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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라이크 Jan 03. 2022

작고 따뜻한 심장

안녕, 나의 햄스터

아주 작은 것에서 가끔 위로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배가 도착한다는 문자. 뜻하지 않게 들어갔던 카페에서 마신 맛있는 커피 그리고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를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 

그 누군가에게 꼭 생명이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아, 아니 어쩌면 생명이 깃들어 있을 수도 있지요. 어릴 적부터 함께한 인형일 수도 있고 좋아하는 머그잔일 수도 있고, 어제 산 신발일 수도 있으니까요. 


제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습니다. 손에 올려두면 아주 작은 심장이 콩콩 뛰는 하얀 햄스터였지요. 19년 3월에 저에게 온 귀염뽀짝한 이 친구 '뽀짝이'는 이름 그대로 아주 작고 따뜻한 생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가까이 가는 것도 어려워 먼저 손을 빼버리거나 소리를 지르기도 했지만, 날 선 작은 발톱이 손바닥을 기어 다닐 때 느껴지는 그 간질간질함은 어쩐지 계속 도전해야 할 것만 같은 중독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간질간질함에 하루를 위로받고 이가 빠진 오래된 쳇바퀴가 덜컹거리며 굴러가는 소리에 잠을 청했습니다. 


반려 햄스터를 키운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어머, 귀엽겠다." 혹은 "나도 어릴 때 키워봤는데. 걔네 징그러워. 서로 잡아먹잖아."

초등학교 때 학교 앞에서 병아리 다음으로 쉽게 살 수 있었던 동물. 햄스터는 알고 있지만 키우고 싶지 않은 동물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햄스터는 잡식성 동물이라 고기도 줘야 해요. 출산 후에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단백질 보충을 안 해줘서 그런 거야."라고 홍보대사처럼 해명을 늘어놓기도 했지요. 

당연히, SNS 피드도 온통 햄스터로 가득 찼습니다. 햄스터 키우기에 진심인 사람들이 만든 햄스터용 햄버거, 젤리, 식빵 등 다양한 간식들도 섭렵했습니다. 뽀짝이가 관심을 가질 때마다 뛸 듯이 기뻐하며 기록을 남겼습니다. (물론, 모두 성공한 건 아닙니다) 햄스터 산책용 리드 줄까지 살까 말까 고민을 했었지요. 그야말로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열성팬은 마음만은 진심인 팬으로 바뀌었다가 가끔 소식이 닿는 팬으로 변하였습니다. 그 마음을 알아챈 건 단 한 번도 거슬린 적 없었던 새벽의 쳇바퀴 소리가 귀에 탁 걸렸을 때였습니다. 

3년 정도의 짧은 생을 사는 햄스터의 심장은 그래서인지 누구보다 빨리 통통 뛰고 따뜻합니다. 그 따뜻함에 익숙해지면 그것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잊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릅니다. 

가끔 나이가 들어 피부병에 걸리거나, 먹이를 제대로 먹지 않을 때, 정말 쥐 죽은 듯이 자고 있어 숨을 쉬는지 걱정될 때는 다시 열성팬으로 돌아와 간호와 걱정을 하며 울기도 했지만, 뽀짝이가 제 손바닥 위에 있는 시간은 날이 갈수록 점점 짧아졌습니다. 



작년 가을, 정신 못 차리고 일을 하면서 나 자신도 제대로 못 챙기는 탓에, 솔직히 말하면 뽀짝이 팬클럽을 탈퇴해야만 했습니다. 아침에 먹이를 주고, 잠들 때쯤 들리는 쳇바퀴 소리로 뽀짝이의 생존만을 확인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바쁜 와중에도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위했습니다. 


그리고 바쁜 일이 끝난 오랜만의 휴일, 좋아하는 책방에서 책을 사고 힐링 푸드 떡볶이를 먹고 음악을 크게 틀며 대청소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날, 

"미안해, 엄마가 너무 무관심했지. 엄마 이제 바쁜 거 끝났어."라고 말하며 보드라운 털을 간지럽히려는 날. 

뽀짝이가 떠났습니다. 


조용히 매일 자던 곳에서 아직 온기를 품은 채로 뽀짝이는 떠났습니다. 제가 케이지 속으로 손을 뻗으면 냄새를 킁킁 맡던 그는 한 자리에 가만히 몸을 웅크린 채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손바닥 위에서 올린 뽀짝이는 그나마 남은 희미한 온기도 곧 사라질 것 같았습니다. 


자신을 돌봐줄 수 있을 때까지 나를 기다린 것 같아 미안했습니다. 그 말을 몇 번이나 되새겼는지 모릅니다. 그저 미안하다는 말이 다라, 그것도 미안했습니다. 가족들에게 뽀짝이 소식을 알리고,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먼저 보낸 햄스터 토돌이의 죽음을 맞이했을 때보다 꽤 괜찮았습니다. 조금 커서 그런지 이별이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초콜릿을 다 먹은 뒤에야 카카오의 쓴맛이 입안을 맴도는 것처럼. 그 달콤함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그 온기가 이제 나의 곁에 없다는 것을, 쳇바퀴 소리가 들리지 않는 밤에 깨달았습니다. 

집에 들어와서, 욕실에서 나와서, 설거지를 끝내고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햄스터 케이지는 이제 더 이상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쳇바퀴 소리가 없는 몇 밤이 지나고 나서야 엉엉 울음을 터트릴 수 있었습니다. 그 작은 온기에 내가 얼마나 기대고 있었는지를. 나의 마음이 식어갈 때에도 뽀짝이는 언제나 쳇바퀴를 돌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내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도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뽀짝이를 묻은 자리에 작은 씨앗 하나를 심을 생각입니다. 함께해 주어서 고마웠다고 다음에는 조금 덜 따뜻하고 큰 심장을 갖고 태어나라고 말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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