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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마음 May 23. 2023

레고 블럭을 삼킨 아이

우연한 만남 1

                                                                                                사진: Unsplash의 Caleb Angel


집에서 5분 정도 내려가면 하천을 따라 걷는 산책로가 나오는데 남편과 나는 저녁 식사 후 종종 이 길을 따라 산책을 한다.

현관에서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설 때면 '오늘은 여기까지 갔다 오자'하고 그날의 목적지를 정하는데 왕복 칠천 걸음 정도의 거리로  정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그 목적지는 한 곳으로 정해졌다.

동네의 명소로 자리 잡은 쇼핑몰 근처 산책로까지 걷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다.

쇼핑몰은 백화점만큼의 사이즈는 아니었지만, 지하철과 연결되어 있고 주변의 수많은 아파트 단지에서 힘들지 않게 걸어갈 수 있는 곳이라 많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 장소였다. 산책의 반환점인 그곳은 커피 한잔하고 오기에도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있던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이번 어린이날 연휴는 계속 비가 올 거라는 소식이 뉴스마다 연이어 보도되었기에 비 오기 전 산책을 매일 해야 한다며 집을 나섰다.


우리는 쇼핑몰 근처 산책로를 향해 걷다가 눈요기 한번 하고 가자며 쇼핑몰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의 1층에는 넓은 행사장이 있는데 몇 주 간격으로 주제를 바꿔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당연히 그날은 어린이날과 관련된 행사를 하고 있었다.

동전을 넣은 후 3d 안경을 쓰고 운전을 할 수 있는 커다란 자동차와 오토바이 기계도 놓여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웅장한 레고 전시물이 여러 개 자리 잡고 서 있었다. 또한 직접 레고를 경험해 볼 수 있는 테이블도 여러 개 놓여 있었다.

누가 봐도 어린이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이 시끌벅적한 행사장을 바라보며 우리는 에스컬레이터를 오르고 있었다. 아래를 무심코 내려다보니 테이블 주변에 앉아 레고 조각을 맞추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문득 둘째 아이의 어릴 적 일이 생각난다.


둘째 아이가 세 살 때의 일이다.

일찍 퇴근한 적이 거의 없던 남편이 그날따라 일찍 퇴근해서 집으로 왔다. 물론 그 시간도 다른 사람들의 퇴근보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늘 잠들 무렵 오던 아빠가 일찍 와서 둘째도 신이 났었나 보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아빠를 보며 힘껏 달려가 안겼다.

남편은 아이를 한번 안아주고 '아빠 씻고 와서 놀아줄게.' 하며 아이를 내려놓았고 아이는 아빠를 따라가려고 방향을 틀어 걷다가 아빠의 발에 걸려 넘어졌다.

그런데 넘어지면서 거실에 놓여 있던 좌탁에 머리를 부딪친 것이다. 쿵 소리가 나긴 했지만 괜찮으려니 하고 울고 있는 아이를 일으켜 세우다가 나는 비명을 지르고야 말았다.

아이의 눈썹 부위가 찢어져 피가 솟으며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피가 그렇게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걸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침착하려고 애써 보았지만 이미 타이밍을 놓친 지 오래다.

남편은 벗으려던 겉옷에 한쪽 팔을 다시 집어넣고는 아이를 들쳐 앉고 빠른 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늦은 저녁 첫째 아이만 두고 갈 수 없어 잠옷을 입고 있던 첫째도 그대로 차에 태워 병원으로 갔다.

이미 병원 진료는 끝난 시간이었기에 우리는 곧바로 응급실로 향했다.



가는 내내 피는 계속 뿜어져 나왔다.

신속하게 절차를 밟고 아이는 바로 수술실에 들어갔다. 울다가 지쳐 잠이 들어버린 아이는 마취주사에 다시 깨어 울기 시작했다.

마취주사가 들어가고 아이는 다시 잠들었지만 자면서도 크게 흐느끼는 아이의 몸짓에 정교하게 꿰맬 수가 없다며 의사 선생님은 남편을 수술실로 불렀고 아이의 머리가 최대한 움직이지 않도록 잡고 있으라고 했다.

남편이 수술실로 들어가고 첫째 아이와 나는 대기실에 앉아 수술이 잘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의 울음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마취가 덜된 건지 어찌 된 일인지 유리창 너머로 발버둥 치며 큰소리로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다시 몸속으로 두 번째 마취제가 들어갔다. 그리고 수술은 무사히 끝이 났다.

의사 선생님께서 밖으로 나와 우리를 불렀다. 엷은 막 뒤로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이 찢어졌는데 신경이 건드려지지 않아 천만다행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맘 속으로 감사합니다를 얼마나 외쳤는지 모른다.

그제야 큰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두 손을 모은채 동생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기도하고 있는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발견한 순간 내 눈에서 멈췄던 눈물이 또다시 흘렀다.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


아프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온 마음을 다해 기도했으며 그렇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때 내 옆으로 한 사람이 다가왔다.

"아이가 많이 아픈가요?" 울어서 부은 내 눈을 보며 말을 건네왔다.

나는 자초지종을 얘기했고, 그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많이 속상하시겠네요. 수술이 잘 끝난 것 같으니 이제 괜찮을 거예요"라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분은 우리가 정신없이 서성이는 동안 옆에서 쭈욱 우리의 모든 상황을 보고 계셨던 것 같다. 처음 만나게 된 사람이었지만  그분이 건네준 말 한마디는 나로 하여금 안정을 찾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한숨을 돌린 나 또한 조심스레 그분에게 말을 건넸다. 어떻게 오신 거냐고.

그분은 너무도 쿨하게 "울 아이가 레고를 삼켰지 뭐예요."라고 했다.

심각과는 거리가 먼 표정으로, 특별할 것도 없다는 듯 툭 던지시는 말투에 오히려 내가 당황했던 것 같다.

"저 녀석이 작은 레고도 아니고 큰 레고 덩어리를 삼켰지 뭐예요? 어떻게 그게 목구멍으로 넘어갔나 몰라. 저게 들어가긴 쉬워도 나오기는 어려울 텐데... 먹을 게 없어서 저런 걸 다 먹나 모르겠어요. 지금 사진 찍고 있어요"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하셨다. 나는 순간 처음 만난 그분이 우러러보였다.


"ㅇㅇㅇ보호자님 이쪽으로 오세요"라는 소리가 들리자 그분은 내게 인사를 한 뒤 달려갔다.

그렇게 우리는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레고를 삼킨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씩씩한 엄마와 레고를 삼킨 그 아이도 어디에선가 레고를 보면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리라.



사진: Unsplash의 Derek F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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