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D Oct 29. 2023

DAY 12. 마을

Written by. DKS

  현재 우리 집엔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운다. 첫째가 14살 정도 된 둥이, 둘째가 7살 정도 된 루이, 두 마리 다 수놈이라서 영역 다툼이 치열하다. 둥이는(샴) 단모종이고, 루이는(터키쉬앙고라) 장모종이다. 둥이를 키우게 된 계기는 딸로부터 시작되었다. 원래부터 집에서 키웠던 게 아니고 딸 친구가 키웠던 고양이다. 그 친구가 군대 가게 되자 고양이를 맡아 줄 사람이 없었던 차에 딸이 슬며시 집으로 데리고 왔다. 원래부터 고양이나 개 종류를 싫어하는 나는, 워낙 다른 동물들도 많고 해서 둥이를 친구에게 다시 돌려주던지, 다른 사람에게 맡기라고 딸을 압박했다. 그러나 딸은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날 설득했다. 잠시만 맡아 키우면 그 친구가 제대해서 데려갈 거라고, 워낙 동물을 좋아하는 딸에게 매정하게 할 수 없어서 그렇게 하자고 동의하고 당분간 키우기로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현상이 그날부터 일어났다. 둥이는 다른 식구들은 쳐다도 안 보고 나만 따랐다. 나는 원래 곁의 강아지나 고양이가 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는데, 딸 때문에 알레르기며, 털 날림이며 이러한 것을 참아내고 있었는데, 둥이는 눈치도 없고 싫어하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을 맴돌았다. 그놈 참, 쫓아내지 말라고 아부하는지 나만 따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딸이 고양이가 좋아하는 참치캔을 잔뜩 사서 머리맡에 놓아두었다. 캔 하나를 따서 주면 게걸스럽게 잘도 먹었다. 더 웃긴 것은, 언제인지 몰라도 동물에 대한 알레르기는 사라지고 둥이와 한 침대에서 같이 자면서 동거하게 되었다. 집엔 둥이 말고도 개 두 마리 쿠키(요크셔테리어), 크림이(말티즈), 고양이 세 마리 나나(스코티쉬폴드), 초코(길냥이), 우유(길냥이), 그리고 솜이(토끼) 등이 같이 살고 있었다. 처음 쿠키를 집에 들일 때는 딸이 거북이를 키웠고 거북이가 죽자, 햄스터를 키웠다. 사람이나 동물도 마찬가지로 자기 수명이 있는데, 생각보다 거북이나 햄스터가 빨리 죽었다. 딸은 죽은 동물을 집 근처 공원에 묻어주면서 많이 울었다. 울고 끝나면 될 텐데 다시 파내서 보고 또 울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동물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궁리 끝에 오래 살 수 있는 동물을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대전 출장을 다녀오면서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을 불러냈다. 동네 근처 애완동물을 파는 가게에서 키우고 싶은 동물을 골라보라고 했다. 딸은 뜻밖의 제의에 너무 좋아하며 가게에 있는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둘러보았다. 결정 못 하고 망설이고 망설이다 요크셔테리어인 강아지 한 마리를 선택했다. 값을 지불하고 나서 딸은 그 강아지를 소중하게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동물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퇴근해서 집에 오면 강아지 털 때문에 몸이 근질근질해서 연고를 사다 바르기도 하고 약을 사다 먹기도 했지만, 스스로 벌인 일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탓하지 못하고 강아지와 일정 거리를 두면서 살았다. 딸이 강아지 이름을 쿠키라 지어주고 쿠키를 위한 여러 가지 물품을 사들였다. 우리는 강아지를 키워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첫날은 목줄을 걸고 묶어 두었다. 쿠키는 구속받기 힘들었던지 목줄을 거는 순간부터 낑낑거렸다. 낑낑대는 소리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결국 쿠키의 목줄을 풀어주고 나서 딸아이 품에 안긴 쿠키는 행복한 모습으로 편하게 잠들었다. 그날 이후로는 절대로 목줄을 걸지 않았다. 반려동물이란 말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 쿠키였다. 딸은 마치 자기 자식 돌보듯 정성껏 돌봤다. 그래! 강아지도 식구이구나 하는 생각이 이때부터 들기 시작했다. 나는 고지식해서 동물하고 집안에서 같이 산다는 것을 상상도 못 했다. 딸이 시작한 반려동물 키우기 프로젝트에 휘말린 느낌이 들었다.

