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콩마음 Feb 13. 2024

우즈베키스탄은 우주?

사진: Unsplash의 Daniel K Cheung

얼마 전에 끝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아시안컵 축구경기를 나는 참으로 열심히 보았다.

우리나라의 새벽경기도 빠지지 않고 모두 시청했는데 연장전에 승부차기까지 느라 다음날 무척이나 고단했던 기억이 난다.


16강부터는 다른 나라의 경기 결과에도 관심이 있어 하이라이트 방송을 통해 주요 장면을 시청하기도 했는데 카타르와 우즈베키스탄이 맞붙은 8강 경기는 개최국 카타르의 일방적인 응원에 승부차기까지 진행된 터라 그 열기는 제3 국민인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결과는 카타르의 승리. 언제나 그렇듯 패한 팀 선수들의 모습은 마음을 짠하게 한다.

대역죄인이라도 된 양 고개 숙여 퇴장하는 우즈베키스탄 선수들의 모습을 본 그날도 그랬다.

축구 경기가 뭐라고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경기 결과에 울고 웃는다. 세상을 전부 잃어버린듯한 슬픈 표정과,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쁨에 넘친 표정이 공존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경기가 아니었음에도 굳이 내가 그 두나라의 경기를 떠올린 이유는 우즈베키스탄과 관련된 추억이 생각나서이다.




나는 워낙에 스포츠를 좋아해서 드라마는 안 봐도 굵직한 스포츠 중계는 거의 빠지지 않고 보는 편이다.

물론 하는 것이 아닌 보는 것을 좋아한다. 스포츠 중계를 자주 봐서인지 우리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스포츠 중계를 보고 있을 때 만화를 틀어달라든지, 어린이 프로그램을 틀어달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옆에서 같이 보며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도 하고  에너지 넘치는 분위기를 함께 느끼면서 그렇게 자랐다.(어쩌면 엄마, 아빠의 광기 어린 응원모습을 보며 입도 뻥긋 못했을 수도 있다.)


오래전 그날.

둘째 아이가 5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는 다리미질을 하면서 TV중계를 보고 있었는데 아이 역시 소파에 앉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엄마의 스포츠 관람에 동참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와 우즈베키스탄의 친선 축구 경기였는데 너무 오래전 일이라 국가대표 선수들이 누구였는지, 어느 나라가 이기고 졌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상대국가가 우즈베키스탄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기억한다.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나 지났을까? "엄마"하며 아이가 나를 쳐다보았다.

무엇이 필요한가 싶어 물어보았더니 갑작스레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엄마 저 사람들은 경기장에 뭐 타고 온 거야?"

나는 그때까지 아이가 정말로 궁금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누구? 구경하러 온 사람? 아님 축구선수들?"

아이가 대답한다. "우리나라 축구아저씨들 말고 저쪽 나라 아저씨들."

시기적으로, 아이의 교통수단에 대한 관심이 한창이었던 때라 나는 별생각 없이 아저씨들은 다 같이 아주 큰 버스를 타고 경기장으로 온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랬더니 아이가 머리를 갸우뚱하며 "아~ 거기서도 버스가 오는구나." 한다.

그러더니 잠시 후 "그런데 버스가 어떻게 오지?" 하며 머릿속으로 뭔가를 생각하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번뜩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아. 그거였구나!'

아이에게 물었다. "저 아저씨들이 우주에서 왔다고 생각한 거야?"

그랬더니 바로 "네."라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발음을 들은 아이는 그 나라의 축구 선수들이 분명 우주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녀석 기발한데?'

아이는 우주선을 타고 와 축구장 한복판에 내리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했었나 보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질문에, 틀에 박힌 굳은 생각으로 버스 타고 온다는 대답을 한 내 모습이 조금은 부끄러웠던 하루였다.




말랑말랑한 아이들의 두뇌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생각들이 가득 차 있는 꿈의 공간이다. 


나의 글감이 아이들의 세계처럼 유연하고 드넓을 수 있기를 바란다면 너무 큰 욕심이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배려의 따스함으로 채워진 특별한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