계와 계속 지내도 괜찮은지. 


작가의 이전글 작고 따뜻한 심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