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을 들었을 때 당신이 해야할 일
세상에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퀴어(Queer, 성소수자)들이 갖는 특이점이 있다면 바로 커밍아웃이다. 여성은 내가 여성이라고 말해야 할 필요가 없고, 흑인은 내가 흑인이라고 고백해야 할 필요가 없지만 성소수자는 조금 다르다. 외관으로 보아서는 저 사람의 성정체성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 참 어려운 지점이다.
"나 게이야." 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쉽지 않을 수 있다. 물론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만약 당신이 성소수자에 대해 무지하다면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고민할 것이다.
많은 퀴어들은 커밍아웃이라는 벽에 마주한다. 이성애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내가 주류가 아니라는 고백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나를 숨기고 싶지 않은 마음과 나를 드러냈다가 관계가 단절될까 두려운 마음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퀴어는 소위 말하는 벽장(자신이 퀴어임을 감추고 사는 사람)과 오픈퀴어(자신이 퀴어임을 드러내고 사는 사람)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해보자면 나는 좀 독특하기도 하고, 운이 좋기도 했다. 이전 글에서 밝힌바 있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거의 없었다. 다시말해 내 주변에 호모포비아(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갖고 있는 사람)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내 친구들에게 굳이 커밍아웃을 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우리 사이에는 본인의 성지향성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대화가 오가고는 했다. 불꽃 헤테로인 친구도 있었고, 나는 스무살 무렵에 나를 판섹슈얼로 정의했고, 바이인 친구도 있었고,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 살아왔으니 나에게는 커밍아웃이 그리 어려운 과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무척이나 운이 좋은 케이스다. 누군가는 본인이 퀴어임을 고백했다가 친구에게 '더럽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너 설마 나 좋아해?'같은 말을 듣기도 하며, 부모님께 정신병원을 권유받기도 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뿐인데 이를 비정상으로 간주하고, 동성애(양성애, 범성애 등을 대표하여-)를 수간이나 아동성도착증과 같은 폭력과 동일 선상에 두기도 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편견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선 퀴어의 범주에 수간 혹은 아동성도착증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 번은 하고 넘어가야겠다. 성애는 사랑의 종류다. 사랑은 일방적이어서는 안 되며, 상대방과의 합의 하에 이루어지는 관계다. 상대방의 동의를 얻을 수 없는 수간이나 상대방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는 미성숙한 나이인 아동성도착증은 성소수자에 포함하지 않는다.
다시 돌아와서, 지인이 커밍아웃을 했을 때 어떻게 반응해주면 좋을까. 사람마다 원하는 반응이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다지 어떤 '반응'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친구가 나 사실 과일 중에 딸기가 제일 좋아, 라고 말했을 때 굳이 어떠한 반응이 필요하지 않듯이. 성지향성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일부일 뿐 전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커밍아웃을 했던 적은 딱 한 번 있는데, 개인 SNS에 글을 쓴 경험이었다. 숨길 생각은 없지만 굳이 대놓고 말하고 다니지는 않았던 내가 진정 오픈퀴어의 길을 걷기 시작한 시점이 이때였던 것 같다. 당시 성소수자가 부당함을 겪은 어떤 사건이 있어 그에 대해 힘을 보태고자 한 선택이었다. 그날 글을 쓰면서 내가 처음으로 "저는 범성애자입니다."라고 말하는 게 두려웠던 건 나의 다른 부분이 모두 지워지고 성소수자라는 프레임만 남을까봐였다. 나의 성지향성은 다시 말하지만 나의 일부일 뿐, 전체가 아니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글을 올렸을 때, 학교 후배가 댓글을 달아줬다. 언니는 여전히 제게 그냥 멋진 언니예요, 언니가 성소수자든 아니든. 그 말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냥 나다. 그 사람의 성지향성이 어떻고 성정체성이 어떻든 간에 그 사람은 그냥 그 사람이다. 어느날 당신의 지인이 커밍아웃을 한다고 하더라도 달라질 건 없다. 그것만 알고 있어준다면 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