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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인

무엇이 달랐나

by 돌멩리

학부생이 운영하는, 학교 스타트업 건물 내에 입주해 있는 두 개의 스타트업에 다녔다.

첫 번째는 SKY 선생님과 멘티를 매칭 해주는 서비스였다. 4대 보험도 없이 그냥 열정만으로 다녔고 돈도 안 받았다. 두 번째는 아이패드 스티커/템플릿 관련 스타트업이다. 4대 보험 가입에 몇억 투자 유치에 월급도 나오지만 한 달 반 만에 그만둔다. 무엇이 달랐을까.



소통

편의상 첫 번째 스타트업을 1, 두 번째 스타트업을 2라고 칭하겠다.

1에서는 슬랙을 사용해 커뮤니케이션했다. 한창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기라 직접 만난 것이 손에 꼽는다. 그래도 누군가 얘기하면 3-4분 안에 반응이나 코멘트를 달았기 때문에 직접 대화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2에서는 오프라인으로 출근했는데, 상사가 대학원에 다니기 때문에 슬랙을 썼다. 상사는 무엇을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않았고, 답글을 달아도 반응을 하지 않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슬랙에 항상 불이 들어와 있었지만 답이 없었다.

아침이 되면 상사가 내가 하루 동안 할 일을 슬랙으로 보냈는데, 지시사항이 모호해 다시 물어보면 3-4시간 뒤에 답장이 왔다.



열정

나는 힘들고 삭막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과외가 아니라 전반적인 '멘토링'을 지원해주는 1에 공감했고 교사인 부모님 덕에 시장에 대한 이해도 가지고 있었다. 1은 내게 직장이 아니라 '팀'이었고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일해도 힘들지 않았다.


2는 금전적인 목적을 가지고 지원했다. 시장에 대한 관심도 이해도 없었고 성장 가능성도 차별점도 없다고 보았다. 예상외로 면접을 붙었고 출근하게 되었다. 이 서비스의 USP를 찾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내 사수와도 몇 번 이야기해보았지만 그도 결론을 못 찾았다 했다. 장기적인 방향성이 부재한 상태에서 시키는 일만 했다.



피드백

2에서는 내가 한 일을 모두 @멘션 하면, 상사가 보고 피드백을 달았다. 상사는 내가 빠뜨린 부분이나 추가했으면 하는 부분을 말하거나 내 말뜻을 질문하거나(~이 무슨 뜻인가요?) 했는데, 내가 납득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한다고?"라고 느끼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가끔은 상사가 나에게 피드백을 주고 싶어 하는 건지 내 꼬투리를 잡고 싶어 하는 건지 헷갈렸다. 피드백 거리를 만들기 싫어 상사가 하라는 대로만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건 예시를 든 거지 똑같이 하라고 한 게 아니다"라는 말이 돌아왔다.


상사는 면대면으로 만나면 다정하고 친절했으나 텍스트로는 전혀 반대로 느껴졌다. 폭탄처럼 떨어진 피드백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다가도 상사의 "고생했어"라는 한 마디에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상사는 헷갈렸고 종잡을 수 없었다.


상사는 내가 한 일에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고 했고 나는 내가 왜 이렇게 덜렁대고 오타를 자주 내는지, 그게 약 때문인 건지 고민했다.






다음 주에 내 사수를 만난다. 그분도 나처럼 한 달 반 후 그만뒀다. 헷갈린다. 내가 일을 못 하는 건지. 하는 일이 별로 없는데도 힘들어한 건지. 상사와 이야기하면 모든 일이 내 탓 같다. 상사는 나에게 일이 많은데도 왜 말을 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충분히 조정해줄 수 있었다고 했다. 상사가 손가락을 접으며 내가 한 일을 나열할 때는 내가 정말 보잘것없이 느껴졌다. 이전에 다녔던 광고회사에서는 대표님이 직접 예시를 하나하나 만들어 피드백을 줬다.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냥 넘어가 줬으면 좋겠다.



면접에서부터 저 사람은 나와 맞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같이 있으면 불편했고 마음을 열기가 어려웠다. 1이 맞고 2가 틀리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맞고 상사가 틀리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핏이 맞지 않았다. 그렇게 마무리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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