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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멩리 Apr 23. 2024

Him

미국에 살며 가장 힘든 점은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거다. 미래는 당연히 불확실한 거지만, 내가 느끼는 불안의 강도는 한국에서보다 훨씬 세다. 계획은 있다.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3개월 후 나는 뭘 하고 있을까. 1년 뒤 나는 어디에 있을까. 요즘 들어 자주 깨닫는다. 나는 정말 가진 게 없다. 모든 것을 새로 쌓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슬프다.







소중한 사람이 생겼다. 그냥 그렇게 되어 버렸다. 보이는 거라곤 별과 달뿐인 밤바다에서, 멀리 떨어졌다 생각했는데 어느새 담요를 적시고 있던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조금이라도 움츠리면 옷을 벗어 주는 다정함이 좋았다. 1시간을 달려오면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당당함이 좋았다. 나보다 상대를 신경 쓰는 내게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뭐냐고 물어보는 단호함이 좋았다. 맨날 나에게 사주기만 하면서 내 로션 쓰는 건 그렇게 싫어하는 배려심이 좋았다. 햇볕 아래 걸으며 더워하면서도 괜찮냐 물으면 "나 이거 하루 종일 할 수 있어" 대답하는 패기가 좋았다. 너 어려서 좋겠다며 농담할 때 우리 둘 다 어린 거라며 목소리를 높이던 자존심이 좋았다. 듣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너 하고 싶은 말 있냐며 은근히 물어보던 귀여움이 좋았다. 막상 얘기하면 보조개가 깊게 파여 부끄러워하는 순수함이 좋았다. 퇴사하고 뭐 할 거냐는 질문에 책 사서 공부할 거라던 엉뚱함이 좋았다. 오늘 친구와 놀았다고 말하면 남자냐 여자냐 넌지시 물어보는 질투심이 좋았다. 아주 작은 것에도 thank you 말하는 상냥함이 좋았다. 내가 조금이라도 불안해 보이면 너 무슨 생각하냐고 캐묻는 집요함이 좋았다. 내가 말을 한 번에 못 알아들어 답답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게 왜 문제가 되냐며 황당해하던 얼굴이 좋았다. 딸기 밀크쉐이크를 좋아한다는 내 말에 식당에 가면 꼭 딸기 맛이 있냐고 묻던 섬세함이 좋았다. 그냥, 너라서 좋았다.









"나 이민자야."

"알아"

"나 가진 거 없어. 처음부터 시작해야 돼. 근데 나는 너한테 주고 싶어."

"뭘?"

"전부? 근데 난 받기만 하잖아"

"난 상관없는데?

"아니, 내가 상관있어. 나 할 수 있어. 근데 시간이 필요해. 그러니까 기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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