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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마음 Apr 22. 2024

술 한잔


술 한 잔 생각나는 날이다.




문득 어린 왕자와 술주정뱅이의 대화가 생각난다.


술을 마시는 거예요?

잊기 위해서야.

무엇을 잊고 싶은데요?

부끄럽다는 걸 잊기 위해서지.

뭐가 부끄러운데요?

술을 마시는 게 부끄러워.




<어린 왕자>라는 책을 처음 접했던 어린 시절엔 어린 왕자와 술주정뱅이의 이 대화가 그리 마음에 와닿지는 았다. 술을 마시고 있는 와중에, 술 마시고 있는 자신이 부끄럽고, 그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또 술을 마시고, 다시금  술을 마시는 게 또 부끄럽고...

반복되는 사이클에 이 사람은 하루종일 술을 마시겠군 그래서 술 주정뱅이구나 뭐 그런 정도였다.

주머니 속 구겨진 돈을 꺼내 마지막 남은 짬뽕국물에 소주 한 잔 하며 친구들과 헤어지던 20대 초반의 게, <어린 왕자>의 술주정뱅이는 돈 걱정 하나 없이 매일 술을 마실 수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도 했었다.

이후 그들은 더 이상 내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그들의 대화가 느닷없이 떠올랐다.




외출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다치셨다는 것이다. 복숭아뼈가 양쪽으로 금이 갔다는데 연세가 있으시니 수술하는 것이 회복이 빠르다며 수술을 권한다고 했다.


그 순간 내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엄마의 안부에 대한 걱정이 아닌 한숨이 말이다.


5개월 사이에 벌써 세 번째 입원과 수술이다.

지난번 수술하신 팔목이 이제 겨우 정상으로 자리를 잡아가나 싶었는데..

수술 후 2주간 입원을 해야 하고 그 이후에는 재활훈련을 해야 한다. 또다시 힘겨운 하루하루가  앞에 펼쳐질 것이다.

깊은 상념에 빠질 이 순간, 나는 그 힘듦을 잠시 만이라도 잊고 싶었나 보다.


남편과 술 한잔을 하기로 한다.

어린 왕자의 술주정뱅이처럼 술기운을 빌어 기억을 잊어버리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 생각 여하에 따라 바뀔 일이 아니라면 지금의 시간을 근심으로 채우지 않겠다는 각오다.

남편과 술 한잔 기울이며 잔잔했던 일상의 한 자락으로 지금의 시간을 채워본다.


함께하는 술 한잔에 무거움을 잊었으며, 주고받는 시간 동안 고마움이 함께 했다.

덤으로 주어진 에너지에 힘까지 받았으니

이 정도면 성공한 것이 아니겠는가.

무심히 지나간 일상들이 소중하고 감사하게 다가온다.


나는 내일 엄마가 계신 지방의 병원으로 간다.

나는 지금 음주 짐 싸기 중이다.

간병하러 내려가는 건데 이 기분은 뭐지?

캐리어를 열고 짐을 챙기니 마치 여행 가는 느낌이다. 적어도 오늘은..



일주일이 지나갔네요.

그동안 읽고 싶었던 작가님들의 글,  

조용히 방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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