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엄마, 나
어젯밤에는 꿈에 할머니가 나왔다. 우리 할머니 아직 살아계신데 꼭 돌아가신 사람 마냥 내 꿈에 나오신다. 그럴 때면 할머니의 건강이 염려된다. 아침 결에는 할머니의 안부가 궁금해지다가 금세 아이가 일어나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꿈에서 할머니와 엄마와 셋이 옛날에 살던 집에 있었는데 그 집은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생 무렵까지 살던 집이다. 그때의 기억이 좋았는지 보통 친정집을 배경으로 꿈을 꾸면 그 집이 자주 나온다. 이미 그 집에서 나와 이주를 몇 번을 했는데도 말이다. 어쨌든 꿈속에 할머니가 방에 계셨는데 엄마가 무언가 반찬인가? 음식 같은 것을 그릇에 담아 드시라고 방에 가져다 드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음식을 받자마자 본인에게 엄마가 버릴 음식을 주었다며 노발대발하셨다. 두 분이 싸울 것 같아 보이자 나는 엄마를 말리고 할머니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마치 아이가 무언가 짜증이 나서 울상이 되었을 때 설명하듯이 조곤조곤 설명하려고 했는데 뒤에서 엄마는 계속해서 할머니의 성질을 돋우고 있으셨다. 나는 이쪽도 저쪽도 안정시키기 힘들어 그만 엄마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러고 잠에서 깨어났는데 할머니의 꿈을 꾸고 난 뒤면 뭔가 찜찜하다.
현재 할머니는 정정 하시진 않지만 100세를 바라보고 계신다. 하지만 꿈에 나오면 왠지 건강이 안 좋으신 건가?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어릴 적 기억으론 엄마와 할머니는 사이가 썩 좋지 못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좋아봐야 얼마나 좋겠냐 마는 엄마는 종종 나에게 그런 불만과 싫은 것들을 나에게 그대로 쏟아내고는 하셨다. 딸인 내가 엄마의 편을 드는 게 맞을 수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 할머니가 나를 전적으로 보육해 주셨기 때문에 나는 할머니 정에 조금 더 치우쳐져 있다. 정이 치우쳐진 영향도 있긴 하겠지만 평소 엄마는 나에게 지나치게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쏟아 놓으셨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엄마는 나에게 과할 정도로 그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 내셨는데 그 행위 자체가 엄마 못지않게 너무 괴로워서 내가 먼저 엄마에게서 멀어졌다. 주기 적으로 하던 연락도 그만두었고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식으로 거리를 두었다. 그러고 나니 적어도 내 숨통은 트였다.
동생 말로는 한 동안은 집에서 아버지와 동생을 괴롭혔다는 후문이 있었지만 적어도 엄마는 아빠나 동생에게는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진 않으시고 생활에 관한 불편하고 힘든 것들을 토로하는 정도로 그치셨다. 종종 엄마와 딸의 관계는 친구 같은 관계로 많이 그려진다. 하지만 생각보다 엄마라는 위치의 사람은 딸을 자신의 대리인쯤으로 여기기도 한다.
나도 결혼을 했으니 엄마와 할머니의 관계는 이해를 하지만 그것을 자식에게 너무 쏟아붓는 자식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다. 엄마에게 받은 부정적인 감정들은 내 안에 고스란히 스며들었고 밤잠을 설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평소에도 무딘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사소한 투정에도 쓸데없이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긴 하다. 그 당시 엄마는 내가 어찌 되든지 본인의 쌓인 감정만 풀면 되겠다 싶으셨던 것 같다. 지금은 딱히 거리를 두고 있지는 않지만 친밀하게 지내지도 않는다. 딸과 엄마라고 해서 꼭 친밀할 필요는 없다고 그때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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