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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작가 Nov 19. 2020

거센 가을비

폭풍 같은 등원 길

오늘은 새벽부터 많은 비가 내렸다. '웬만하면 아이 등원을 포기할까?' 싶은 마음이었는데 대략 한 달 전쯤부터 코로나 때문에 유치원에서 미루고 미룬 행사를 하필 오늘 하는 날이어서 큰 마음먹고 등원하기로 했다. 

원래도 집 밖에 잘 나가지 않는 아이는 비가 오는 날엔 더 안 나갔던 터라 (늘 비가 오면 너무 좋지만 집에서 창밖을 보고 있는 게 더 좋다고 하는 아이...) 장화, 우산, 우비까지 챙겨가야 하는 날이 익숙하진 않았다. 그래도 유치원에서 무언가 신나는 놀이를 할 거라고 하니 기분 좋게 집을 나섰다. 1층으로 내려갈 때쯤 집에서 보기엔 비가 좀 약하게 내리는 듯 보여서 우비를 현관에 두고 나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비가 굉장히 많이 쏟아져 다시 올라가 아이의 우비를 챙겨 입히고 다시 내려왔다. 집을 막 나와서 단지를 빠져나갈 때까지만 해도 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고 아이도 비가 많이 오는 날 밖에 나와본 적이 별로 없어서 신나 있었다. 네 살쯤 베트남 여행에 갔다가 관광하던 날 비가 와서 우비를 사려고 보니 아주 어린아이들 사이즈는 없고 큰 사이즈 우비만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사줬었다. 그런데 이제야 그 우비가 아이의 몸에 딱 맞는 것이다. 딱 맞는 우비와 장화 그리고 우산까지 챙겨 첨벙첨벙 물 웅덩이를 지나쳐 걸으니 꽤 신났던 모양이다. 


하지만 단지를 빠져나와 유치원을 향해 좀 더 걸을 때쯤 나는 한쪽으로 기우는 아이 우산이 너무 신경 쓰였다. 시기가 시기이니 만큼 감기에 걸리면 곤란하고 어쨌든 지금은 아프지 않은 게 제일 좋을 때이니 차가운 비에 젖지 않게 뒤에서 우산을 똑바로 써야 한다고 호통쳤다. 우비까지 입히고 장화를 신고 우산을 들었으니 아이는 움직임이 거북해졌고 물웅덩이가 곳곳에 보이니 놀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비 맞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다른 곳에 한눈이 팔려 우산이 기울어지며 자기가 비를 맞고 있는지 몰랐던 것이다.

유치원에 가까워 오자 엄마의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예상보다 많은 비가 와서 인지 떨어진 낙엽들이 배수구를 다 막아놔서 인지 곳곳에 큰 물덩이가 고여 있어 지다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여전히 아이는 우산을 똑바로 들지 않으니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비가 많이 오니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자가용으로 등원을 하기 위해 유치원 앞은 차도 난리, 물웅덩이도 난리라 차가 지나갈 때마다 물이 튀어서 더 긴장이 되었다. 


겨우 아이를 정신이 없이 등원시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빗줄기가 줄어들었다. 유치원에 들어가 더 이상 비를 맞을 걱정이 없어 안도가 되었는지 아침부터 괜한 호통을 쳤나 싶어 마음이 불편했다. 이 놈에 코로나만 아니었어도 아이의 감기쯤이야 걸리면 며칠 집에서 내가 보살펴 주면 되지 등원 길에 호통을 쳐야 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지금은 아프면 서럽고 위험한 시기이다 보니 저절로 몸을 사리게 된다. 


다행히 아이가 하원 하는 길엔 비가 완전히 그쳐 아침시간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미안한 마음에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챙겨주고 먹고 싶은 것을 챙겨 주었는데....


오후 시간은 또 다른 불같은 내가 튀어나온다. 

이쯤 되면 내가 문제인 건지... 아이가 문제인 건지... 아니면 이놈에 코로나 탓인지

육아의 길을 멀고도 멀다.


배경 이미지 출처 : https://www.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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