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또 딸

자매라는 선물 1

by 돌콩마음


prologue


8남매의 맏아들이신 아버지와 7남매 막내이신 어머니 사이에서 우리 삼 남매가 태어났다.




언니의 탄생.

딸, 아들을 떠나서 '첫'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그건 모든 사람들의 특별한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되는 것 같다.

언니가 그랬다.


그리고

남아선호사상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던 그 시절에 나는 둘째 딸로 태어났다.

첫째가 딸이었으니 모두들 그다음은 아들을 기대하셨던 것 같다.

같은 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첫째 딸과 둘째 딸은 다르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나 보다.

섭섭해하셨던 아빠는 셋째인 남동생의 출산이 임박하셨을 때 병원에 오시지 않았다고 한다.

또 딸일까 봐.....


누구나 그렇듯 자신의 탄생 순간을 기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저 어른들의 대화를 흘려듣고 위의 사실을 알았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어린 나이였으니,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그저 남동생이 불쌍하다고만 생각했다.

탄생의 순간을 아빠와 삼촌, 고모들과 함께 했던 우리 자매와는 달리, 동생은 그렇지 못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쓰였었나 보다.


정작 서운해했어야 할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중학교 3학년이 되고 나서였다.

둘째 딸의 탄생이 얼마나 서운하셨으면 모두들 셋째가 남자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병원으로 달려가셨을까.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그동안의 많은 일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어릴 적 친척분들에게 세뱃돈을 받을 때에도, 부모님 지인들로부터 용돈을 받을 때에도 나는 늘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세배를 드린 후, 혹은 인사를 드린 후 우리 삼 남매는 순서대로 나란히 서서 용돈을 받았다.


"음~ 우리 첫째, 맏 딸!" 하시며 두장을,


"그다음 둘째~" 하시며 더 이상의 언급 없이 한 장,


"오~~~ 우리 집 장손!!" 하시며 두 장.


처음에는 잘못 주신 거라 생각했지만 이 같은 상황은 시간이 흘러도 반복되었다.

체구가 제일 작았던 나는, 모두들 나를 막내로 생각했나 보다 하고 스스로를 다독였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이었을까? 마침내 나는 그 부분에 있어서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나는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다.

언니는 정릉에 있는 '새싹 유치원'을 다녔는데 원복이 참 예뻤다.

내가 그 원복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아직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언니의 유치원 첫 행사가 있던 날이었다.

엄마와 동생과 함께 유치원 정문을 들어섰던 5살의 어린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잠시 흥분했던 것 같다.

천사같이 예쁜, 너무나 입고 싶었던 그 원복이 내 눈앞에 셀 수 없을 만큼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나도 언니처럼 크면 저 예쁜 옷을 입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나는 유치원에 가지 못했다.

당시 다른 기억은 하나도 없는데 그 순간의 기억만 또렷이 남아 있는 걸 보면 정말 나는 그 옷이 입고 싶었었나 보다.

가끔 앨범 속에서 그날의 사진을 발견하면 멋쩍은 미소가 새어 나온다.




내 뒤를 이어 태어난 남동생은 언니 뒤를 이어 집안의 보물 같은 존재가 되었다.

8남매 맏이의 첫아들...

장손의 위상은 어느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고유한 힘이 있었다.

특히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을 때의 반찬 배치는 언제나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고기 관련 반찬은 언제나 동생 자리에 빼곡히 몰려있어, 어린 내가 손을 뻗어 가져오기에는 너무도 멀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남동생도 유치원을 다녔다.


성인이 된 후 나는 엄마께 "왜 나만 유치원을 못 갔어요?"라고 용기 내어 여쭤 본 적이 있었다.

행여나 엄마 맘이 상하실까 염려되어, 엄마의 뱃살을 툭툭 가볍게 치며 장난스럽게 말이다.

"음... 그러게. 왜 너만 안 보냈지?" 그리고 엄마는 말씀이 없으셨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그 이유를 알고자 하지 않았다.

이 역시 중3 무렵의 깨달음과 연속선상에 있는, 둘째 딸의 비애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늦은 깨달음이었지만 이유를 알게 된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매끄럽진 않았지만 받아들였다.

시대가 그러했으니 말이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사진: Unsplash의 Possessed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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