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늪에서
친구가 전남자친구에 대해 언급했다.
"왜 그 시절이 자꾸 그리운지 알겠어. 나는 결혼이 하고 싶었나봐.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싶었어."
친구의 전남자친구를 거의 혐오했던 나는 하지만 그 사람과는 인연이 아니었을 거다라는 말을 끝으로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연애를 하기 전엔 언제나 나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연애를 시작하고나면 이게 정말 나였는지 놀랄만큼 다른 모습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전남자친구를 3주간 보지 않는 것은 정말 당연한 일이었고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지금의 남자친구를 3일 보지 않는 건 무슨 큰 일이라도 난 마냥 감정이 요동치곤 했다.
그러지 말아야지. 각자의 인생이 있고, 혼자 있을 때 행복한 사람들이 만났을 때 정말 좋은 연애가 된다는 걸 수십, 수백 번 되내어도 어느 순간 내 인생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 온 사람에게 익숙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평생 혼자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지난 몇 년간이 허무해질 정도로, 나는 매일 같이 나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그만큼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반증이라는 생각도 하지만, 여전히 나의 감정을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구나 라는 생각에 쉽게 또 파도에 잠식된다.
며칠 전,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연인을 만났다. 서로의 일을 마치고 지쳤음에도 불구하고 만나서 웃고, 투닥거리고 결국에는 오늘은 정말 행복하게만 지낼 거라고 다짐했던 순간들이 무너지면서 감정에 매몰되고 말았다. 결국 이 슬픔은 서로에게 전이되어 함께 감정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그 사람이 불행해지는 걸 원하는 것도 아니면서도. 나는 왜 나의 욕심을 채우지 못 해 안달이 나는 걸까. 그런 생각을 종종한다.
"산책갈래?" 라고 했을 때 "너무 좋다." 이 말이 아닌 "그것도 좋네." 이 말에 감정이 요동치는 내가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