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은 하나의 '시스템'이다.
성경에서는 세계에 처음 만들어낸 인물을 아담이라고 이름짓고, 그 아담의 갈비뼈를 떼어내 사람을 만들어 아담에게 짝을 지어주었다고 말한다. 바로 그 사람이 선악과를 따먹은 하와(이브), 인류 최초의 여성으로 기억되는 사람이다.
성경이 사실이냐 허구냐를 떠나서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여성과 남성을 구분지어 살아왔다. 이성애 중심주의 역시 여성과 남성을 둘로 구분했고 각기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과 연애하는 것을 '정상'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유지되어온 구조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시작, 단군 신화에서조차 곰은 웅녀로 변해 환웅의 배필이 되었으니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가 남성과 여성을 구분해왔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세상에는 '남성' '여성' 이 전부일까?
우리는 우선 성별 역시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성별은 인종이나 국가 따위와 다름없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무척 거대하고 오래된 시스템. 인간이 만들었고, 인간이 굴리는 것. 태어나면서부터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것이기에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눈만 끔뻑거렸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람, 하고.
우선 '성'을 SEX와 GENDER로 구분할 필요성이 있다. 전자의 것은 생물학적인 의미의 성이다. 즉 생식기의 모양에 따라 성별을 구분하는 시스템으로 앞서 말했던 무척 오래 이어져온 성별 구분의 방식이다. 반면 후자의 것은 사회적인 의미의 성이다. 1995년 경부터 정식 사용된 표현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남성다움' '여성다움'을 통칭하기도 하며, 정신적인 의미의 성별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근 젠더에 관해서 보다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본 글에서는 우선 이 정도의 개념으로 사용한다.)
우리가 SEX로 성을 구별할 때는 남성과 여성, 그리고 간성이 있다. 간성이란 생식기의 모양이 두 성별의 중간 모양을 취하고 있거나 혹은 생식기의 모양이 염색체가 갖고 있는 성별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 등을 부르는 말이다. 매년 전 세계의 신생아 중 1.7% 가량의 아이들이 간성(inter-sex)로 태어난다. 이는 '문제상황'도 '비정상'도 아니지만, 성별 이분법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에서 '남성' 혹은 '여성'을 선택해야만 하는 아이들은 결국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받게 된다.
GENDER의 경우에는 이러한 신체적인 제한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하게 구별된다. 남성젠더와 여성젠더를 제외한 사람들을 '젠더퀴어'라고 부르는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젠더퀴어는 트랜스젠더다. 남성의 생식기를 갖고 태어났지만 본인을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를 MTF(Male to Female), 여성의 신체로 태어났지만 본인을 남성으로 생각하는 경우를 FTM(Female to Male)이라고 부르는데 그 외에도 신체적인 성별과 정신적인 성별이 일치하지 않으면 트랜스 젠더에 포함된다. 무슨 소리냐고? 세상에는 스스로를 여성도 남성도 아닌 제 3의 성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젠더 퀴어는 그 종류가 무척 많다. 우리가 보통 성소수자라고 하면 떠올리는 동성애자, 양성애자, 범성애자, 무성애자 등은 어떤 성별의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지, 즉 성 지향성에 따른 퀴어이다. 젠더퀴어는 지향성이 아닌 성 정체성에 따라 나뉜다. 이들은 남성과 여성만으로 성별을 나누는 이분법적인 시스템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중성 혹은 양성이라고 규정하거나(안드로진), 제 3의 성으로 규정하거나, 혹은 젠더를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에이젠더), 젠더가 하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줄곧 바뀐다고(젠더 플루이드) 느끼기도 한다. 본인이 두 가지 이상의 젠더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며(바이젠더, 트라이젠더), 혹은 자신의 젠더를 정체화하지 않는 사람(퀘스쳐너리)도 존재한다.
이러한 일이 생기는 이유는 성별이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이며, 따라서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인종을 황인, 흑인, 백인으로 나눈다지만 그렇다면 다른 인종이 만나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의 인종은 어디에 해당할까? 얼마나 피부가 까만색이어야 흑인이고, 얼마나 하얀색이어야 백인일까? 성별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에서 규정하는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에 스스로를 맞출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자신의 성향과 성 고정관념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본인을 젠더 퀴어로 규정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인형놀이를 좋아하는 남자아이와 본인을 여자아이라고 생각하는 남자아이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다만 트랜스젠더가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을 고착화하는 존재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는, MTF 트랜스 젠더로 태어나서 인형을 좋아할 때 본인이 여성이라는 것을 더 빠르게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에서 규정해놓은 여성상과 자신이 일치할 때 본인이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생각한다는 걸 알게 되는 계기가 생기는 건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이야기다.
언젠가 젠더라는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더 이상 사람을 성별로 구분하지 않게 되는 시대가 오면 젠더 퀴어는 자연스럽게 사라질지도 모른다. 도넛의 링이 사라지면 도넛 구멍도 사라지는 것처럼.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젠더라는 시스템 존재하고, 따라서 그 시스템을 벗어나는 사람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 최근 성별 표기를 요청할 때 여성, 남성, 그리고 기타 항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내가 여기 있다고, 내가 여기 존재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그들을 존중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아니 그 누구에도 실존하는 사람을 지울 권리는 없다.
개인의 정체화는 오롯이 그 개인의 몫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