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는 너의 집이었겠지만 오늘부터는 아니란다
솜솜이가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아마 솜솜이에게는 모든 게 새로웠을 것이다. 우리 집까지 오던 길도, 지하철도, 엘레베이터도, 새로운 집도.
집에 도착한 솜솜이는 이동장 안에서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원래 입양 온 직후에는 쳐다보지 말고 가만히 두어야 하고, 보통은 구석진 곳에 숨으려 할 거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던 터라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생후 77일의 하얀 아기 고양이를 데려왔는데 눈을 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숨만 쉬어도 귀여워... ) 입양 결사반대를 했던 엄마마저 언제 그 안에서 나오나 기웃거리다가 이동장 밖으로 겨우 한 발짝 내딛던 솜솜이를 호다닥 다시 들어가게 만들기 일쑤였다.
사실 나의 솜솜이의 입양 결정은 굉장히 충동적이었기 때문에 (※반려동물의 입양은 충동적이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여러 번 생각하고 고민하고 공부하신 뒤에 결정하셔야 합니다.) 준비가 미흡했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데려오고 싶었는데, 입양보내시는 분과 거리는 멀고 시간은 맞지 않은 탓이었다. 당장 사흘 후에 아가를 데려오게된 바람에 직전날 이동장을 구입하고, 화장실을 사서 모래를 붓고, 오뎅꼬치를 하나 산 게 다였다. 사료 마저 아가를 데려오는 길에 사왔으니 말 다했다. 정말 급한 불만 끈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솜솜이는 생각보다 잘 적응해주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두리번거리며 이동장 밖으로 나온 고양이는 금세 집안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다. 그 작은 몸으로 내 책상 밑을 헤집고, 책장 맨 아래칸을 오르내리며 냄새를 맡았다. 낯선 곳을 탐색하는 그 모습이 심장을 두드리고 마음을 녹였다. 특히 '이렇게나 멋진 턱시도 고양이'의 집사 언니가 적어주었던 필수 물품 목록에 오뎅꼬치가 있었던 건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솜솜이는 자신의 꼬리랑 똑같이 생긴 흰색 오뎅꼬치가 아주 마음에 들었는지 이족보행까지 해가며 장난감을 붙잡으려 애썼다. 그때만큼은 이곳이 낯선 집이라는 것도 잊는 모양이었다.
아마 내 손에서 카메라 셔터소리가 백 번 정도 울렸을 것이다. 한 주먹도 안 되는 크기로 어찌나 날래게 뛰어다니던지, 열 장 중에 아홉 장이 흔들렸지만. 미야욱, 미야욱하고 울며 이동장 안을 들락거리고 의자 다리를 넘나들었다. 끊임없이 우는 모양새가 혹시라도 뭔가 불편한 건 아닌지 염려가 되어 만렙 집사 (고양이 만화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카페 개장 전부터 근무해서 몇 년째 알바중이다보니 거의 다묘 집사.) 친구에게 연락하자 아마 아는 냄새가 없어서 우는 거라는 대답이 왔다. 내일이면 여기저기 냄새를 뒤집어 씌우기 시작할 거라고 했다. 본능이니까, 알아서 할 거라고.
그날 솜솜이는 자다가도 문득 애옹, 하고 울고 다시 잠들었다. 몇 번이나 그랬다. 그 애옹, 소리가 마치 자신이 고양이라는 걸 확인하려는 소리인 것 같아 마음이 살짝 시큰했다. 그래그래, 너 여기 있어. 이제 여기가 너희 집이고, 네가 살아갈 곳이야. 그런 마음으로 잠든 솜솜이를 한참 쳐다봤다. 살짝살짝 건드려도 봤다. 새하얀 털이 보드라웠다. 몇 시간을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친구의 말대로 그 다음날부터 솜솜이는 이 큰 집을 - 사실 별로 크진 않다. 솜솜이한테는 컸겠지, 뭐. -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빨빨 돌아다녔다. 소리가 나면 하나하나 달려와서 참견하고 만지려고 하면 호다닥 도망쳤다. 그래놓고 어느새 슬그머니 옆에 와 꼬리를 살랑이며 털을 스쳤다. 자신의 집에서 뭐 하는 거냐고 화라도 내듯이 또 미야욱, 먀욱 울었다. 정말이지 하루 종일 울어댔다.
게다가 사료를 먹지 않는 탓에 내 속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굶고 있는 솜솜이만 했으랴만은. 솜솜이는 밥을 내놓으라고 다 쉰 목소리로도 계속해서 울었다. 오던 길에 사온 사료는 솜솜이가 먹던 것과 브랜드가 달랐다. 꼬박 하루를 굶다보면 먹을 법도 한데 고집쟁이에 까다로운 이 아가씨는 입을 꾹 다문 채였다.
본래 자신이 먹던 사료가 아니어서인지, 환경이 낯설어서인지, 사료가 너무 크거나 딱딱한 건 아닌지, 몇 번이고 검색하고 입양시키신 분과 몇 차례나 카톡을 주고 받았다. 사료를 따뜻한 물에 고슬려줘도 줘보고, 너무 큰가 싶어 깨부셔서도 줘보고, 손바닥 위에도 올려놓아 보았지만 솜솜이는 냄새만 맡고는 휙하니 고개를 돌렸다. 혹시 간식은 먹을까 싶어 고양이들의 고향 츄르까지 꺼내들었지만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저 미야욱거리며 듣기만해도 속상한 목소리로 계속 울 뿐이었다.
솜솜이가 오기 전 주문했던 사료는 솜솜이가 온 다음날 저녁에야 배송이 왔다. 부랴부랴 밥그릇에 사료를 채워 이동장 앞에 놔주자 솜솜이는 몇 번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허겁지겁 사료를 입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 와중에 틈틈이 우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러길래 얼른 이걸 주지 지금까지 어디다 숨겨뒀다가 꺼내왔느냐고 원망하는 듯 했다. 하루만 더 일찍 시킬 걸, 내가 미안해. 데려온지 이틀만에 미안한 일 투성이었다. 그렇게 솜솜이는 우리 집에서 첫 식사를 마쳤다. 화장실도 잘 가고, 물도 마시고, 집안의 좁은 틈새란 틈새는 다 들어가야 직성이 풀렸으며, 이른 밤엔 우다다다 뛰어다니다가 머리도 부딪히고.
그렇게 우리집에는 식구가 늘었다. 이곳은 오늘부터 솜솜하우스, 솜솜이의 집이었다.
솜솜아. 어서와, 너의 집에.
달아나려는 날렵한 흰 솜뭉치를 붙잡아 품에 안고는 둥그런 머리에 입을 쪽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