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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마음 Jan 03. 2024

배려의 따스함으로 채워진  특별한 하루


12월 29일, 둘째 녀석 생일 하루 전.


아이들이 한 주 동안 각자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오는 주말이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집밥을 차려 먹는다.

사회생활로 인해 바깥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아이들을 위한 엄마로서의 작은 사랑의 표현이다.

하지만 이번 주는 빨간 하트가 표시되어 있는 특별한 날이 주말에 자리 잡고 있어 예외적으로 외식을 하기로 했다. 

둘째의 생일이 다가온 것이다.

무얼 먹고 싶냐고 물어보면 늘 아무거나 괜찮다고 말하는 아들이었는데 웬일로 이번에는 식당을 꼭 집어 얘기해 준다. 이태원에 있는 유명한 음식점인데 sns 인증샷을 통해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곳이고 맛있기로 소문도 자자한 곳이라며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고 얘기를 한다.

어떤 곳인지 궁금해 찾아보니 맛과 특별함이 입 맛을 돋우는데 가격이 좀 있는 편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생일날 가족찬스를 쓰기로 한 것 같다.


맛집에 관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수많은 정보를 꿰차고 있는 큰딸은 우리 가족의 여행 일정 및 맛집 장소 추천과 예약을 도맡아 담당해 오고 있는데 가족의 생일만큼은 생일 당사자에게 그 권한을 일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딸아이에게 추천을 요청한다. 실패확률도 낮고 늘 먹던 것과 다른 다양한 메뉴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생일은 여느 때와는 달리 둘째 아이가 스스로 장소를 정해 가족 카톡 방에 알렸기에 딸아이는 그 소식을 듣고 빠르게 예약을 해주었다.

눈이 내릴 거라는 소식은 N이버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적설량이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나와 있어, 날씨에 대한 별다른 생각 없이 맛집 탐방에 대한 기대감에 설렌 맘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12월 30일 아침.


일어나 창문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눈천지였다.

예쁘고 아름다운 눈의 축제에 초대받은 황홀한 기분으로 휴대폰에 그 절경을 담았다.

따뜻한 커피 생각이 절로 나 원두를 내렸다.

그윽한 향기에 취한 커피 광고의 모델처럼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잔을 들고 창틀에 기대어 창 밖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의 모델데뷔한걸음도 떼지 못한 채 끝이 났다.  

찰나의 순간 나는 우리 앞에 놓인 현실과 마주한 것이다.

실외 주차장에 몇 대 안 되는 차량이 눈에 파묻혀 있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오늘 우리가 이태원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족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 눈밭을 뚫고 이태원을 갈 수 있을까? 위험을 감수하고 진행해야 하는가?

그런데 오늘 우리의 생일파티 장소는 예약금을 걸어야 예약을 할 수 있는 곳이었기에 4만 원을 이미 지불한 상태였다.

날씨 탓을 하며 날려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비용이었다.

찾아보니 예약금은 전 날까지 50%를 돌려받을 수 있고 당일은 환불이 되지 않는다고 되어 있었다.

안전을 생각하자는 의견과 비용이 너무 아까우니 천천히 조심해서 운전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다.

아.. 결정이 쉽지 않다. 오늘 같은 날 예약금을 걸고 예약한 다른 사람들은 어떤 방법을 택할까?

우선 시간이 좀 있으니 날씨를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오후  시쯤 되니 드디어 눈이 그쳤다. 물론 바깥 상태는 이미 쌓여있는 눈으로 녹록한 상황은 아니었다.

뉴스 채널을 돌렸다.

이런, 고 소식이 즐비하다.

미끄러진 차량들이 지그재그로 부딪쳐 당황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뉴스를 보지 말 걸 그랬나? 이제 결정을 해야 할 시간인데 뉴스를 보고 나니 더 막막해졌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천재지변으로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예약 취소와 환불 규정이 따로 있지 않을까? 오늘의 상황이 천재지변까지는 아니지만 폭설로 인해 안전에 경보등이 들어온 경우라면...

규정에 토를 다는 것 같아 정말 죄송한 마음이었지만 공손하게 사정을 말씀드려 보자고,  양해를 구해보자고 딸아이와 얘기를 했다.

잠시 후  딸아이는 "엄마, 사장님이 취소처리하고 환불해 주신대요!" 하며 기쁜 소식을 알려주었다.

우리의 사정을 이해해 주시고 기꺼이 환불을 해주신 사장님의 배려, 음식 양을 생각해 미리 준비해 놓으셨을 텐데 죄송한 마음과 감사의 마음이 동시에 내 마음을 채웠다.

아이의 생일날 온 가족이 마음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사장님의 배려에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 근처 음식점을 찾아 행복한 생일식사를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12월 30일 저녁 집 앞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제법 눈이 녹아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 앞 실외 주차장으로 접어든 순간, 우리 가족 시선은 한 곳을  향했고 다 함께 탄성을 질렀다.


이 녀석의 모습을 직접 본 게 몇 년만이던가?



움푹 파인 눈에 도톰한 코, 살짝 올라간 입꼬리, 곧게 뻗은 양손에, 갖가지 색깔로 염색한 단풍잎 머리까지, 그 녀석은 모든 걸 다 갖추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보니 주차 금지 팻말이 묘하게 자리를 잡아 마치  생일 축하 고깔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둘째의 생일파티를 축하해 주기 위해 참석한 친구인 냥 그렇게 눈사람은 양손을 쫙 펼쳐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눈 사람을 만들어 준 가족의 모습에서 또 하나의 '배려'를 발견했다.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눈을 굴리고 있었을 시간의 아파트 앞마당은 온통 눈으로 뒤덮여 주차공간을 구분하기도 힘든, 하나의 드넓은 눈밭이었으리라. 그들은 그 넓은 공간 속 마음에 드는 장소가 아닌,  지금의 그 자리를 택해 눈사람을 만든 것이었다.  다른 이들의 주차공간을 침범하지 않고 지켜주려는 배려의 마음을 담아...


그렇게 탄생한 눈사람은 이제 우리 모두의 눈사람이 되었다


배려로 채워진 2023년 둘째 녀석의 생일.

감사함으로 따스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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