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3:미로와 같은 지하철 역사

또다시, 나는 길을 잃었다

by 돌고래작가

배경이 지하철 역사인 꿈은 나에게 그다지 유쾌하지 않지만 꽤 자주 등장하는 장소 중 하나이다. 늘 열차 도착 시간에 쫓기거나, 미로 같은 역사 안에서 헤매거나 혹은 노선도를 잘못 보고 엉뚱한 곳을 향하곤 한다. 지난밤 꿈에서 나는 역사 안에서 한참을 헤맸다.


어디서부터 시작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이 선명해지기 시작한 곳은 지하철 열차 안이었다. 사람이 많았고, 익숙한 친구들과 함께 타고 있었지만 실제로 기억에 나는 인물은 없었다. 곧 내릴 때가 되어서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서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혹시라도 내릴 타이밍을 놓쳐 내려야 할 곳에서 못 내리게 될까 걱정되었다.


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중앙에 있던 테이블 위에 무언가 펼쳐 놓았다. 지하철 열차 내부는 마치 학교 교실과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친구가 펼쳐 놓은 물건에 신경이 집중되어 한참을 보다가 내릴 때가 되어서 서둘러 짐과 옷을 추슬렀다. 내릴 때 같이 내리는 친구가 없는 줄 알았는데, 열차의 문이 열리고 뒤로 두세 명이 따라붙었다. 친구들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목적지를 향해 서둘러 움직였다.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맞다고 생각해 곧장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 끝에는 막다른 길이었다. 그 순간 밀려오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지만 여유 부릴 틈이 있진 않았다. 길 끝에는 문이 하나 있었는데, 살짝 열려 있는 틈 사이로 사무실 책상 같은 것들이 보였다. 지하철 역사 직원들이 사용하는 공간인 것 같아 이쪽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방향을 틀어 황급히 내려와 다른 길로 향했다.


다시 역사 안에서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이 길도 가보고, 저 길도 가보고 내가 타야 할 열차 플랫폼을 열심히 찾았다. 생각해 보면 열차는 기다리면 언제든 다시 오는데, 왜 꿈에서는 지금 오는 열차를 반드시 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꿈에서는 늘 시간에 쫓기는 상황이 자주 생긴다. 시간에 쫓길 때 조급한 내 모습은 현실의 나와 다른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닮아 있다.


헤맨 끝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여 발을 내디디려는데, 계단에는 굉장히 많은 장애물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내 키만 한 과자 봉지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나는 그중 하나를 들어 품에 안으면서 집에 가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꿈이고 봉지에 든 과자지만 지하철 역사 바닥에 떨어진 과자 봉지였다. 순간 “정말 먹어도 괜찮은 걸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무슨 상관이람 하고 그 생각을 흘려보냈다.


열차를 타러 가기 위해 다시 걸었다. 걸으면서 노선도, 이정표 등을 꼼꼼하게 살펴보며 타야 할 열차가 올 플랫폼 방향으로 맞게 가고 있는지 확인했다. 노선도를 살펴보다 내가 내린 역이 아빠가 있는 곳 근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노선도를 보면서 내가 떠올린 사람이 정말 아빠였는지 아니면 남편이었는지 헷갈렸다. 아빠인가? 아닌가 남편인가? 기억이 흔들리다가 마지막엔 결국 남편으로 바뀌었다. 내가 내린 지하철 역이 남편 회사 근처였기 때문이다.


마침 퇴근 시간이라 시간이 맞으면 함께 가야겠다는 생각에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가 걸리는 신호음은 들렸는데,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전화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해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내가 타야 하는 열차는 막 출발했고, 아래로 내려왔을 땐 열차 뒤꽁무니만 보였다. 한참을 헤맨 끝에 겨우 찾아왔는데, 이 타이밍 하나 맞추지 못하다니 왠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열차는 곧 다시 올 것이고 단지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이 조금 늦어질 뿐이라며 단념했다.


남편이 전화를 받지 않아서 나는 전화기를 들고 플랫폼을 왔다 갔다 했다. 그때 내 뒷배경은 열차 플랫폼에서 평범한 도시의 도로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헷갈릴 무렵 피로감이 몰려왔고 다시 배경이 도로에서 집으로 바뀌었다.


분홍색 화사하고 포근해 보이는 이불속에는 내 아이 또래 남자아이 둘이 누워서 자고 있었다. 나도 피곤해 누우려고 하는데,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 목소리였는데, 그 목소리가 남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이불에서 엄마 냄새가 나지 않네? 너는 어딜 다녀온 거니?”


그 목소리는 마치 날 혼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만 너무 피곤해 목소리를 무시하고 한 아이 옆으로 자리를 잡고 누웠다. 막 잠이 들려는 순간 남편이 와서 내 어깨를 잡고 일으켰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 거실로 나오라고 하면서 그는 거실 소파로 가 앉았다. 나는 침을 흘린 것인지 콧물이 나온 것인지 얼굴 주변이 축축해서 코만 풀고 가겠다고 했다. 이때 집의 배경은 아이가 태어났을 무렵 살았던 개봉동 집이었다.


얼굴을 정리하고 남편에게 가려고 했을 때 잠에서 깨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남편이 할 말이 있다고 했는데, 다시 잠들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완전히 깨어났다. 나는 남편의 말이 궁금해 다시 잠들고 싶었지만 이미 깨어버린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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