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67년생, 엄마 : 4남매 중 장녀로서 장녀처럼 자랐다. 그리고 그 시대의 보편적 여성으로 자랐으나 첫째 Y를 낳고 나서 현재까지 오랜 시간을 가장으로 살아내고 있다. 살아온 시대적 환경 탓에, 어쩔 수 없이 동성애, 젠더 문제에 다소 보수적일 때가 있지만 어깨를 스친 이들에게는 관대하다. 아주 쿨한 엄마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Y, 93년생, 첫째(나) : 장녀의 딸로서 장녀처럼 자랐다. 입시전쟁 세대. 엄마의 권유에 대학 과정까지 무사히 마쳤다. 자유분방하고 고집 있는 X와 Z 사이에서 의견 조율을 도울 때가 있다. 어떤 의견이든 대부분 '그럴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Z, 99년생, 둘째 : 자신을 사랑하며, 고집이 세다. 열려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랑의 경험에서는 의외로 보수적이다. 결정에 있어서 망설임이 없다.
우리 집에는 XYZ세대가 살고 있다. 때문에 종종 갈등을 겪는데, 사실 세대 간 갈등은 가정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시간이 흐르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인간의 나이에 따른 본능에서 기인한다.
살아온 시간이 쌓이고 경험하고 보아 온 것이 많아질수록 자꾸만 실수로 넘어지는 어린 사람에게 깨달은 바를 가르쳐주고 싶어 하고, 어린 사람은 스스로 부딪혀보고 싶어 하는 본능. 이런 세대 간의 본능과 본능이 유연하게 잘 얽어지지 않고 날을 세워 부딪히게 되면 갈등과 부작용이 생긴다. 부작용이라고 함은 구세대가 현세대에게 시대에 알맞지 않은 잣대를 내밀어 재단하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현세대는 그런 구세대에게 벽을 만들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부작용을 우리는 '세대 갈등'이라고 이름 짓고 있다.
본능만이 아니라 세대갈등은 시간의 인지 문제에서도 발생한다. 시대는 연속적으로 계속되는 시간에서 점진적으로 진화하고 변화한다. 하지만 각 세대는 시대가 연속되는 시간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눈앞에 들이닥친 변화가 ‘갑작스럽게’ 생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시간과 공간이 연속된 것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끊어진 것이라고 여긴다. 자신의 세대와 인식이 다른 세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앞선 세대는 뒷 세대의 문화와 인식이 시대의 흐름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발생한 부산물이 아니라 그저 '요즘 사람'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세대 간의 실제 갈등 사례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렇다.
X와 Y세대에서 주로 일어나는 갈등은 구직문제에서 일어난다. 학교만 졸업하면, 특히 대학까지 나오면 무리 없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던 X세대는 Y세대가 겪는 스펙 전쟁을 살갗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취업난 상태를 열정에 치부해버리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여기서 Y가 일방적으로 그런 인식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 X와 Y의 갈등은 심화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갈등을 빚다 보니 X와 Y의 사이에서는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가 많이 들린다.
Y와 Z세대는 세대가 비슷하니 갈등이 없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세대 간의 나이 차는 많이 나지 않지만, 문화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Y는 화장하는 Z를 보고 ‘우리 때는 화장하는 애들 많이 없었는데,’하는 말로 대화를 시작한 적이 있다. 그리고 Y는 Z에게 ‘꼰대’ 소리를 들었다. 언어생활에서도 문화 차이가 도드라진다. 단어 하나 잘못 내뱉으면 '화석' 소리를 듣기 일쑤이다.
XYZ가 모두 연루되었던 사건도 있다. Z가 대학 진학 후 자퇴 선언을 했던 일이다. 이 문제에서 큰 갈등이 생겼다. Z는 이제 성인인데 왜 마음대로 할 수 없는지에 대한 불만, X는 대학은 나와야 하는 시대인데 왜 중도포기를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불만. 그 결이 다른 불만 사이에서 Y는 알아서 하게 두라는 입장이었다.
X는 시대는 잘 알고 있지만 세대는 잘 몰랐다. Z 또한 X세대가 산 시대는 인지하고 있지만 X가 왜 그러는지는 모른다. 대학이 중요한 시대임을 알지만 서로의 세대가 가지는 성향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서로 각자 분리된 시간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오랜 다툼을 지속하다가 대화와 대화를 거듭한 끝에 결론짓고 화해할 수 있었다.
이렇듯 한 지붕 아래 오랜 기간 살을 맞대고 살아온 가족도 겪는 것이 세대갈등이다. 그럼 우리는 영영 칼로 무 자르듯이 세대가 분리된 채로 살아야 하는가?
타인과 타인이 유연하게 얽어지는 ‘얽힘’의 요인에는 성별, 세대, 화제 등 많은 것이 있지만 가장 중심에는 ‘관심’이 있다. 우리 집 XYZ가 세대갈등을 해결하고 분리되지 않은 채 살 수 있는 것은 비단 혈연이기 때문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피로 엮여있더라도 관심이 없다면 서로 등질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의 관계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이 많고 서로가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 열심히 공유한다. 이것이 얽힘의 핵심이다. 토로하면 들어주고, 듣고 나면 어깨를 토닥이는 것이다.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관심이 있기에 우리 집 XYZ는 본능과 시간 인지의 오류 속에서도 시대순으로 나란히 연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사회적 우리도 연속된 시간 속에 함께 사는 인간으로서 관심과 이해를 바탕으로 충분히 차곡차곡 친밀하게 얽혀 단단하게 뭉칠 수 있다. 관심을 가지고 타인을, 다른 세대를 한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이면 그들의 '사정'이 눈에 보인다. 서로의 고통과 감내, 공통과 차이.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공유한다면 분리 없이 한 덩어리로 얽혀 등을 맞대고 살을 맞대며 공생할 수 있다.
지금도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다. 매해 새로운 세대가 태어나고 있고, 각자는 오래된 세대가 되어 새로운 세대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있다. 하지만 양보하는 것이지 떠나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는 잘 얽혀 살아야 한다. 얽힘은 우리의 권리이자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