 

   일주일 정도 중국 출장을 다녀왔는데 집에 들어오니까 분위기가 싸했다. 느낌이 불안했다. 무슨 일이 분명 벌어졌는데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잠자코 집안을 살폈는데, 못 보던 고양이가 있었다. 그래서 딸에게 물어보았다. 저 고양이는 뭐야? 딸 말인즉, 교회 근처에 버려진 고양인데 좌, 우 눈의 색깔이 틀린 오드아이라고 했다. 특이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지만 키운다고 하면, 아빠한테 혼날 테니 다른 사람에게 입양시켜 주려고 인터넷에 사진도 올리고 해서 키울 사람하고 연락이 되어서 하루만 기다리면 그 사람이 데리러 온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울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크게 화를 냈다. 딸에게 큰소리로 당장 치우라고 말했다. 아빠가 너무 화를 내니까 딸은 배낭에 고양이를 담고 나가면서 다시는 집에 안 들어오겠다고 울면서 나갔다. 원래 강아지만 키우고 고양이는 키울 생각을 안 했는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쿠키 동생인 크림이(마르티스)를 한 마리 더 영입해서 키우고 있었다. 딸이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핸드폰을 사주려고 용산전자상가에 같이 갔는데 그 당시 불링불링이란 핸드폰을 맘에 들어 해서 그 핸드폰을 사주고 오면서 딸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고양이 얘기를 하게 되었다. 고양이 한 마리 키우고 싶다고 했다. 고양이를 키우게 허락해 주면 모든 걸 다 잘하겠다고 한다. 마음 약한 나는 결국 허락해주고 쵸코(길양이)를 데려오게 했다. 개와 고양이가 앙숙이라고 하지만 개는 개 대로 고양인 고양이 대로 영역이 틀려서 그런지 싸우질 않았다. 개는 바닥, 고양이는 위를 점령하고 살았다. 쵸코도 딸 때문에 키우게 되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더 집에 있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딸이 배낭에 고양이를 넣고 집을 나가 버렸으니 마음이 불편했다. 어디 근처에 있겠거니 하면서도 걱정이 되어서 여기저기 찾아보니까 할머니 집에 가서 울고 있었다. 잘 달래서 집으로 데리고 와서 둘째 고양이도 키우게 허락을 해줬다. 결국 집엔 개 두 마리 고양이 두 마리가 살게 되었다. 쿠키, 크림이, 쵸코, 우유 이렇게 네 마리였다.

 

