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마음의 온도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평소 스릴이 넘치는 놀이기구를 즐기지 않는다.
그래서 놀이공원을 방문하는 일은 손에 꼽힌다.
그런 내가 한여름의 어느 날, 꿈속에서 놀이공원에 있었다.
내 기준에는 굉장히 스릴이 넘치는 놀이기구를 타는 꿈이었다.
2명이 짝지어 타는 비행기 모양의 기구였는데,
내 시점은 뒤 쪽에 있었고 두 칸 앞에 나와 잘 모르는 여자아이가 함께 타고 있었다.
기구는 천천히 떠올라 회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느린 속도로 돌다가 점점 속도가 빨라졌다.
놀이기구가 아무리 빠르게 돌아간다 한들
실제로 떨어질 일을 일어나지 않는다.
꿈에서 나는 옆에 아이가 있어 그랬는지 그 기구를 신뢰할 수 없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불안감이 커졌고, 혹시 아이가 튕겨져 나갈까 싶어서
아이를 꽉 껴안은 채 안전바를 붙들었다.
그 여자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었다.
아마도 아는 지인의 자녀 같았는데, 그 지인과도 친분이 깊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텼다.
다행히 우리가 놀이기구에서 튕겨져 나오는 불상사는 없었다.
기구는 안전하게 지상에 착지를 했고, 무사히 내릴 수 있었다.
놀이기구를 탈 때는 함께 탄 사람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았는데
내릴 때 보니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함께 타고 있었다.
나와 같이 내렸던 아이는 나에게 말도 없이 남동생을 챙겨 인의 엄마를
찾아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아이가 사라지고 나니 어느새 친정엄마가 내 옆에 서있었다.
“아이가 그냥 가버리는데, 이런 곳에서 길 잃으면 어쩌려고 하니?”
엄마는 꽤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나무랐다.
나는 오히려 더 큰 소리를 내며 말했다.
“괜찮아요. 아이는 이미 다 컸고 본인 엄마를 찾아갈 거예요. 봐요. 동생도 잘 챙겨서 가고 있잖아요.”
나는 더 이상 그 아이를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 자리를 벗어나 밖으로 나왔다.
놀이공원이었던 배경은 자연스럽게 평소 자주 가던 쇼핑몰로 바뀌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북적했고, 사람들에게 밀려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강아지 한 마리가 나에게 달려와 내 몸을 핥고 지나갔다.
고개를 돌리니 엄마는 없고 남편이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남편은 영양제를 알아보던 중 조금 더 저렴하게 파는 곳을 찾기 위해서
상담원과 통화 중이었다.
그의 말투는 차분해 보이긴 했지만, 다소 딱딱하고 퉁명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 본인이 원하던 정보가 상담원의 입에서 나오지 않아 불만인 듯했다.
나는 그 모습이 싫어서 핸드폰을 켜고
영양제의 정보와 판매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해 보았다.
남편이 원할 것 같은 꽤 저렴한 사이트를 금방 찾아서
그 화면을 보여줬지만 그는 여전히 상담원과 입씨름 중이었고
내가 준 정보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현실에서도 이런 남편의 모습은 익숙하기에 별 신경 쓰지 않고 핸드폰으로 다른 내 할 일을 했다.
친구들이 있는 톡방의 대화들을 살펴보는데,
누군가의 생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무의식 중에 우리 가족 생일은 모두 지났지 하고 생각했다.
순간 내 눈앞에 하얀 케이크가 놓였다.
토핑도 장식도 없는 새하얗고, 모양이 둥근 케이크였다.
실제로 본 적이 있는 케이크다.
1년에 한 번 연락할까 말까 한 지인이 생일 축하한다면 줬던
모바일 쿠폰에 있던 케이크였다.
그 선물을 받았을 때 난 달갑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한참 통화를 하던 남편은 내 옆에 없고 밖으로 나간 뒤였다.
금방 온다는 말을 남겼던 것도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고 어렴풋이 그런 느낌이 들었다.
‘금방 돌아온다고 했으니까, 촛불 켜도 되겠지?’
순간 무슨 생각인 건지 언제 올지도 모르는 남편이 곧 올 거라 생각하고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였다.
하지만 남편은 한참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금방 오지 않을 것을 느꼈던 순간부터
나의 불안한 마음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촛농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하얗던 케이크가 까맣게 변하고 있었다.
마치 불 연기에 그을린 것처럼 말이다.
‘더 늦기 전에 남편에게 어서 오라고 해야겠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서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받은 남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지금 병원에 왔는데, 내가 찾고 있던 책이 여기 있어. 이걸 좀 읽다가 가고 싶어!”
지금 케이크가 다 망가지고 있는데,
병원에서 책을 읽겠다는 태평한 남편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망가진 케이크를 보며 어이없어하다가 결국 버럭 화를 냈다.
“지금 케이크가 다 망가지고 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러곤 꿈이 끝났다.
놀이공원 꿈을 꾸었을 때 ‘헬리콥터맘’이라는 단어가 떠올렸다.
실제 나는 아이의 안전에 대해서 늘 불안해하는 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그 불안한 마음은 내 행동에 그대로 나타났다.
아이가 조금씩 커가면서 덜해지는 것 같긴 하지만
옆에서 보고 있자면 늘 두려운 무언가가 내 안에 있는 것 같다.
반면 친정 엄마는 오히려 나의 안전에 대해 무덤덤한 편이었다.
태생이 예민한 성격이라 불안감이 늘 높았는데,
부모님께 거기에 맞는 보호를 못 받았다고 생각해
내 아이를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남편은 늘 아이를 예민한 아이로 키우지 말라고 하는데,
내 성격이 이렇다 보니 쉬운 일이 아니다.
케이크 꿈은 아마도
여름이면 겪는 일종의 의식 같다.
기념일이라고 하는 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다가
막상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 버리면
섭섭한 마음이 배로 다가온다.
대단한 걸 바라는 것은 아니고
가족과 함께 케이크 하나 두고, 촛불 켜고 노래 부르는 정도면 충분하다.
하지만 가족 생일이 한 여름에 모두 몰려있다 보니,
케이크 처리가 만만치 않다는 문제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