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고 있나요.
여긴 비가 옵니다.
아주 많이 내리다가
적게 내리기를 반복하고 있어요.
비는 모든 걸 주저앉히는 습성이 있습니다.
보송한 천 자락도 흠뻑 젖어 축 늘어뜨리게 하고,
하늘만큼 높이 솟아오르는 굴뚝의 연기도 흩어지게 하지요.
하물며 제 기분마저 주저앉게 합니다.
그래요.
저는 오늘 흠뻑 젖어 가라앉은 채
당신 앞에 앉았다는 말입니다.
기분도 제 눈꼬리와 입꼬리도
힘없이 주저앉기는 했지만 조잘거리고 싶었거든요.
어떻게 지내나요. 별 일은 없는지요.
제 푸념을 늘어놓자고 핑계 삼아
안부를 전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이지만,
당신도 말동무가 필요했으리라 생각하고 싶습니다.
'비'라는 것이 참 신기하지요.
많은 것을 주저앉게 하지만
또 많은 것을 키웁니다.
맞아요.
풀이나 꽃, 나무 같은 것들 말이에요.
자연의 편은 비를 먹으면 쑥쑥 자라는 모양입니다.
저는 자연의 편이 아니라 주저앉은 걸까요.
비가 오면 기분이 좋았던 때를
잠시 생각해봤어요.
애석하게도 그리 많은 기억을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
대신하고 싶은 것이 생겼어요.
간단히 비옷 하나 걸치고 나가
물웅덩이에서 찰박거리고,
고개 들어 얼굴로 흐르는 비를 느끼고.
여건이 된다면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손잡고 빗속을 거닐고 싶어요.
하지만 저는 그러지는 못할 겁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 거예요.
사람들이 저를 이상하게 볼 것이 두렵거든요.
아... 나는 자연의 편이 아니었던 게
확실한가 봅니다.
나는 인간의 편이었어요.
우산으로 비를 막고,
장화로 나를 보호하고,
그 안에서 제 마음도 갇힌 채 고생 중입니다.
저명인사들은 타인의 눈치를
보지 말고 살라하는데
타인에게서 벗어나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당신도 그럴까요?
할 이야기가 많아요.
조금씩 아껴서 짧은 편지로 자주 찾아오고 싶습니다.
저는 오늘 하루 종일 비옷을 꺼내 두고
나갈지 말지에 대해 고민해야겠어요.
당신은 비가 오는 날엔 무엇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하지만 답장은 급히 보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금세 다른 수다거리로 찾아올 테니
저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잘 보관해주셔요.
부디 좋은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만-.
20. 07. 23. 나무. 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