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다를 것 없는 연애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학기가 막 시작한 3월, 아직은 모두가 낯설고 새로워서 말 한 마디가 조심스럽던 시기. 과방에 앉아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친구는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더니 아, 나 5분 이따 가봐야겠다. 하고 말했다.
"약속 있어?"
"응. 애인이 데릴러 온대."
"남자친구 있어?!"
별 생각 없이 던진 내 질문에 그 친구는 잠시 애매한 웃음을 짓더니 되물었다.
"왜 남자일 거라고 생각해?"
아차 싶었다. 제법 퀴어프렌들리(queer-friendly)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나의 무신경한 부분은 틈만 나면 튀어나왔다. 당황했다는 걸 숨길 생각도 못한 채로 급하게 사과하자 친구가 웃었다. 다행히도 내가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이유가 그 친구의 애인이 여자여서가 아니라, 편견 어린 질문을 했기 때문이라는 걸 아는 눈치였다. 친구는 남은 5분 동안 옆에 앉아 지금 연애하는 애인이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지에 대해 말해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다. 꽤나 독실한 신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를 포함한 다양한 섹슈얼리티)에 대해 나쁘다거나, 죄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동성애자'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 건 아마 중학생 때인 것 같은데 그냥 그런 사람이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억압을 신문 기사로 접했을 때는 정말 당당하게 '하나님은 모두를 사랑하라고 하셨어!'라고 생각했다.
기독교에서 동성애를 죄라고 한다는 걸 알게 된 건 몇 달 후였다. 덕분에 벙찐다(※'황당하다'가 맞는 표현이다.)는 말을 처음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감사와 사랑을 전도하는 기독교에서 '사랑'을 핍박한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목사님과 논쟁에 가까운 토론 - 동성애자들은 문란하다는 헛소리를 상대로 싸워야 했다 - 을 하고, 인터넷 사이트를 여기저기 뒤져가면서 내린 결론은 결국 동성애는 죄가 아니라는 거였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뿐이다. 젠더도, 인종도, 국적도 그저 사람이 정해놓은 시스템이다. 시스템을 벗어난다고 해서 그것을 죄라 부른다면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여자친구가 있는 여자도 남자친구가 있는 남자도 이성애자들과 다를 것 없는 연애를 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 배 속이 간지러운 그 느낌, 좋아한다고 고백할까 말까 망설이며 보내는 시간, 좋아하는 사람의 사소한 말 하나에 의미부여하며 몇 번이고 곱씹는 일, 이내 맺어졌을 때 마치 세상에 이 사람만 있으면 될 것 같은 기분, 헤어지고 난 후 그 때 다른 선택을 하면 좋았을까 후회하는 것. 그런 것들을 성소수자도 느낀다. 다르지 않다.
결국 사람들은 사랑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