   당시는 반지하 방 3개짜리 전세방에서 살고 있었다. 현관문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문을 열만 밖이었다. 아들이 담배 피우러 밖으로 나간 사이 열린 문틈으로 쵸코가 탈출했다. 낮에는 잘 몰랐는데 저녁이 되니까 쵸코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난리 났다. 사방팔방 쵸코를 찾는다고 돌아다녔는데 결국 찾지 못하고 들어왔다. 딸은 쵸코를 잃어버린 슬픔에 거의 넋을 잃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지만, 나름 잘됐다고 생각했다. 집에 동물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 많았는데 고양이 한 마리 없어진다고 큰 문제 되겠어, 이렇게 단순하게 속으론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루가 지났다. 문제는 심각해졌다. 딸이 식음을 전폐하고 오로지 고양이 찾는 데만 집중했다. 이러다 뭔 사달이 나겠구나 하고 내심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딸에게 물어봤다. 고양이를 어떻게 찾을 수 있니? 딸은 잃어버린 쵸코 때문에 인터넷을 많이 뒤져봤는지 유명한 고양이 탐정이 있다고, 십만 원이면 와서 찾아주고 성공하면 오만 원 더 줘야 한다고 했다.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고양이 탐정을 부르라고 했다. 그냥 두면 딸아이 몸이 많이 상할 것 같아서 탐정을 불러서 찾기로 했다. 저녁이 돼서야 탐정이 왔다. 주변을 살피더니 언덕 밑에 주차해 놓은 자동차 밑을 더듬더니 고양이 한 마리를 잡아서 가지고 온 자루에 담아서 데리고 왔다. 집 안으로 들어와서 자루 입구를 여니까 쵸코가 번개같이 뛰어오르더니 장롱 위로 올라가 숨었다. 성공보수를 주고 고양이 탐정이 가고 난 다음 마음이 조금 미심쩍었다. 과연 쵸코가 맞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런데 쿠키나 크림이 하는 모양새를 가만히 살펴보니 전혀 짖거나 동요가 없었다. 이미 개들은 쵸코 냄새에 익숙해 있었던 것이었다. 경험상 쿠기는 동물이 한 마리, 두 마리 입양되어 올 때마다 민감하게 반응했었다. 코를 킁킁거리거나 안절부절못하거나 낑낑대거나 이해 못 할 행동을 했었다. 그런데 쵸코를 찾아온 날 쿠키나 크림이는 익숙한 냄새라서 그런지 그냥 평온했다. 그래서 눈치를 챘다. 제대로 찾은 거구나 아무튼 거금 십오만 원을 들여서 쵸코를 찾았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해서 보니까 문밖에 이상한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철망으로 된 상자 위에 안이 안 보이게 천으로 둘러놓았다. 이상해서 다가가서 들쳐 보니 그 안에는 토끼 한 마리가 있었다. 토끼(솜)를 보는 순간 당황했다. 더 이상 동물을 집안에 들이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약속을 어기고 토끼를 들인 것이었다. 황당하고 기가 막혀서 딸에게 물었다. 왜 약속을 안 지키고 솜이를 데려왔냐고 말이다. 딸이 말하길 시장을 지나다 보니 어느 할머니가 커다란 플라스틱 대야에 토끼를 넣고 팔고 있었는데 다른 토끼들은 건강한데 유독 한 마리가 눈병이 걸린 채 힘들어하고 있어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샀다고 한다. 딸아이 얘기를 가만히 들어 보니 심성이 착한 우리 딸이 그럴 만도 했다. 그래서 마음 약한 나는 토끼 키우는 것도 허락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동물 식구가 한 마리 두 마리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학에 다니던 딸이 고양이 마니아가 되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고양이 키우는 것을 권유했다. 한날은 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머뭇머뭇 되면서 뭔가 말할 듯 말 듯 망설이고 있었다. 둔한 나도 딸아이의 행동과 표정에서 뭔가 부탁하려고 하는구나, 하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말해보라고 무슨 말인데 이렇게 망설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내 신용카드를 빌려줄 수 없냐고 물었다. 깜짝 놀라면서 무슨 일인데 아빠 카드가 필요해 빚진 거 있어 하고 물었다. 그게 아니고 학교 선배가 고양이 샵에서 본 스코티쉬폴드 종류의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데 당장 돈이 없어서 못 사고 실망하고 있는데, 딸이 냉큼 나서서 아빠 카드로 먼저 사고 나중에 선배가 갚아주면 된다고 하면서 아빠에게 카드를 빌려오겠다고 말했다. 이건 정말 웃지 못할 일이 생긴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딸이 얼마나 아빠를 믿었으면 선배에게 거침없이 자신 있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문득, 카드를 안 빌려주면 딸이 상처 입을 것 같아서 내키진 않았지만, 꼭 갚으라고 해 당부하면서 카드를 내줬다. 결국 고양이를 사고 이름을 나나(스코티쉬폴드)라고 부르면서 딸이 가끔 선배 언니 집에 놀러 가서 고양이 키우는 법을 코치해 주곤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라도 선배 언니가 졸업과 동시에 사귀던 남자와 결혼하기로 했다. 결국 나나는 갈 곳이 없었다. 갈 곳은 단 한 군데 고양이 보호소인 우리 집으로 올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또 나나를 키우게 허락했다. 불가항력이었다. 이렇게 우리 집은 동물 농장으로 변해갔다. 그러던 와중에 딸이 아파서 입원하고 수술받았다. 그런 과정에 우리 집 맏인 쿠키도 시름시름 앓았다. 딸이 수술하던 날 쿠키도 동물병원에서 수술받았다. 오전에 수술이 끝난 딸이 목발을 잡고 잠시 나와서 동물병원에서 수술받고 입원해 있는 쿠키 얼굴을 보고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

 

