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achel Divide
넷플릭스에 한국어 제목이 있기는 한데 마음에 안 들어서 영어 제목으로만 표기한다. 넷플릭스는 번역본보다 원제가 더 와 닿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 인종 문제는 아주 심각한 이슈고 해결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소수가 압제당한 시간이 길기도 하고 아직까지도 소극적인 인종차별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종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 한국은 한국인이 다수다. 미국처럼 인종적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평생을 한국에서 산 나는 다른 인종이 어떻게 차별받았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해당 다큐에서 흥미롭게 생각했던 부분은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이 "너는 우리가 겪은 차별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흑인이 될 자격이 없다. 우리는 흑인이라는 지위를 획득했지만 너는 그렇지 않다."라고 했던 장면이다. 주인공인 레이첼은 백인 부모님에게서 태어났지만 자신을 흑인이라고 규정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에 분개한다. 특히 흑인들은 그녀가 '백인'으로서의 권리를 다 누렸으면서 왜 갑자기 흑인을 이용하냐며, 흑인 인권 운동은 백인으로서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에게 반대하는 건 아니다. 몇 사람들은 그가 '정체성'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Gender을 바꾸는 Trans-gender처럼, 인종을 바꾸는 Trans-racial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생물학적 성별로 남자였지만 나를 '여성'으로 규정하기에 '여자'가 되기로 한 사람들. 마찬가지로 백인 가족에게서 태어나 생물학적으로 백인이지만 나를 '흑인'으로 규정하기에 '흑인'이 되기로 한 레이첼. 어느 것이 용납되고 어느 것은 용납되지 않는가? 사람들은 전자는 옹호하지만 후자는 비난한다.
레이첼은 '인종'적 개념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녀가 했던 거짓말과 논란을 일으켰던 발언을 떠나서, trans-racial이라는 단어 자체는 상당히 진보적이다. 남성이었지만 여성이 되기로 '선택'한 사람들에게 '너는 여성이 경험한 온갖 차별과 불합리한 대우를 경험하지 못했으니 여성이 될 자격이 없다'라고 말해도 되는가? 잘 모르겠다. 물론 백인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흑인 행세를 하는 건 되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의 말에는 동의한다. 얼굴에 분칠을 한 흑인은 그다지 좋은 대우를 받진 못할 것이다. 여성과 남성은 서로의 성이 될 수 있기에, 인종은 젠더와 다른 기준에서 보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디까지가 '자유'의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사회적으로 허용되는지 말이다.
만약 그녀가 자신을 '동양인'으로 정의한다며 동양인의 외모처럼 화장을 했다면, 나는 모욕감을 느낄 것인가? 백인으로서 대우받은 그녀가 갑자기 차별받은 동양인 행세를 한다며? 음..
그녀는 인종 이슈 이후 밥줄이 다 끊겼다. '흑인'임을 주장한 대가로 그녀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비난은 옳지 않은 것 같다. 미래엔 그녀가 재평가될지도 모르겠다.
-
며칠간 계속 생각하다 추가한다.
1. 요즘 사회는 '내가 선택하지 못한 것'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의 괴리를 메우기 위한 방법을 제공한다.
한국에서는 잘 보지 못했지만, '다양성'의 나라인 미국은 지원자의 생물학적 성과 내가 정의하는 성을 구분해 체크할 수 있도록 한다. 옵션에는 여성/남성뿐 아니라 'other'도 있다. 내가 선택하지 못한 것은 전자고, 내가 선택 가능한 것은 후자다.
그렇다면, 레이첼은 본인의 인종을 선택할 수 있었느냐? 답은 아니다. 그녀는 백인 부모님에게서 태어날 것을 선택한 적이 없다. 그건 그녀의 통제 밖에 있는 일이었다.
2. 과거에 대한 책임은 누가 어디까지 져야 하는가?
전범국가의 국민, 예를 들면 일본인은 피지배국의 국민, 즉 한국인에게 항상 사죄해야 하는가? 그 책임은 누가 어디까지 지는가? 인종차별이 현재까지도 이어져 있다고 해서, 백인인 레이첼이 그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녀가 인종차별을 행했다는 내용은 보지 못했다. 전남편, 여동생, 아들 둘 모두 흑인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인종'을 선택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녀가 '백인'이라서, 다른 곳으로 향해야 할 분노를 그녀에게 투영하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