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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작가 Apr 28. 2021

[에이번리의 앤]을 읽고...

천진한 앤의 어른으로 가는 준비

함연 동화 모임에서 [에이번리의 앤]을 함께 읽었다. 

종결 모임을 꽤 오래전에 했는데 그간 책 읽는 속도가 느려 이제야 서평을 정리해 본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빨간 머리 앤은 말괄량이에 모든 것을 사랑하고 상상하기를 즐기는 귀여운 꼬마 소녀이다. 그런 앤이 한 발짝 어른이 되어가기 위한 준비과정을 그린 소설을 [에이번리의 앤]이라고 할까?

퀸즈를 졸업하고 자신을 딸처럼 키워 주던 매슈 아저씨가 돌아가신 뒤 마릴라를 에이번리에 혼자 둘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자 앤은 과감하게 에이번리에 남아 그곳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다. 


이상적인 꿈을 품고 앤은 아이들을 잘 가르치겠다는 큰 포부로 시작하지만 현실이 그러하듯 모든 일은 내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앤은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빨간 머리 앤과는 크게 다르지 않은 에이번리의 앤이 그려지지만 그래도 아이 때의 모습보다는 좀 더 성숙한 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p162. 우리 모두 봄이 아직 어디서 시작되는지 제대로 모르지만 다른 데서는 봄을 만날 수 없으니까 우리가 숲으로 마중 나가는 거야. 아무튼 난 들판과 한적한 곳은 다 돌아다니고 싶어. 누구나 그냥 보고 지나칠 뿐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구석에 아름다운 곳이 많을 거야. 바람과 하늘과 태양과 친구처럼 놀다가 가슴 가득 봄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거야. 

[에이번리의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어릴 때의 앤은 오로지 자신이 관심을 주는 대상에 집중하기를 좋아했다. 에이번리의 앤에서도 앤은 자연을 사랑하고 아름답고 고운 것들의 순간에 애정을 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에이번리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들에 조금씩 녹아져 사회의 일원이 되려는 모습들이 그려졌다. 


p194. 하나의 세상을 이루기 위해선 별별 사람이 다 필요하다고 들었지만 그래도 쓸모없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 어쨌든 영혼을 더럽히는 일은 입에 담지 않을 거야. 그래야 내 양심이 떳떳하니까. 이번 일은 누구에게 감사하고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어. 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주드슨 파커나 제리 코코런이 지지하는 그런 정치가들이 활동하는 게 신의 섭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에이번리의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에이번리의 청년들과 개선협회를 주도해 가면서 앤은 점점 마을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해 나가기 시작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빨간머리 앤]은 앤의 중신으로 돌아간다면 [에이번리의 앤]은 제목 그대로 에이번리의 사람들의 이모저모를 세세하게 그려준다. 읽으면서 내내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사건들을 보며 아주 오래된 옛날 사람들이 살아갔던 그 시간이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이나 사람의 모습은 매우 비슷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p.299 데이비, 도라 팔꿈치를 흔들지 마라. 아니, 내가 봤어! 괜히 시치미 떼지 마라. 온르 아침 따라 왜 그러는 거니?

[에이번리의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앤과 마릴라는 초록 지붕 집에서 살림을 꾸려가면서 먼 친척인 데이비와 도라 쌍둥이를 맡아 키우게 되는데 쌍둥이 이면서도 성격이 완전히 반대인 이 둘 중 데이비는 우리 아이와 너무 똑같다. 앤이나 마릴라가 데이비에게 혼을 내는 장면이 나오면 어쩜 마릴라나 앤이 내가 했던 말 그대로를 하는 것 같아 흠칫 놀라게 된다. 항상 말썽을 부리지만 또래의 7살 아이처럼 구는 아이일 뿐이다. 이 모습은 마치 어렸을 때의 실수 가득했던 앤과 비슷하다. 그래서 그런지 앤과 마릴라는 데이비를 싫어하기는커녕 더 애정을 쏟아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학교에 가서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초록 지붕 집에서는 마릴라와 함께 데이비와 도라를 돌보며 개선협회에서는 마을의 여러 가지 일을 주도해 꾸려나가는 앤이 어찌 보면 현실성에 있어선 좀 떨어져 보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일들을 다 할 수 있단 말인가? 

 

p260. 길버트는 드루아스 샘 가장자리에 핀 고사리들 위에 앉아서 친근한 눈길로 앤을 바라보았다. 길버트에게 이상적인 여인상을 말하라고 한다면 그의 묘사는 하나하나 앤과 일치했을 것이다. 심지어 여전히 앤의 마음을 괴롭히는 성가신 존재인 조그마한 주근깨 일곱 개마저도. 길버트는 아직 소년이나 다름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꿈을 가지고 있었다. 길버트의 미래는 맑고 큰 잿빛 눈동자와 꽃처럼 섬세하고 우아한 얼굴을 가진 소녀와 늘 함께했다. 더욱이 길버트는 자신의 미래가 사랑하는 여성에게 어울리는 것이어야 한다고 마음을 굳혔다. 

[에이번리의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에이번리의 앤]을 읽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길버트와 앤의 이야기이다. 적어도 너무 적게 나온 길버트와 앤의 감정선이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다음에 이어 읽을 [레드먼드의 앤]에서는 달콤한 이야기가 기다린다고 하니 믿어 보기로 했다. 그나마 중간에 앤을 향한 길버트의 마음을 조금씩 엿볼 수 있었는데 어쩜 한 사람만 이렇게 지긋이 바라볼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 부분은 작가의 이상형이 길버트 같은 사람이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도 들었던 것 같다. 


p387. 앤은 자물쇠로 책상을 잠그면서 "내 삶의 또 한 시기가 지나갔다."하고 크게 소리쳤다. 앤은 그 사실 때문에 몹시 슬펐다. 그러나 '지난 시절'이란 말에서 풍기는 낭만이 마음을 조금은 달래 주었다. 

[에이번리의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p420. 그리고는 다시 막이 내렸다. 하지만 지금 어두운 오솔길을 걸어 올라가는 앤은 어제저녁에 명랑하게 마차를 몰고 가던 앤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소녀 시절의 장을 펼쳤던 것처럼, 앤 앞에는 신비롭고 매혹적이면서 고통과 즐거움이 가득한 여인의 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에이번리의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앤에서 조금 성장을 했었던 소녀인 앤. 한 장 한 장 마음에 닿는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 라벨을 표시해 놓고 정말 마음에 가는 문장들은 필사를 해 두었다. 


앤이 맺어가는 여러 사람들의 관계를 보면서 나는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나에게 다이애나 같은 사람은... 라벤더 같은 사람은... 있을까? 내 주변의 이웃들은 어떤가? 나는 그들에게 어떤 사람인가? 

또한 소녀였던 나의 시절. 그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나 기억해 보았다. 앤은 쉽지 않은 상황과 환경 속에도 상상하기를 끊지 않고 만물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있는데 나는 어떠했나 그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사람의 정이 그리울 때에, 주위에 아무도 없다고 느껴질 때에, 갑자기 마음이 서늘해질 때에, 꿈꾸는 듯한 표정의 앤의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그러면 앤이 친구가 되어 여러분을 포근히 감싸 줄 거예요. 

[에이번리의 앤] 옮긴이의 말


마지막 옮긴이의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이제 [레드먼드의 앤]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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