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담스럽게 핀 여름 꽃 백일홍
8월 2일 아침 아이의 긴 방학을 마치고 오랜만에 등원 길에 나섰다.
여러 복잡한 일이 있던 7월을 무사히 넘기고 아침 등원 길 살짝 내린 소나기 덕분에 기온이 선선했다. 긴 방학 동안 늦잠을 자던 아이는 웬일로 '아침이야 유치원 가야지~'하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차근차근 유치원 준비를 했고 덕분에 여유로운 등원 길을 맞을 수 있었다. 이날 아이는 원래 빠르게 걸어갈 수 있는 길을 두고 공원 쪽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공원에 들어서서 아무 생각 없이 천천히 걷고 있는데 너무나 고운 꽃을 피워낸 나무 몇 그루를 발견하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 너무 예쁘다. 곱다~"
곱다 예쁘다는 말을 연신 하며 사진을 찍고 있으니 아이가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오늘 엄마 생일이라고 내가 찾아줬지!!"
하며 굉장히 뿌듯해하는 것이다. 꽃나무도 아름다웠지만 아이의 말도 너무 아름다웠기에 그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려고 집에 돌아와 그 일에 관한 짧은 글을 기록해 두었다.
처음에는 이 고운 나무가 배롱나무라는 것을 몰랐다. SNS에 사진을 찍어서 올리 때 '이 나무의 정체는 무엇일까요?'라고 멘트를 달았는데 친절하게도 같이 독서모임 하시는 분이 이 꽃은 배롱나무며 백일홍 나무라고도 불린다고 알려주셨다. 또 그에 얽힌 백일홍 전설이 있으니 아이와 함께 꼭 찾아보라 말씀해 주셔서 하원하고 집에 온 아이와 관련 영상을 찾아보았다. 선홍이라는 고운 처녀의 슬픈 사연에 얽힌 전설을 보곤 나 혼자 뭉클하고 애잔했는데 아이는 별다른 감응이 없어 보여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어찌 되었든 이제 나에게 배롱나무는 이전의 나무들과 사뭇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등원 길에도 아이에게 어제 본 고운 배롱나무를 보고 가자고 했고 아이는 흔쾌히 알겠다고 말해 주었다. 배롱나무는 나에게 여름이 주는 뜻밖의 선물 같아서 애틋하고 소중하다. 더 큰 이유는 백일홍은 여름 100일 동안만 피는 꽃이라고 하니 곧 이사를 앞두고 있는 나로서는 내년 이 자리 이 시간에 나무가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지 못할 것을 알기에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오늘은 화창한 날씨에 나무가 더 선명해 보여서 공원에 들어서면서 멀찍이 보이는 배롱나무를 보곤 "우와~ 우와~"하고 감탄사를 쏟아냈다.
아이는 배롱나무를 보며 좋아하는 나를 향해 오늘도 이야기한다.
"엄마를 위한 선물이야~"
백일홍은 백일 동안 꽃이 피어있다가 백일 후에 지는 것이 아니라 백일의 여름날 동안 피고 지고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나무라고 한다. 이 나무에 대한 애정이 생겨서 일까 그냥 스쳐 지나갔을 법한 글들도 멈춰서 '배롱나무'라는 단어만 보이면 자세히 들여다보고 읽는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우리 동네에 이 나무가 이렇게 많았었나?' 싶을 정도로 내 눈에 띄기 시작해서 멀찌기 있는 배롱나무를 애달프게 쳐다보며 연신 카메라로 찍기 바빴다. 급하게 셔터를 누르느라 화질은 좀 엉망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진에 닮을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