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 얘기는 왜 그렇게 재밌을까 ~
인정해야겠다. 나는 유성애 중독자야.
사실 거창하게 인정까지 갈 것도 없다. 나는 사랑 얘기가 너무너무 좋다. 로맨스라는 장르는 때로 나를 초라하게 만들지만, 그치만 분명 난 사랑 얘기를 너무너무 좋아한다.
아니 남의 사랑 얘기는 왜 이렇게 재밌어?
굳이 연애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나는 그냥, 사람이 누군가를 연애 감정으로 좋아할 때 갖게 되는 그 묘한 열기에 매료되는 듯하다. 왜, 그런 얘기 있잖아. 이야기 속 인물이 캐릭터를 붕괴시키는 행동을 해야하면 그 이유로 사랑을 넣으면 된다고. 그러니까 사랑은 모든 개연성을 뛰어넘는 감정인 거야. 엄청나지 않아? 아니라고요? 사랑의 위대함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하고 어쩌고저쩌고.
나는 <환승연애>라는 예능을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늘 클립에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으므로) 이 예능의 포맷에 대해서는 제법 오래 생각했다. 그러니까 일단은 ‘헤어진 연인들을 한 집에 모아놓고 그 안에서 새로운 연애 상대를 탐색하게 한다는 이 미친 발상을 대체 누가 했는가...’부터 시작해서 친구들과 종종 술안주 삼았던 ‘전애인이 환승연애 나가자고 하면 나갈거야?’라는 질문을 거쳐 ‘왜 사람들(나 포함)은 남의 연애 얘기를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걸까’하는 의문까지 달하는 생각들을.
그러니까, 결국 다시 돌아가자면 우리는 왜 이토록 오랫동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 얘기에 미쳐있냐고.
아 왜요, 뭐요. 솔직히 저만 좋아하는 거 아니잖아요.
일전에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이건 사랑이 아냐 이건 미련이 아냐 그냥 정이라고 하자’는 노래 가사가 흘러나온 적이 있다. (사실 나는 이 노래에서 저 가사밖에 모르지만) 내가 이 가사가 너무 좋지 않냐고 했더니 같이 마시던 사람들이 아무도 이해를 못해주지 뭐야. “아니!! 사랑이 맞을 텐데도 미련이 맞을 텐데도 굳이굳이 정이라고 이름 붙이려고 애쓰는 그 합리화가 너무 사랑 그 자체라서 좋지 않아요...?!” 하고 열변을 토했다. 끝내 공감받지 못했지만.
난 처음엔 상대방이 ‘왜, 그냥 정일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라, 그런 사랑은 너무 슬퍼서 별로야, 였다. 언니가 자기는 로맨스 영화에서도 행복한 파트들이 좋다고 하길래 나는... 솔직히 조금 충격이었다. 다들 해피엔딩으로 가기 전 가장 절정에 치닫는 파국을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눈물 줄줄 흐를 거 같이 마음 아린 그 장면들이 목적인 게 아니었다고?
이건 진짜 예상치 못한 일인데.
다들 슬픈 사랑에 제일 환장하는 게 아니야?
(도깨비에서도 이것만이 영원하댔다고요)
...왜지?
약간 혼란스럽던 중에 나는 곧 그 대사를 만났다. 환승연애3의 예고편에 등장하는 그 대사. 네, 지금 생각하시는 그거. 이 글의 제목인 그거.
“너가 자기야 미안해 했잖아?
그럼 환승연애 이딴 거 안 나왔어.”
첫 방송도 하기 전에 예고편 하나로 사람들의 도파민을 싹 충족시키고 결국 밈화되기까지 한 이 말. 아마 당사자분은 뱉으면서 이 말이 이렇게까지 핫해질 줄 모르셨겠지만... 어쩌면 이건 <환승연애>라는 예능을 관통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이랑 했던 “전애인이 환승연애에 나가자고 연락하면 나간다/안 나간다”의 질문에 내가 했던 답은, 미련이 남았으면 나간다는 거였다. 뭐 돈이 목적일 수도, 유명세가 목적일 수도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이 프로그램의 포맷 자체가 ‘전 애인과 새로운 사람’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잖아. 그런데, (제대로 시청도 안 한 내가 할 말인가 싶지만은) 이 예능에서 출연자들을 무너뜨리는 사랑은 보통 이미 지나간 사랑이다. 혹은 아직 지나치지 못한 사랑이고.
그러니까, 맞잖아.
보통 다들 슬프고 괴롭고 아득해지는 사랑에 홀린다니까? 근데 이걸 왜, 냐고 묻는다면... 사랑의 본질이 그거라서, 라고밖에 할 말이 없는 것 같다. 사랑은 나를 내가 아니게 만드는 힘이니까.
여유있던 사람을 조급하게 하고, 당당하던 사람을 위축되게 하는 것. 어른스럽던 사람을 떼쓰게 만들고, 논리적이던 사람을 막무가내로 만드는 것. 그리하여 내가 이렇게 구질구질했나 스스로 허탈해지는 순간까지 쥐어주고야 마는 것. 그거잖아.
그러니 1. 우리가 왜 헤어졌으며 2. 그 이유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만났을 것이고 3. 지금이라도 그 문제를 해결한다면 나는 이곳에 나온 목적이 달성된다 는 의미로 읽히는 저 문장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던 것 같다. 다 지난 이별을 다시 가져와 곱씹게 하는 이 예능에서, 가장 반듯한 구질구질함이라서.
관계가 복잡하게 얽힐 수밖에 없는 이곳은 특히나 그렇지만, 사실 대다수의 연애에서 마음이 막 시작 될 때 ‘내가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마음을 주고 있는지’ 밝히는 것은 어렵다. 스스로도 불확실해서, 지는 것 같아서,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 상대방도 같은 마음일지 알 수 없어서, 내 패를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상처주기 싫어서, 상처받기 싫어서, 그 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감정을 감추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사랑은.
겁쟁이이던 사람에게 용기를 내게 하고, 의욕이 없던 사람을 나아가게 하니까. 거짓말쟁이가 솔직해지게 만들고, 불안해하던 사람을 침착하게 만들어주니까. 그리하여 나도 몰랐던 나를 끌어내 상대 앞에 세우고야 마니까.
사랑 이야기는 누가 먼저 날 것의 감정을 솔직히 꺼내놓을지를 지켜보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사랑 이야기가 여전히 인기가 많은 이유도 아마 같겠지. 그 사랑이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하다못해 배드엔딩이어도, 그 과정에서 변화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것마저 사랑의 일부라서. 그리하여 저 사람이 어떻게,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지 보고 싶으니까. 물론 우리는 그 끝이 해피엔딩이기를 주로 기대하지만... 사실 현실은 그렇지 않은 끝이 더 많다는 걸 알잖아. 그런데도 ‘다음 연애’를 하고야 마는 게 모두를 홀리는 사랑의 힘이 아닐까. 이번에는 무엇이 가능해질지 너무 궁금하잖아.
아무래도 나는 속절없이 사랑에 빠지는 편이라서
사랑 얘기에도 이토록 속절없이 끌려가는 모양이다.
그냥 계속 좋아해야지 뭐 어떡해!
세상에서 사랑 얘기가 제일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