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걸

Horse Girl

by 돌멩리
Horse Girl




내가 영화를 잘 보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해석을 못하기 때문이다. 책은 보면 그래도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자 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데, 영화는 진짜 모르겠다. 사람마다 내용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서 누구는 듣는 것에 강하고 누구는 읽는 것에 강하다고 하는데, 나는 확실히 읽어 이해하는 쪽이다. 강의를 들어도 70% 밖에 이해하지 못하는데, 책을 보면 그제야 이해가 된다. 어릴 때는 곧바로 알아듣지 못하는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나는 비슷한 개념은 굉장히 헷갈려해서 (이름이 비슷하거나 모양이 비슷하거나 얼굴이 비슷하거나) 수업을 들어도 절반은 알아듣지 못했는데, 이제는 내가 그냥 달랐을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다 보자 마자 '호스걸 해석'을 검색했고, 15개 정도의 글을 읽어봤다. 역시 정답은 없는 문제였다. '예술'이 그렇듯이 말이다.

해석글을 쓴 사람 중에 '외계인 납치설'이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분이 있었는데,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느니, '그건 의견이 아니라 사실 팩트라'느니 몰아붙이는 댓글을 많이 다셨더라. 영화든 책이든 해석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심리학도로서, 나는 외계인 납치설보다는 주인공이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쪽에 더 기울었다. 왜냐면,

1. 조현병 혹은 정신증적 양상이 있는 기분장애와 증상이 굉장히 비슷하다.

환각, 환시, 비정상적 믿음(외계인, 클론 등), disorganized speech(룸메이트는 '네 말은 하나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모두 조현병 증상이다. 누군가 나를 해하려 한다고 믿는 것이나 타인을 곡해해서 받아들이는 것도 해당한다. 주인공이 의사에게 진찰을 받으러 갔을 때, 의사는 매우 다정하고 상냥하게 '이것은 내 영역이 아니라서 모르겠다'라고 얘기했다. 주인공은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썸 타는 남자에게는 의사가 '매우 무례해서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라고 얘기한다. 우울증/조울증 등 기분장애가 심각한 상태라면 환각/환시 등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2. 가족력

주인공은 엄마는 심한 우울증, 할머니는 조현병을 앓았다고 얘기한다. 일반인이 조현병에 걸릴 가능성이 1%에 불과하지만, 부모나 형제 중 한 사람이 조현병 환자일 경우에는 발병률이 5~10% 정도로 높아진다. 그리고 우울증이 있었던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가 우울증을 앓게 될 확률은 정상인에 비해 3배나 높다.

물론, 가족이 병을 앓고 있더라도 나는 발병이 안 될수도 있다. 대부분 심리학에서 채택하고 있는 Diathesis-stress model에 따르면, 유전적인 vulnerability에 스트레스와 같은 환경적 요인이 더해져 한계치를 넘어야 병이 발생한다. 한계가 100이라고 할 때, 유전 70에 스트레스 등 환경 요인 30이 더해져야 생기는 거다. 환경적 요인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병은 생기지 않는다.

물론, 내 해석은 정답이 아니다. 심리학에서 abnormal한, 정상이 아닌 사람과 정상인 사람을 구분하는 건 매우 쉽지 않다. 기준이 굉장히 애매하기 때문이다. 로젠한 실험에 따르면, 지극히 정상인 참가자가 정신병원에서 퇴원하기까지 걸린 평균 시간은 19일이었다. 그들은 입원 후 본인의 평소 모습대로 행동했지만 나오기까지는 거의 3주가 걸린 것이다. 마찬가지로, 의사들은 같은 증상임에도 여성은 histrionic, borderline, dependent로, 남성은 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로 판단을 내리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성별/인종/나이에 따라 bias가 존재하며, 의사마다 혹은 문화에 따라 병명을 규정하는 게 다르다. 어떤 의사들은 narcisssistic personality disorder은 존재하지 않는 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그녀가 정말로 아픈 것인지, 혹은 진짜로 외계인에 납치되어 시간 여행을 경험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맨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가 신발을 벗는 장면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조현병은 자살률이 높은 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비하인드 허 아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