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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멩리 May 10. 2024

D+99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5월이 지나고 99일째가 되었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을 만났고 친해졌고 몇몇은 다시 얘기하지 않을 사이가 되었다. 퇴근하고 보는 하늘은 너무나 예쁜데 돈이 없고 큼직한 도로와 펄럭이는 국기가 아름다우면서도 돈이 없다. 인스타그램으로 보는 친구들은 여행에 일에 아주 멋지게 사는 것 같은데 나는 여기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업무를 하며 산다는 것이 가끔은 슬프고 불안하기도 하다. 그들은 미국에서 어떻게 살아보겠다고 고군분투하는 내가 부러울 테지만, 나는 가끔은 그들이 부럽다.


기약 없음이라는 말이 정확하다. 영주권을 언제 들어갈지 모르고 영주권이 언제 나올지도 모른다. 운전 연수를 받는데 면허를 언제 딸지 모른다. 언제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길지 모른다. 친척도 친구도 없이 혼자라는 것이 피부에 와닿는 날에는 일찍 잔다. 생각해 봤자 우울하기만 하지 싶어서.






누군가 해외에서 산다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하던데, 동의한다. 20년을 공부했어도 어려운 영어와 문화와 수많은 다른 것들. 여기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자주 묻는다. 쉬는 날은 주로 뭐 해? 퇴근하고는 뭐 해? 좋아하는 음악이 뭐야? 영화는 뭐야? 어떨 때 가장 행복해? 행복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해? 오늘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일은 뭐야? 영화 어떤 부분이 좋았어? 왜 좋았어? 나라는 사람 자체를 궁금해한다. 덕분에 나를 알아간다. 나는 신나는 음악이 좋구나. 범죄물이 좋구나. 행복이란 소소한 것에서 오구나. 힘들고 헷갈리게 하는 건 사랑이 아니었구나. 나는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고 싶구나. 나, 여기서 행복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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