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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루 Dec 08. 2018

레즈비언? 남자 맛을 못 봐서 그래.

교정강간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사람들

  지난 11월 9일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부하 여군을 강간한 두 명의 해군 간부를 처벌해주십시오" 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http://www1.president.go.kr/petitions/436901) 사건의 개요는 2010년 A해군 중위(현 대위)가 상관인 B소령에게 '교정강간'을 당했으며, 임신까지 하게 된 피해자가 중절 수술을 위해 휴가를 얻는 과정에서 또 다른 상관 C중령(현 대령)에게도 강간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교정 강간'. 영어로는 corrective rape라고 하는 이 단어는 타인을 교정하기 위해서라는 빌미로 행해지는 강간이다. 강간은 타인에게 자신의 권력 - 그것이 지위이든, 물리적인 힘이든 - 으로 휘두르는 폭력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자신의 폭력에 마치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양 정당화하는 것은 성범죄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그 책임이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노라고 우기는 것까지 정확히 일치한다.


  많은 성범죄 가해자들이 '피해자가 짧은 옷을 입어서' '먼저 자신에게 웃어서' '꼬리 쳐서' '싫다고 말하지 않아서' 그랬노라고 피해자에게로 화살을 돌린다. 그 중에서도 교정강간은 상대방의 성지향성, 즉 섹슈얼리티를 비정상인 것으로 치부한다. 네가 레즈비언인 이유는 남자 맛을 몰라서다, 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이다. 교정강간은 피해자가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범죄다. 실제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레즈비언을 대상으로 강간하는 성소수자 혐오 범죄가 자주 일어난다.  


  그렇다고 이 교정강간이 남의 나라 이야기인 것은 절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사건은 2017년 7월에서야 법정에 올랐으며 가해자 B와 C에게 1심에서 각각 징역 10년형과 8년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에서 C는 무죄 판결을 받았으며 이어 B에게도 결국 무죄를 선고했다. 군 법원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가 수직적인 권력 관계에 있었음을 인정했으면서도 피해자가 저항 불가능한 상태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피해자에게 '네가 조심했으면 될 일'이라고 말한 것이다. 무려 법원이. 끔찍한 일이다.


  교정강간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이해하려면 - 사실 굳이 노력이 필요한 일도 아니지만 - 가해자에게 같은 논리를 적용해보면 된다. 가해자 B와 C는 남자 맛을 못 봐서 이성애자가 된 것인가? 그들이 혹 같은 동성에게 강간당한다면 그들은 게이가, 혹은 바이섹슈얼이 되는가? 그들이 여성과 성관계들 맺기 전까지는 그들이 이성애자인 줄 몰랐는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개인의 성정체성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으며, 이는 타인의 힘으로 교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설령 스스로를 레즈비언이라고 믿고 있는 바이섹슈얼이 있다고 해도, 그걸 교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누군가는 성정체성을 선천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후천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솔직하게 말해 나는 잘 모르겠다. 내 경험을 되돌아보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동성에게도 섹슈얼한 끌림을 느꼈지만, 당시에는 내가 이성애자라고 굳게 믿었다. '동성애자'라는 개념 자체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후에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해 공부하면서 내가 상대방의 젠더를 신경쓰지 않는 판섹슈얼(범성애자)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내 정체성이 선천적이었는지 후천적이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그것이 내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존재한다. 성소수자는 존재한다. 개인의 성 정체성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며, 함부로 정상과 비정상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성애자가 본인이 이성애자임을 성관계로 깨닫지 않았듯이 성소수자들도 본인의 정체성을 성관계 여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강간은 어떤 구실을 가져다 붙여도 강간일 뿐이다. 폭력은 그 어떤 경우에서도 용납될 수 없다.


그 당연한 사실이 소수자들에게는 항상,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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