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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루 Nov 02. 2018

77일의 고양이

너에게 처음인 나와 나에게 처음인 너의 만남

  고양이가 좋았다.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언제부터 고양이라는 동물에 이렇게 흠뻑 빠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쓰다듬으려고 손을 뻗으면 가차없이 도망가버리고, 손등에 참치 조금 올려놓으면 자기가 언제 도망갔냐는 듯 뻔뻔히 다가와 손등을 챱챱 핥아 먹는 생명체. 말라도 예쁘고, 뚠뚠해도 예쁘고, 털 무늬가 어떤 모양이든, 홍채 색이 어떤 색이든 상관없이 예쁜 그런 생명체. 그런 고양이가 참 좋았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은 무척 옛날부터 했지만, 동시에 그 당시에는 동물을 키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 하나를 감당하기도 벅찬데 내가 뭘 키워, 난 생명을 책임질 자신이 없어. 그렇게 말하며 손사래를 쳤다. 진심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병아리, 금붕어, 게 (먹는 그 게 맞다.), 올챙이-개구리 등 다양한 동물의 죽음을 보았던 나는 더 이상 허투루 생물을 기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저 외로웠고, 밤이 길었고, 그 텅 비어있는 시간들을 버티기가 힘들었다. 깊은 고민 없이 입양하면 안 된다는 말을 새기고 또 새기며 아기 고양이 가정 분양 글이나, 유기묘 임보처를 구하는 글 따위를 끝없이 검색하고 읽고 넘기며 밤을 지샜다. 거의 한 달 정도를 그렇게 보내다가 어느날 하얀 고양이 한 마리를 마주했다. 가정에서 낳은 새끼들을 분양하는 터라, 비슷하게 생긴 동배의 남매들이 더 있었는데 왜인지 몰라도 그 아이만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핸드폰을 끄고 친구들과 나란히 앉아 게임을 하는데도 머릿속에 계속 아른아른거렸고 결국 나는 그날 당장 입양 문의 문자를 보냈다.

▲ 당시 솜솜이 입양글에 올라와있던 사진

  그때부터 일사천리로 그분과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주고 받고 분양 계약서에 대한 내용을 이메일로 전달받기로 했다. 아가를 언제 데리러 갈지, 어디로 가면 되는지 그런 것들. 모든 게 정해진 후에 집에 돌아와서 내뱉듯이 말했다. 나 고양이 키울거야.

(※ 반려동물 입양에 대한 결정은 가족 구성원의 동의 하에 진행해야 합니다.)


  부모님은 결사 반대였다. 당연히. 나는 고양이를 못 키우게 하면 집을 나가겠다고 말했고 그럼 나가라는 대답에 그날부터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원룸을 찾아보며 집을 보러 가겠다고 연락하고 없는 돈을 쥐어짜내서 어떻게든 싼 집을 구하려고 머리를 싸맸다. 내가 진심으로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본 엄마는 결국 주저앉았다. 집에서 키워도 좋으니 제발 짐 싸지 말고 푸르라는 말에 통장에 모아놓은 돈 별로 없던 나는 솔직히 조금은 안심했다. 휴.


  솜솜이를 데릴러 간 건 솜솜이가 태어난지 77일째 되는 날이었다. 오후 7시에 만난 아가는 정말 작아서, 장판 위를 꼬물꼬물 기어다니고 있었다.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자 얼굴과 귀를 살피기 위해 조심스럽게 잡아들자 그 무게감이나 손 안에 들어온 크기가 한없이 여려서 힘을 주면 부러질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 참 따뜻해서, 정말 이지 마음에서 눈물이 흐를 것 같아 진정시키기가 어려웠다.


  태어난 지 77일, 아마 처음으로 집 밖에 나와 바깥 세상을 구경해보았을 아가는 자신이 '밖'에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미친듯이 발악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딱딱하거나 추울까 깔아주었던 담요는 다리를 휘저으면서 팽개쳐놓았고, 냄새도 뭍히고 폭신하라고 넣어준 쿠션은 안중에도 없었다. 먀아악, 먀악, 먀아아악, 먁! 자신을 엄마한테서 떨어뜨려서 어디로 데려가냐는 듯 끝없이 울어제꼈다.


  사람 말을 알아들을 리 없는 아가에게 줄곧 대화하며 짧게 기차를 탔다. 기차 플랫폼에서까지 아가는 인기인이었다. 고양이다, 고양이. 엄청 작다. 아긴가봐, 기여워. 같은 말들이 곳곳에서 들려왔고 괜히 사람들이 잘 볼 수 있게 이동장을 고쳐잡기도 했다. 이렇게 예쁜 아가가 앞으로 저랑 같이 산대요. 나도 이제 고양이 있어. 솜솜이는 내 말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울기만 했다.


  놀라운 건 이 아가가 얼마나 똑똑한가였다. 기차에 타고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 아가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가만가만 있었다. 중간에 살짝씩 울기는 했지만, 훨씬 작은 목소리였고 두어번 울고나면 금세 그쳐버렸다. 기차 안이 조용하다는 걸 느끼고 거기에 맞춰 목소리를 내지 않는 듯 했다. 하, 고 녀석 똑똑하네. 


  집에 다다르기 직전 나만큼이나 이 아가를 기다렸던 친구 두 명과 마주쳐 잠시 고양이를 인사시켰다. 분양받아오던 날까지도 정하지 못했던 이름은 오늘에서야 솜솜이로 결정되었다. 모찌모찌하다고 찹쌀이, 조랭이 떡같다고 조랭이, 그 외에도 당고라거나 리치 다양한 안이 나왔었다. 어떤 걸로 하지 고민만 잔뜩 했었는데 실물을 보자 정말 솜뭉치를 닮아서, 그 이외의 이름은 붙일 수가 없어서 그렇게 아이는 솜솜이가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솜솜이를 데리러 갔던 그 지역은, 내가 태어난 곳이었다. 내가 태어나서 기억하지 못할 만큼 어렸던 2년 가량을 살았던 동네였다. 시에 동까지 겹쳐져서 엄마 아빠는 인연이라고 했다. 생후 77일, 오후 7시에 만난, 나와 고향이 같은 나의 묘연. 나의 첫 고양이이자 너의 첫 인간. 우리는 서로에게 처음으로 닿은 연이었다. 

▲ 솜솜이와 처음 만난 날. 700g도 되지 않던 작은 솜뭉치, 나의 솜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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