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베프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렀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연락하고 만나온, 생일도 며칠 차이 나지 않아 해마다 4월이면 서로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함께 1박을 하는, 정말 예쁜 친구사이인 두 아이.
성인이 된 지 한참 지났지만 내 눈엔 아직도 초등학생 때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두 녀석이다.
연애기간이 꽤 길었기에 우리 가족은 그 친구의 결혼소식에 모두 기뻐했다.
그리고 친구는 딸아이에게 축가를 부탁했다.
딸은 축가로 어떤 곡을 고를지 고민하고 있다며 우리에게 두 곡을 들려주었다.
1. 자우림의 <17171771>
딸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04년 자우림의 <17171771>이 세상으로 나왔다.
귀엽고 상큼 발랄함이 물씬 풍겨 나는 이 곡은 그 느낌이 우리 딸아이와 곧잘 어울렸다.
딸아이는 당시 이 곡을 들으며 가장 친한 친구가 결혼할 때 꼭 불러주리라 마음먹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어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귀 기울여 가사를 들어보니 한마디 한마디에서 사랑이 퐁퐁 솟아오르는 느낌이다.
어쩜 이리도 예쁘고 아름다운 가사인지...
문득 제목의 이 많은 숫자가 무얼 의미하는지 궁금해졌다.
거꾸로 보면 I LUV U와 비슷해서 삐삐시절 연인들이 자주 사용했던 숫자인데 그것에 착안하여 제목을 삼은 것이라고 딸아이가 말해준다.
사실 나는 삐삐를 사용해 본 적이 없었고, 이 곡이 발매되었던 당시에는 터울진 두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없이 보낸 탓에 이 노래에 대한 기억 또한 전혀 없었다. 그러니 이 숫자는 내게 그저 알 수 없는 희귀한 숫자일 뿐이었다.
삐삐시절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딸이 삐삐시절을 보냈던 내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사실이 재밌게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딸이 집으로 돌아간 후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종이에 적어 거꾸로 뒤집어보았으나 이게 왜 I LUV U가 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재도전해 보았으나 또 실패다. 젊은이들 눈에만 한 번에 보이는 걸까?
2. 성시경의 <너의 모든 순간>
2014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삽입곡인 <너의 모든 순간>은 내가 자주 듣는 성시경의 발라드 명곡 중 하나의 손가락을 차지하는 노래다.
나무위키의 도움을 받아보면 이 곡은 2014년 발매된 하루만 1위를 기록하였고 점점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져 갔는데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성시경이 출연하여 이 노래를 부르면서 역주행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기억 어딘가에 숨어있던 노래들을 꺼내어 들려줌으로써 우리의 추억을 다시금 빛나게 해 주는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딸아이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따라 부를 수 있는 성시경의 <너의 모든 순간>을 선택했다.
그리고 어릴 적 다짐했던 자우림의 <17171771>은 결혼식을 앞둔 어느 날, 그 친구에게 따로 불러주었다고 하니 결국 두 노래를 다 불러준 셈이 되었다.
결혼식 당일.
딸아이는 결혼식장에서 만난 초등학교 친구가 찍어줬다며 축가를 부르는 자신의 동영상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니 딸아이가 마이크를 잡고 수많은 사람 앞에서 축가를 부르고 있다.
순간 나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지금까지 연인들의 아름다운 고백이라 느끼며 들어왔던 이 노래가, 그날만큼은 또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딸이 친구를 위해 사랑의 축가를 부르고 있던 그 순간,
엄마인 나는 딸과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행복에 젖었다.
그리고 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한 소절 한 소절을, 엄마인 나는 딸을 향해 그렇게 고백하고 있었다
딸과 함께 해왔던 모든 순간이 떠올라 감정이 벅차올랐다.
<가사>
이윽고 내가 한눈에 너를 알아봤을 때
모든 건 분명 달라지고 있었어
내 세상은 널 알기 전과 후로 나뉘어
니가 숨 쉬면 따스한 바람이 불어와
니가 웃으면 눈부신 햇살이 비춰
거기 있어줘서 그게 너라서 가끔 내 어깨에 가만히 기대주어서
나는 있잖아 정말 빈틈없이 행복해
너를 따라서 시간은 흐르고 멈춰
물끄러미 너를 들여다보곤 해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너의 모든 순간 그게 나였으면 좋겠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차올라 나는 온통 너로
보고 있으면 왠지 꿈처럼 아득한 것
몇 광년 동안 날 향해 날아온 별빛 또 지금의 너
거기 있어줘서 그게 너라서
가끔 나에게 조용하게 안겨주어서
나는 있잖아 정말 남김없이 고마워
너를 따라서 시간은 흐르고 멈춰
물끄러미 너를 들여다보곤 해
너를 보는 게 나에게는 사랑이니까
너의 모든 순간 그게 나였으면 좋겠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차올라 나는 온통 너로.
니 모든 순간 나였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