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라는 선물 1
prologue
딸, 아들을 떠나서 '첫'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그건 모든 사람들의 특별한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되는 것 같다.
언니가 그랬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그동안의 많은 일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어릴 적 친척분들에게 세뱃돈을 받을 때에도, 부모님 지인들로부터 용돈을 받을 때에도 나는 늘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세배를 드린 후, 혹은 인사를 드린 후 우리 삼 남매는 순서대로 나란히 서서 용돈을 받았다.
"음~ 우리 첫째, 맏 딸!" 하시며 두장을,
"그다음 둘째~" 하시며 더 이상의 언급 없이 한 장,
"오~~~ 우리 집 장손!!" 하시며 두 장.
처음에는 잘못 주신 거라 생각했지만 이 같은 상황은 시간이 흘러도 반복되었다.
체구가 제일 작았던 나는, 모두들 나를 막내로 생각했나 보다 하고 스스로를 다독였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이었을까? 마침내 나는 그 부분에 있어서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나는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다.
언니는 정릉에 있는 '새싹 유치원'을 다녔는데 원복이 참 예뻤다.
내가 그 원복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아직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언니의 유치원 첫 행사가 있던 날이었다.
엄마와 동생과 함께 유치원 정문을 들어섰던 5살의 어린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잠시 흥분했던 것 같다.
천사같이 예쁜, 너무나 입고 싶었던 그 원복이 내 눈앞에 셀 수 없을 만큼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나도 언니처럼 크면 저 예쁜 옷을 입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나는 유치원에 가지 못했다.
당시 다른 기억은 하나도 없는데 그 순간의 기억만 또렷이 남아 있는 걸 보면 정말 나는 그 옷이 입고 싶었었나 보다.
가끔 앨범 속에서 그날의 사진을 발견하면 멋쩍은 미소가 새어 나온다.
내 뒤를 이어 태어난 남동생은 언니 뒤를 이어 집안의 보물 같은 존재가 되었다.
8남매 맏이의 첫아들...
장손의 위상은 어느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고유한 힘이 있었다.
특히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을 때의 반찬 배치는 언제나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고기 관련 반찬은 언제나 동생 자리에 빼곡히 몰려있어, 어린 내가 손을 뻗어 가져오기에는 너무도 멀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남동생도 유치원을 다녔다.
성인이 된 후 나는 엄마께 "왜 나만 유치원을 못 갔어요?"라고 용기 내어 여쭤 본 적이 있었다.
행여나 엄마 맘이 상하실까 염려되어, 엄마의 뱃살을 툭툭 가볍게 치며 장난스럽게 말이다.
"음... 그러게. 왜 너만 안 보냈지?" 그리고 엄마는 말씀이 없으셨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그 이유를 알고자 하지 않았다.
이 역시 중3 무렵의 깨달음과 연속선상에 있는, 둘째 딸의 비애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