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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루 Nov 25. 2018

제가 레즈비언일까요?

성 정체화에 대하여


"너는 왜 네가 판섹슈얼(Pan Sexual, 범성애자)라고 생각했어?"

"음, 나는 너한테 네가 왜 너를 이성애자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지 않을 거야."

"이런. 미안해. 내가 무례한 질문을 했구나."


(이탈리아 친구와 했던 대화 중에서.)



  가끔 초록창의 지식人에는 "제가 레즈일까요?" 혹은 "제가 게이일까요?" 같은 질문이 올라온다. 보통은 청소년 나이대의 아이들이 쓴 그 질문을 보다보면 괜히 웃음이 좀 난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사랑인지 우정인지 혹은 또 다른 무언가인지 혼란스러워하는 그들이 예쁘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성소수자들에게는 거의 필연적으로 '성 정체화'의 시간이 필요하다. 반대로 말하자면 대부분의 이성애자들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시간이다. 이성애 중심사회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대체로 아주 자연스럽게, 혹은 당연하게 본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이성애자라고 생각한다.


  성 정체화란 본인의 성정체성과 성지향성에 이름 붙이는 일을 말한다. 성 정체성은 자신의 젠더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일이고, 성 지향성은 자신의 잠재적인 연애 대상의 범주를 고민하는 일이다. 예를 들자면 나는 시스 젠더(※섹스와 젠더가 일치하는 경우를 이르는 말) 여성이고, 판섹슈얼이다. 내가 여성이라는 것은 성 정체성이고 내가 판섹슈얼이라는 건 성 지향성이다.


  그런데 대체 왜 "너는 어떤 이유로 그렇게 정체화했어?" 라는 질문이 무례한 걸까? 그 답은 가장 위에 적어둔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이성애자들에게는 그렇게 묻지 않기 때문이다.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이성애자가 아닌 사람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매번 외쳐야하고, 소리를 높여야 하며,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당신이 만약 성소수자에게 "왜 그렇게 생각했어?"라고 말한다면 악의가 있었든 없었든 '너는 왜 이성애자가 아닌지' 묻는 의미가 내포된다.


  만약 당신이 스스로의 정체화를 위해, 혹은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성 정체화가 궁금해졌다면, 이렇게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언제 성 정체화를 했어?" 라고. 완벽한 질문은 아니지만 당신이 상대방을 배제하고자 묻는 것이 아니라는 정도는 전해질 것이다.


  사실 성 정체화의 계기는 사람마다 다양하다. 나는  꽤 오래 스스로를 이성애자라고 믿고 살다가 페미니즘과 젠더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정체화를 했다. 드물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생각한 사람도 있고, 나와 비슷하게 성소수자라는 단어를 듣고 나서 나는 어떻지? 라고 생각해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역시 가장 많이 들어본 케이스는 동성을 좋아하게 되면서 깨닫는 경우이긴 하다. 이 경우에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이라면 본인이 동성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크게 혼란스러워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만약 당신이 동성을 연애 대상으로 좋아하는 것 같아 검색하다가 이 글을 눌렀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지금 그 마음이 사랑일까 아닐까 고민할 때 굳이 성별을 고려하지 않아도 좋다고. 그를 떠올릴 때 웃음이 나는지, 보지 않으면 보고 싶어지는지, 눈을 감으면 생각나는지, 멋진 풍경이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그가 떠오르는지, 함께 손을 잡고 산책하고 싶은지, 눈을 마주치면 웃게 되는지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이 마음이 사랑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데에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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