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서 태어난 문장들

쓰고자 하는 마음들이 모여서...

by 돌고래작가

나는 왜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을 놓지 못할까?


어릴 때부터 다른 칭찬보다는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고, 어깨가 으쓱해졌다.

글로 처음 칭찬을 받은 건 초등학교, 그 당시엔 국민학교라 불리던 시절 4학년 때였다. 학급 숙제로 낸 독후감으로 상을 받았는데, 그때의 설렘은 아직도 선명하다. 하지만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이어가지 못했기에, 그 기쁨은 오래도록 아쉬움과 동경으로 남았다.


첫 출산 이후, 내 안에 쓰고자 하는 욕구는 날로 커져 갔다. 신생아 시기, 잠잘 틈조차 없었지만 나는 부단히 책을 읽고 글을 쓰려 애썼다.

아이의 낮잠 시간에는 아기띠를 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미리 검색해 둔 책을 빠르게 찾아 빌려 나오면, 아무에게도 피해 주지 않고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서관을 오가면서 만난 책이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였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야 조금 더 여유롭게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

동네 문방구에 들러 글을 쓰기 위한 노트를 하나 구입했다. 아침에 아이를 등원시키고 집에 돌아와 간단히 청소를 마친 뒤, 거실에 작은 책상을 펼쳐 놓고 앉았다.

노트를 펼치고 그 위에 내 속의 말들을 와르르 쏟아냈다.

울분을 토하듯 글을 쓰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글이 될 만한 글은 아니었지만, 써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후 블로그 글쓰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기본 틀이 있고 키워드에 맞춰 작성하면 되는 일이어서 어렵지 않았다.
내가 쓴 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뿌듯했지만, 다른 사람의 글만 쓰다 보니 내 글을 쓰고 싶은 갈증은 점점 커졌다.


그 갈증을 내 개인 기록으로 풀어냈다. 데일리 다이어리와 작은 노트 ‘낫씽북’에 매일같이 기록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닮아 있어 기록 또한 반복일 뿐, 특별한 점은 없었다.

종이에 글이 쌓이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면 ‘이건 종이 낭비가 아닐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내 안에 글을 잘 쓰는 재능은 없는 게 아닐까’


내 안에 오래 묵혀 있던 작가의 꿈.

어린 시절엔 칭찬의 기쁨,
성인이 되어선 동경의 그림자,
결혼과 출산 뒤엔 내 속의 말을 깨우려는 욕망으로 자라났다.


그러던 며칠 전 재미난 꿈 하나를 꿨다. 갑자기 출산을 하게 되는 꿈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대학 시절 졸업 작품을 준비하던 교실에 있었다.
공간은 현실과 완전히 같진 않았지만, 좁았다 넓었다 하며 상황에 따라 변했다. 열정과 긴장, 불확실성이 뒤섞인 공간이었다.


순간 어금니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작고 뾰족한 플라스틱 같은 것이 느껴져 빼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문득 그것이 단순한 플라스틱이 아니라 생각보다 큰 다이아몬드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이 사이에 낀 반짝이는 보석. 나는 그것을 힘겹게 뽑아냈다. 손 위에 놓인 다이아몬드는 눈부시게 빛났고,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이건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 거야.”


차갑고 서늘하던 교실은 어느새 아늑한 방처럼 변해 있었다.
누군가 방 한가운데에 1인용 이불을 펼쳐 두었고, 그 곁에는 몇몇 사람이 서 있었다.
특히 여자 교수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남는다.
그 이불 위에 누워야 할 사람은 바로 나였다.
곧 진통이 시작될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지만, 곁에 있어야 할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속옷이 젖으며 양수가 터졌다. 따뜻한 물이 다리를 타고 발목까지 흘러내렸다. 방 안에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오가고 있었고, 어떤 이는 무심히 내가 흘린 양수를 밟고 지나갔다. 곧 출산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서둘러 남편을 찾아 밖으로 나섰다.


밖은 한밤중이었지만 축제의 열기로 가득했다. 주변은 어둡고 캄캄했지만 중앙에 위치한 공연 무대에서는 굉장히 밝은 불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거기 있는 많은 사람이 축제 열기로 기분 좋게 흥분된 상태였다.


공연장은 넓었지만, 남편은 금세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는 낯선 두 남자의 질문에 붙잡혀 있었고, 나는 조바심 속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남편은 여유롭게 그들의 질문을 받아 대답했고, 오래 기다린 끝에 내 곁으로 돌아왔다. 함께 실내로 들어서는 순간, 출산의 고통도, 양수의 긴급함도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어린 시절 칭찬을 받던 순간부터, 출산 이후의 갈증, 그리고 매일의 무기력한 기록까지.

글은 내 삶을 관통해 왔다.

때때로 값진 보석 같은 문장을 만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무의미한 기록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시간이 결코 무의미하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꿈속 이야기에서 양수가 터지듯, 나는 글을 통해서 내 안의 말을 쏟아 내야 하는 사람이다. 글을 쓰면서 활기를 얻고, 존재의 이유를 확인해 간다.

내가 쓰는 글은 거창한 글은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의 사소한 삶이다.


꿈에 나타난 출산은 어쩌면 새로운 글을 낳으라는 내 안의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다이아몬드는 힘겹게 뽑아내야만 얻을 수 있는 빛나는 문장이고, 축제는 글쓰기가 결국 나를 삶과 이어 주는 거대한 무대라는 암시였을지도.


나는 여전히 생각한다.

‘나는 왜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을 놓지 못할까?’

아직 그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노트를 펼치고 펜을 들어 무엇이라도 적어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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