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콩마음 Nov 09. 2023

나를 닮았구나

오랜만에 아파트 단지 내 산책길을 따라 걸어보았다.

전에 자주 걷던 코스였는데 오랜만이라 그런지 하천 산책로를 따라 걷는 요즘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공식 산책로인 하천 길은 우선 사람들이 많다.

부딪치지 않기 위해, 방해되지 않기 위해 빠른 걸음과 멈춤 없는 보행을 하게 되므로 눈에 들어오는 사물을 전체적으로 보게 된다. 물론 흩어져 있는 오리가족 수를 세어본다든지 커다란 잉어 떼에 감탄하느라 한두 번 정도 멈춰 서서 자세히 보는 순간도 있긴 하지만.


멀리 볼 수 있고 넓게 볼 수 있는 하천 산책길은 시야가 탁 트여 닫혀있던 마음도 활짝 열리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반면 단지 내 산책길은 온전히 홀로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시간 선택만 잘한다면 말이다.

오늘이 그랬다.

운동개념과는 다소 멀어진 산책 길이었지만 짙은 가을의 자태를 조금은 더 가까이에서 조금은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인 이곳에서 2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래서일까 한 걸음 한 걸음 나의 발이 닿는 모든 곳에 추억이 서려있었다.

놀이터를 둘러보다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시소에 무심한 척 앉아보았.

동생 허리 붙잡으라는 당부를 하고는 반대쪽으로 달려가, 아이들의 무게에 맞춰 시소 끝에 올라앉던 지난날의 모습

눈앞에 펼쳐진다.

시소 끝이 바닥에 닿아 콩하는 소리가 날 때마다 깔깔거리며 웃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진다.

철봉대에 거꾸로 매달려 있던 누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자기도 따라 해 보겠다고 가장 낮은 철봉대 앞에서 까치발을 하며 손을 뻗던 둘째,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엉덩이를 끌어안고 철봉에 손을 잡게 해 준 누나에게 '무서워'를 연발하며 얼음처럼 굳어버린 둘째의 모습도 떠오른다.

한 귀퉁이 벤치에 나를 앉히며 동생과 놀고 있을 테니 엄마는 라고 말해주던 천사 같은 딸의 모습은 지금의 내 마음을 또다시 사랑으로 채워주었다.

놀이터에 자리한 모든 것들이 흐르는 세월을 이기지 못해 덧칠이 었지만, 아이들과의 아름다운 추억은 거듭되는 덧칠 속에서도 화석처럼 남아있으리라.




곳곳에 자리 잡은 추억을 더듬으며 나는 그렇게 몇 바퀴를 계속 걸었다.

 앞으로 향하던 길,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 가운데 유독 내 눈에 들어온 하나가 있어 걸음을 멈춰 섰다.



나를 닮았다.


거뭇거뭇 올라온 기미에 갱년기 홍조를 띤 모습까지 참으로 나를 많이 닮아있었.

지난 추억을 떠올리는 매 순간 아이들의 모습만이 눈에 가득했었는데, 낙엽을 마주한 그 순간 비로소 나는 내 눈에 ''를 담았다.

모든 순간을 함께 하며 지금을 살고 있는 내 모습이 한 장의 낙엽 속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었다.


나이  내 모습이 특별히 아름다워 보이는 하루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지막 당첨번호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