   수술이 잘 끝났다고 했던 딸이 뭔가 잘못되어서 허리에 차고 있는 피 주머니에서 끊임없이 피가 고였다. 밤 9시 무렵 병원이 긴급하게 돌아갔다. 딸이 재수술 들어간다고 간호사들이 침대를 끌고 나갔다. 나와 아내는 수술실 앞에서 딸이 나오길 기다리며 새벽 4시까지 버티고 서서 지옥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낄 때 의사가 나오더니 하는 말이 수술은 잘 끝났는데 수술이 길어진 것은 장 쪽에 핏줄이 한 개 터졌는데, 터진 부분을 찾지 못해서 개복하고 장을 밖으로 들어내서 일일이 뒤져서 찾아냈다고, 잘못했으면 놓칠뻔했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릴 지껄이고 있었다. 이건 분명 의료 사고인데 대처할 방법도 몰랐고 대처할 수도 없었다. 다만 딸 생명이 붙어있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었다. 그날 쿠키가 세상과 이별했다 14년 동안 잘 키웠는데 쿠키가 우리 딸 대신에, 우리 딸에게 자신의 생명을 넘겨주고 간 것처럼 느껴졌다. 첫째라서 그런지 유난히 정을 많이 줬는데 나머지 삶을 딸에게 주고 자기는 세상을 떠났다. 가슴이 아팠지만, 동물병원에서 내어준 사체를 차에다 싣고 화장장에서 화장한 다음 뼈를 곱게 갈아서 고압으로 압축시켜 스톤을 만들었다. 작은 상자에 담아서 딸아이 입원한 병원으로 가져갔다. 수술 자국의 통증과 쿠키를 보낸 슬픔이 겹쳐서 딸아이 우는 모습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을 나도 느꼈다. 얼마 후 딸은 퇴원했다. 나도 난생처음으로 내 집(아파트)을 샀다. 아파트로 이사하기 전 동물들 때문에 어디서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여러 집을 알아보고 다녔다. 마침 복도가 있는 아파트인데 맨 끝 집이라서 옆집과 경계 부분에 문들 달고 복도에서 토끼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앞도 뒤도 보지 않고 바로 계약하고 이사를 했다. 강아진 크림이만 남았고 고양인 쵸코, 우유, 나나, 둥이 그리고 토끼 솜이와 같이 이사를 했다. 아파트라서 그런지 단독 반지하에 살던 때와는 환경이 많이 틀렸다. 개와 고양이 그리고 토끼는 넓은 집에서 적응을 잘하고 살았다. 그렇게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다가 딸이 결혼하게 되었다. 딸이 결혼 전에 사위에게 다짐받았다고 한다. 고양이를 같이 키우기로 거부하면 결혼을 안 한다고 그렇게 돼서 딸이 결혼하면서 고양이인 쵸코와 우유를 데려가고 집엔 크림이와 둥이, 나나 그리고 솜이만 남게 되었다. 동물들이 북적거리며 살던 집인데 쵸고와 우유가 떠나니까 한적하기도 했지만, 소중한 딸이 가니까 무척 쓸쓸했다.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지금 키우고 있는 동물들만 떠나면 다시는 동물을 안 키우리라고, 지금껏 딸이 좋아서, 딸이 좋아해서 마지못해 키웠다고 생각했지만, 내심 나도 동물을 좋아했던 것 같았다. 딸이 시집을 가고 나서 몇 달 후에 큰 사고가 터졌다. 아들이 오토바이를 타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공교롭게도 그날 오전에, 회사에 있는 나에게 아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아들이 친구 사채보증을 했는데 그 친구가 돈을 갚지 못해서 지금 아들을 잡고 있다고 돈 안 보내면 아들에게 상해를 입히겠다고 하는 협박 전화였다. 나는 바로 보이스피싱이니까 응대하지 말고 경찰에게 신고하라고 했다. 아내는 곧바로 신고했고 경찰 두 명이 집으로 와서 아내를 진정시켰다고 한다. 나도 퇴근하고 바로 집으로 왔다. 그게 보이스피싱인 줄 알면서도 은근히 걱정되어서 아들에게 전화했냐고 아내에게 물어보니까 아들이 집에 와서 아르바이트한다고 나갔다고 한다. 그제야 마음 놓고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딸에게 급하게 전화가 왔다. 아빠 뭐하냐고 지금 아들이 교통사고가 나서 의식불명이라고 울면서 전화가 왔다. 그러나 나는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낮에 호되게 당해서 이것조차 거짓인 줄 알았었다. 그런데 딸의 말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디에 어느 병원에 있냐고 물었다. 구로 고대병원에 있다고 의식불명인 상태로 있다고 한다. 