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흘러나온다.
선율이 너무 슬퍼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신나는 음악에 몸을 흔들기도 한다.
그렇게 몇 소절을 흘려보내고 나면, 나는 이내 옛 생각에 잠겨 노래가 탄생했던 바로 그 시절로 돌아가 있다.
조용필의 <친구여>.
문득 고2 야간 자율학습 때의 밤하늘이 떠오른다.
어느 날 같은 반 한 친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야간 자율학습 쉬는 시간, 캄캄한 하늘을 바라보며 교실 앞 발코니에 서 있던 내게 그 친구는 편지 한 장을 건네주고 사라졌다.
밤의 정취에 취해 있던 나는 자리를 옮기지 않은 채 교실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으로 글을 비춰가며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묘한 기분이었다.
친구로부터 좋아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은 것이다.
여자 친구에게서.
지금은 사라져 찾아볼 수 없지만, 활발한 성격에 리더십이 뛰어났던 나의 고교 리즈시절, 내 주위에는 항상 친구들이 많았다. 다양한 부류의 친구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저 진한 우정을 나누고픈 어느 한 친구의 편지라고 받아들이기에는 가볍지 않은 넘침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그런 편지를 받았다면 깔깔거리며 끌어안고 장난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열일곱이라는 나이 때문이었을까, 나는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무거움을 느꼈다.
요즘이야 동성끼리 좋다는 표현을 한다는 게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 있겠지만, 그 당시 사회는 그런 일들이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여지던 때였다.
그저 편지 한 장 받았을 뿐이었는데, 그전까지 격의 없이 지냈던 그 친구가 순간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최대한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친구를 대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친구는 나의 그러한 노력마저도 눈치챈 것 같았다.
한동안 그 친구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지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깊은 가을 어느 날이었다.
야간 자율학습 쉬는 시간, 교실에서 다른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던 내게 그 친구가 다가왔다.
할 얘기가 있다며 발코니 쪽으로 먼저 걸어갔고 나는 약간은 긴장된 마음으로 친구 뒤를 따랐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친구가 입을 열었다.
최근에 들은 노래인데 너무 좋았다며 내게 직접 불러주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는 예전처럼 친한 친구로 잘 지내자는 말과 함께 바라는 대학에 꼭 합격하길 기도하겠다고도 했다.
나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고 친구는 내게 조용필의 <친구여>라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친구여 가사>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그리운 친구여
옛 일 생각이 날 때마다 우리 잃어버린 정 찾아
친구여 꿈속에서 만날까 조용히 눈을 감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 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그리운 친구여
학력고사를 치르고 나면 우리는 모두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가겠지,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걸어가고 있을 먼 훗날,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보냈던 찬란했던 이 순간을 우리는 기억할까?
그렇게 미래의 시간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던 과거의 내가, 어느새 그 미래에 도착해 과거를 추억하고 있다.
그 시절의 추억 때문인지 지금도 조용필의 <친구여>를 들을 때면 나는 언제나 그 친구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너도 그런지 궁금한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