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하루 Dec 14. 2018

엄마, 엄마 딸이 레즈여도 괜찮아?

성소수자들에게도 부모가 있다

  "엄마, 엄마는 동성애자 어떻게 생각해?"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아직 엄마와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을 무렵에 물어봤을테니 아마 중학교 1학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내가 범성애자라고 정체화 한 건 아니었고 그냥 여자랑도 연애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스스로를 퀴어라고 생각했던 것치고는 주변의 시선을 정말 하나도 신경쓰지 않았던 내가 그날 왜 저런 질문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언젠가 엄마에게 커밍아웃을 할 상황을 염두에 뒀다거나 뭐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그냥, 아마도, 내 주변 사람들 중에도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를 시험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오만한 나이었으니까.


  엄마는 예상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은 말을 했다. "상관없지만... 내가 아는 사람만 아니면 되지."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생각보다 괜찮은 반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야 말로 결혼 전까지 꾸준히 교회에 나가면서 독실한 신앙을 키워왔던 사람일테니 말이다. 엄마의 그 말이 딱히 상처이지는 않았다. 언젠가 내가 엄마에게 커밍아웃이라는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엔 내가 좀 많이 어렸다. 다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저 말이 무척 폭력적이기는 하다. 있어도 좋지만 드러내지 말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부모님께 커밍아웃하는 일 때문에 가슴 졸이고 몇 년을 끙끙 앓는 친구들은 제법 있다. 계획적으로 천천히 부모님의 편견 정도를 체킹하고 은근슬쩍 말을 흘리는 친구도 있고, 상처받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커밍아웃하는 친구도 있고, 부모님과 싸우다말고 홧김에 말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나? 나는 생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커밍아웃을 하게 됐다.


  사건의 발단은 SNS였다. 부모님의 페이스북 친구 신청은 당연히 다 끊어낸 뒤였지만 나는 설마 부모님이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가 - 아직도 나를 검색해보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적인 글들은 친구들만 열람할 수 있게 해두지만 사회적인 이슈에 관한 글은 전체 공개로 올릴 때가 종종 있었고, 나의 커밍아웃은 당시 이슈였던 군 내 동성애자 색출 및 처벌에 관련된 사회적인 글이었다. 평상시에도 딱히 숨기지는 않았지만 굳이 나서서 내 지향성에 대해 말한 건 그런 이유였다. 나는 범성애자입니다, 라는 글이 내 페이스북에 올라갔던 다음날 아침 엄마는 울며불며 자는 나를 깨웠다.


  자다 깨서 비몽사몽한 나를 엄마는 당장 저 글을 내리라느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느니, 네가 남자를 좋아한 적이 있는데 대체 왜 네가 성소수자냐며 달달 볶았다. 인권 감수성이 높은 친언니의 지원사격이 도움이 되긴 했다. 성소수자에는 동성애자밖에 없는 줄 아는 엄마에게 그거 아니니까 뭐라도 좀 알고 말하라는 그 말이 수면을 방해받은 짜증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뭐 엄마를 다 이해시킬 생각도 아니었고 엄마에게 말할 생각도 딱히 없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나머지는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가 뭐라고 울부짖든 나는 범성애자고, 내 성정체성이 바뀔 일은 없으니까.


  성소수자 혐오 세력의 구호나 홍보물들을 보면 '당신의 아들이 게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따위의 문구들이 있다. 판섹슈얼 입장에서는 뭐 어쩌라고, 싶긴 하다. 내 아들이 게이면 어떻고 바이면 뭐가 어떻단 말인가. 함께 있으면 행복한 연인 찾아 잘 먹고 잘 살면 되었다 싶겠지. (애초에 나는 결혼할 생각이 없지만.) 실제로 성소수자 부모모임(부모님께 커밍아웃한 성수소자들의 부모님들이 모였다)에서 출간한 『커밍아웃 스토리』라는 책을 보면 내 자식이 성소수자였을 때 부모로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물론 처음에는 당황스러울지도 모른다. 부모님들은 우리 세대보다도 더 성소수자에 대해 무지하고, 성소수자를 문란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부모님은 편견이 없더라도 세상은 편견 투성이기에 자식이 받을 상처가 염려되기도 한다. 자식은 또 뭐가 얼마나 다를까. 방에서 목놓아 우는 부모님의 울음소리를 들우며 이미 넝마가 된 가슴을 쥐어 뜯고 '내가 성소수자가 아니었으면 엄마가 울지 않아도 됐을까'하고 곱씹는다. 그들이 잘못한 게 아닌데, 상처받을 이유가 없는데도 그 상처를 오롯이 감내한다.


  어떤 부모는 자식의 성정체성이 소수자였기에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고 말한다. 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해 논하고, 그를 지키기 위해 연대하는 삶을 걷고 있다고. 덕분에 우리는 얻었다. 퀴어 퍼레이드에서 니 자식이 게이여도 이럴 수 있냐고 소리지르는 혐오세력에게 "내 아들이 게이다! 나는 내 아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오늘 이곳에 왔다!"라고 외치는 그 멋진 사람들을.


  나는 내 자식이 어떤 성정체성을, 성지향성을 갖고 있든 간에 자신을 숨길 필요 없는 삶을 살길 원한다.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차별받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세상을 맞이하기 위해 몇 번이고 목소리를 높일 준비가 되어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 친구가 게이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