난 온몸이 떨려서 직접 운전하지 못하고 아내와 둘이 택시를 타고 구로 고대병원으로 갔다. 그런데 아들은 거기 없었다. 고대병원에서 알아보더니 보라매 병원 응급실에 있다고 한다. 다시 택시를 타고 보라매 병원으로 가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제발 의식만은 있어야 한다고 속으로 기도하면서 보라매 병원 응급실로 갔는데 아들의 모습을 본 순간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양 손목은 부러지고 얼굴은 깨지고 앞니는 다 부러지고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의식은 있었다. 제 몸 아픈 과정에도 엄마와 아빠를 알아보니까 다행이었다. 아들을 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양 손목 수술을 받고 나서 아내가 집에 와 보니 나나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참 묘한 일이었다. 우리 애들이 목숨이 위태로울 때마다 키우던 개와 고양이가 세상을 떠났다. 나나도 아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고 하늘로 간 것 같았다. 딸과 아들 모두 쿠키와 나나가 보호해 준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세상을 떠난 우리 집 동물들은 저마다 사연을 지니고 세상을 떠났다. 토끼 솜도 아들이 입원해 있는 동안 세상을 떠났다. 남아있는 동물은 크림이와 둥이 둘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 집에 우연히 들렀는데 딸이 황급히 뭔가를 숨기는 느낌이 들었다. 화장실을 못 가게 막고 서 있었다. 그래서 왜 그러니 하고 물어봤다. 영 대답을 안 하길래 화장실 문을 열어 보았다. 화장실 속엔 지금의 루이가 숨어 있었다. 안 그래도 딸 집엔 고양이가 4마리나 있었다. 어느새 입양했는지 몰라도 두 마리가 더 늘었다. 루이는(터키쉬앙고라) 딸 친구가 딸에게 신고해서 구조하게 되었다고 한다. 딸 친구가 살던 아파트에서 이사 가면서 버린 것 같다고 한다. 왜냐하면 루이를 구조하고 나서 주인을 찾아주려고 며칠 동안 주인을 찾았는데 아무도 연락이 없어서 딸이 보호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즉시 내가 데려다 키우겠다고 딸에게 말하고 고양이 카트에 루이를 넣어서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딸에게 왜 루이라고 이름을 지었냐고 물어봤더니 주인에게 버림받고 밖에서 떠돌길래 불쌍해서 왕처럼 살라고 루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했다. 루이를 데리고 집으로 데리고 온 날이 1년이 넘을 동안 루이는 늘 외롭게 구석에 처박혀서 그 누구에게도 손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버림을 받은 상처가 참 크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상처를 추스를 동안 먹이와 물만 주면서 바라만 보았다. 처음 1년은 눈길 한번 주지 않더니 2년 차에 들어서는 조금씩 다가왔다. 데려올 당시 동물병원에서 3살이라고 했으니 4년을 키웠으니 현재 7살이다. 그동안에 크림이도 치매에 걸려 왔다 갔다, 하더니 13년 동안 살다가 세상을 등졌다. 역시 마찬가지로 화장장에 가서 스톤을 만들어 보관 중이다. 다들 떠나고 지금은 둥이가 대장이다. 루이와 같은 수놈이라서 영역 다툼이 심하고 루이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다. 둥이의 영역은 안방과 거실에 있는 캣타워, 루이의 영역은 건넛방 내 서재와 식탁 사이었다. 지금도 활발하게 영역 다툼을 하는 것을 보면 둥이와 루이는 건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들어 부쩍 루이가 나에게 등을 들이민다. 행동이 많이 바뀌었다. 의자에 앉아 있으면 날름 올라타서 내 무릎 위에 눕는다. 이제는 나를 받아들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여전히 활발한 둥이는 둥이 마을에서 부쩍 친해진 루이는 루이 마을에서 아주 오랫동안 건강하게 잘 살 것을 기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DAY 12. 마을 <행복한 죽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